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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에서, 어둠 내리는 저녁의 환영

골목길에서, 어둠 내리는 저녁의 환영   


       

문득 궁금해졌어

그래서 묻고 싶어

내가 새이니, 날 수 있는 새이니


저녁이 되면 아이들은

때 맞춰 집으로 가는 길을 찾아 내지

어릴 적 그 마을에선

아이의 삶이란 게

얼키설킨 그물 같은 골목길을

피라미 꼬물꼬물 헤엄쳐 다니듯

어찌어찌 살아가는 것이었어     


서쪽 산 능선 반 뼘쯤 위로

뻘건 저녁 빛이 마지막 빛을 뿜어낼 때면

검게 터진 둥그런 뒷마당 굴뚝 구멍에선

밥 짓는 허연 연기가

집집마다 삐딱하게 피어오르곤 했지

    

개울에 쳐놓은 낚시 바늘에

개구리 걸려들 듯

꾸불꾸불 구름 덩이 같은 그 연기가

마을 공터에서 뛰놀던 아이들의 눈에 띄게 되면

그게 누구네 집 굴뚝에서 올라오는 것인지

멀리에서도 아이들은 그냥 알아차렸어

그게 그 마을 아이들의 본능이었거든  


아무튼 아이들은 언제든

때를 놓치지 않고 제 집을 찾아갈 수 있었어

소찬에 거친 보리밥 한 그릇이면

걱정 없이 뛰놀며 땀 흘린 낮 놀이의 노곤함 쯤이야

금세 잊어버릴 수 있었어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겐지

너는 알 것 같니     


이제 가만히 숨을 모으고 눈을 감아봐

배꼽 아래에 숨겨두었던

어릴 적 너의 호흡을 느낄 수 있지

그게 어른이 되면서 잊어버렸던

너란 다 큰 아이의 본능이야  

   

살다 보면 생각이란 게 의미를 잃을 때도 있어

그냥 본능을 따라야만 할 수도 있는 거야

이제 몸이 떠오르고 어둠 가둔 좁은 방안을

날개 없이 떠다니고 있는 너의 비행이 느껴지니     

아직은 눈 뜨면 안 돼

가끔은 눈 뜬 구속보다

눈 감은 자유가 훨씬 편안한 법이거든

    

이젠 알 것 같아

얘길 하다 보면 불현듯

뭔가가 떠오를 때가 있지

지금이 바로 그때인 것 같아  

   

나는 길을 걸어가야만 하는 새였던 것 같아


날 수 있든 날지 못하든 그건 중요치가 않아

나에겐 날개가 있지만

나는 날지 않을 거야


나는 날 저물어 돌아온 저녁의 새이거든

그래서 지금 저곳으로 돌아가는 이 길이

나의 거처이고

내가 가야만 하는 길인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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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신)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면 골목길의 사색은 더욱 짙어진다.

스쳐 지나가는 걸음마다 하루의 노곤함이 질척인다.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여행길 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는 나는, 그리고 저들은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어디에서 둥그런 밥상머리에 앉아 따뜻한 저녁밥 한 그릇에 숟가락을 담을 수 있을까.

저녁의 사색은 환영에 빠져들게 한다.     


그곳엔 아이들이 있었지.

이곳엔 새 한 마리가 길을 걸어가고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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