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꼭지도꼭지
겨울이 다가올 때마다 늘 듣던 방송 소리.
“화장실, 세면장, 취사장은 동파 예방을 위해 낙수 조치하시기 바랍니다.”
현역 시절, 추운 겨울이면 어김없이 지휘통제실에서 울려 퍼지던 익숙한 멘트다. 처음엔 '낙수 조치'라는 말조차 생소했다. 물을 아껴야 한다고 배워온 터라, 밤새 수도꼭지를 틀어놓는 행위는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조치의 의미를 알게 된 건, 동파로 인해 물을 전혀 쓸 수 없게 되었을 때였다. 얼어붙은 수도관, 낭비되는 시간, 고생하는 간부들, 수리 비용… 모두가 말해주었다. 적은 물을 흘려보내는 게 오히려 더 큰 낭비를 막는 길이라는 것을.
가정을 꾸리고 관리비 고지서를 받아보며, 나는 물 한 방울의 값어치를 다시 체감하게 되었다. 절약은 중요하지만, 미리 대비하는 습관은 더 큰 의미를 가진다.
수도꼭지를 살짝 틀어두면, 물은 조용히 뚝뚝 떨어진다. 많이 열면 물줄기는 굵게 쏟아지고, 조금 열면 가늘게 흐른다.
노력도 이와 닮았다.
요즘 자기 계발서를 읽으며 자주 접하는 말이 있다. "한 분야를 이해하려면 최소한 다섯 권의 책을 읽어야 한다." 한 권으로는 부족하다. 노력의 양과 깊이는, 결국 결과로 드러난다.
수도꼭지를 얼마나 열어 두느냐에 따라 흐르는 물의 양이 달라지듯. 수도꼭지 앞에서 문득 생각한다. 지금 내가 흘려보내는 이 시간과 노력은 낭비가 아니라, 미래를 위한 예방 조치일지도 모른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