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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티카 Jul 21. 2021

아픔과 상처, 역사 그 너머의 역사

매드연극제 서평 ep.2

글 김요르고스 
사진 이철승




한 자리에 모여
무대에 오르는 이상한 세상 이야기 


온라인 매드연극제 포스터
오프라인 매드연극제 리플렛




 본 시리즈는 2021년 6월 24일부터 6월 26일까지 대학로에서 열린 오프라인 매드연극제의 10편의 연극 공연의 정보와 감상을 전합니다.
 이 글을 읽고 마음이 움직이신다면 2021년 8월 13일부터 8월 15일 온라인 무대에 오르는 아름답지만 이상한 세상 이야기를 제 1회 온라인 매드연극제에서 만나주세요. 




2021년 8월 15일 17:30


안티카 공동창작극 <복녕당 아기씨>


복녕당 아기씨 공연사진


 망국의 군주 및 왕가의 이야기는 역사 관련 문화콘텐츠 창작에 있어 굉장히 매력적인 소재임에는 틀림없습니다. 모두가 우러러보는 고귀한 신분에서 출발하여 정치적 암투를 거치며 파국을 맞이했던 그들의 역사적 현실 자체에 피카레스크적인 서사성이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역사적 사실들을 극적으로 재구성하는 작업은 관객들의 이목을 끌기 쉽지만, 작품 내, 외적인 논쟁을 유발하기도 쉽습니다. 


실제로 이러한 소재를 다룬 작품들 중 상당수가 군주정 체제에 대한 낭만적 대상화, 특정 인물에 대한 지나친 미화 및 동정적 시각으로 비판을 받기도 합니다. 

고종, 명성황후, 흥선대원군, 덕혜옹주 등을 필두로 한 조선왕조 및 대한제국 마지막 황실의 이야기는 한국의 문화콘텐츠 산업에서 집중적으로 다루어져 온 소재인데, 보통 우호적이고 동정적인 시각으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실 망국의 현실을 살다간 상당수 황실 인물들의 개인적인 면면을 살펴보면 동정받을 여지가 많은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당시 수많은 이름없는 기층 백성들이 식민지 체제의 현실에서 이보다 더 심한 고난과 오욕을 겪었습니다. 

이에 대한 책임을 황실의 일원 개개인에 떠넘길 수는 없겠지만, 국체를 상징하는 집단으로서 대한제국 황실의 책임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게다가 망국 이후에는 대원군 계열이든 민씨 계열이든 많은 황가 일원들이 여러 작위와 훈장을 부여받고 일제 치하에서 상징적 권력을 유지하며 풍족한 지위를 누리면서, 사실상 일제의 군국주의 체제에 대한 소극적 내지 직접적인 부역의 길로 접어들었지요. 그러한 점에서 상당수 현대 매체에서 집중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마지막 황가의 모습은 다소 불편하고 찜찜한 뒷맛을 남깁니다. 





 이 <복녕당 아기씨>는 마찬가지로 덕혜옹주의 삶을 다룬 여러 문화콘텐츠들과 비교해보았을 때 몇 가지 주목할만한 점이 눈에 띕니다. 연극 <복녕당 아기씨>는 덕혜옹주의 트라우마와 상처를 중심 소재로 하여 정신질환 당사자의 목소리를 담아냅니다.

 

여기서 덕혜 뿐 아니라 삶 가운데 트라우마와 상처로 아파하는 이들의 개별적인 사연이 당사자의 목소리로 묘사되는데, 이들은 덕혜처럼 오랫동안 호사가들의 이목을 끌어온 신비스럽고 고귀한 인물이 아닙니다. 이들은 우리처럼 이름없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본 연극은 덕혜의 이야기를 중심 축으로 삼고 다른 인물들의 개별적인 사연들을 차례로 엮으면서 서로 상반된 계층 집단에 속한 이들을 연결시킵니다.





 여기서 덕혜의 삶은 신비화되고 대상화된 '황녀'로서의 것이 아니라 이 땅에서 계급계층에 상관없이 고통받아온 이들이 함께 아파하고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로 재구성됩니다. <복녕당 아기씨>는 어쩌면 민감하기도 하고 진부할 수도 있는 소재를 바탕으로 신선한 시도를 감행합니다.



 


이 연극은 이처럼 얽히고설킨 서사를 불과 20분 남짓한 시간 동안 압축적으로 묘사합니다. 

그로 인해 캐릭터와 대사는 상징적이고 은유적인 경향이 두드러져 보시기에 따라선 난해한 느낌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또한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었겠지만, 연극의 상징성과 은유를 뒷받침할 수 있는 미장센의 요소도 본 연극이 지닌 상징성과 난해함을 배가시키는 요인이기도 합니다. 

가령 덕혜옹주의 이야기에서 그의 한을 상징적으로 담아내는 시각적인 장치는 '보온병'이 유일합니다. 그마저도 눈에 잘 띄지 않지요.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처럼 애매모호한 상징과 은유적 장치를 통해 연극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 즉 정신질환 당사자들의 목소리가 극적으로 구현됩니다. 저는 굴곡진 우리 근현대사의 현실을 신선한 시도로 풀이해낸 배우들과 스텝들께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앞으로 보다 차별화되고 독창적인 역사관을 담아낸 서사극이 더 많이 나오기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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