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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비 Feb 15. 2023

알약에게 내 멱살을 맡겼다

15. 1393에 전화하다


언젠가 언니가 우리집 공주에게 물었다고 한다. 도비 엄마는 잘 지내는지, 일하는 걸 힘들어하진 않는지 말이다. ( ㅇㅇ이모, ㅇㅇ삼촌 부르듯 내 이름 뒤에 엄마라는 호칭을 붙여서 쓴다.) 한국에 오자마자 어머님과 어마어마한 일을 겪은 후 숨 돌릴 틈도 없이 출근하게 된 동생을 언니가 걱정했나 보다. 직접 물어도 되는 걸 굳이 조카에게 물었던 이모에게 딸아이가 이렇게 대답했단다.


"엄마가 퇴근하고 올 때 항상 웃으면서 들어와요. 그러니까 많이 힘든 거 같지는 않아요."


어느 때까지는 분명 그런 엄마였다. 화가 나면 때때로 신경질을 낼지언정, 아이 키우는 걸 힘들어할지언정, 크고도 환한 목소리로 엄마를 외치며 달려나와 나를 맞아주는 아이들과 반갑게 인사하며 집에 들어갈 줄 아는 엄마.  


하지만 남편은 아무 일 없는 듯 또 중요한 사건을 회피하며 일상을 살아갔고, 나는 그걸 보기 힘들었다. 퇴근 후 저녁을 챙겨 먹으려는 나에게 아이들이 오면 남편은 엄마가 피곤하니 엄마한테 가지 말라고 했다. 아이들이 나와 거리를 두도록 했다. 지친 나를 위한 배려였을 테지만 나는 그게 싫었다.


결국 어느 날, 아이들을 내 곁에서 떼어 놓을 게 아니라 여보가 내 곁에서 떠나야 해결될 문제라고 말하고 말았다. 어김없이 그는 그럴 수는 없다고 말했다. 제발 그만하자고, 나 좀 그만 힘들게 하라고 소리를 질렀다. 묵묵부답을 시전하는 그에게 화가 났고, 불똥은 멀리 사는 아빠에게 튀었다. 전화로 남편이 끝까지 자기 마음대로만 한다고 하소연했다.


처음 보는 엄마 모습에 놀란 아이들이 다 방으로 다 뛰어 들어갔다. 아이들 짐 가방 한 번 싸 본 적 없는 남편이 처음으로 옷가지를 챙겨 아이들을 데리고 시댁으로 갔다. 다녀올 테니 나더러 좀 쉬라고 했다.





막막했다. 버거운 것도 싫었다. 나에게 있는 줄 미처 몰랐던 모습을 내가 보았고, 남편과 어린 꼬마들도 다 보았다. 망가진 내가 싫었다. 모두 다 놓고 싶었다. 갑갑함이 무서울 만큼 커지는 것을 알고 1393에 전화를 했다. 전화받은 상담원은 나에게 지금 그 일을 저지르려는 참이냐고 물었다.


???


무슨 뜻일까 되물었더니 생각한 도구나 챙겨둔 준비물이 있냐고 또 물어왔다. 내가 버틸 힘이 없는 줄 알았더니 어이도 없어졌다.


"제가 처음이라 잘 몰라서요, 여기는 원래 어떨 때 전화하는 거예요? 옆에 연탄불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으면 전화할 수 있는 건가요?"


그건 아니라는 상담원의 목소리는 피곤했다. 밤 여덟 시를 향해가는 시각, 내 전화를 잘 받아주기에는 상담원이 너무 고단한 하루를 보낸 것 같았다. 기대와 달리 생의 의지를 다지지 못하고 전화를 끊어야만 했다.




나의 시간이 골로 흘러가는 와중에도 여름휴가 날짜는 다가왔다. 휴가를 어디로 가고 싶은지 묻는 남편과는 아무 데도 안 가고 싶었다. 휴가가 휴가가 되려면 그가 없어야 했다. 아이들을 데리고 결국 친정을 찾았다. 내가 이혼하지 않기를 바라는 엄마가 있는 곳으로, 별일 없냐 물으면 사는 게 다 별일이라고 대답할 수 있는 그런 곳으로.


아이들이 엄마의 거실에서 테레비를 볼 때면 나가서 자전거를 타고 조깅도 했지만 백팔번뇌를 바람에 날려 보내는 기분은 그때 잠시 뿐이었다. 내가 지내던 곳으로, 남편이 살고 있는 곳으로 돌아갈 날짜가 하루하루 임박하며 가슴을 조여왔다. 출산 때마다 기절을 몇 번씩 했었는데 나는 숨을 쉴 수 없게 목이 졸려오는 그 느낌이 아주 무섭다.


아이들이 아빠를 다시 만날 수 있는 그곳으로 다시 돌아가기 위해, 다시 출근하기 위해 오랜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나는 친구가 전화를 받자마자 내가 귀국했다는 소식과 근황을 전했고, 글에서 꺼낸 적 없는 이야기를 쏟아냈다. 남편의 외도로 4천만원이라는 위자료 판결을 받으며 승소했던 친구는 불안함과 답답함 속에서 근근이 이어지는 나의 일상을 듣더니 약을 먹자고 했다. 자신을 살게 한 것도 약이라고 말이다.


잘 살 수 있는 걸까. 무섭지 않을 수 있을까. 친구의 말에 안도가 되었고 덕분에 남편이 기다리고 있을 집으로 무사히 장거리 운전을 마치고 돌아왔다. 그에게 나의 새로운 결심을 알렸다. 나는 버틸 힘이 없고 여보는 이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으니, 그러나 우리 사이에는 보살필 아이들이 있으니, 내 진심 어린 이혼 요청에 놀란 그가 눈앞의 현실을 받아들일 수 있을 때까지 약을 먹고 참기로 했다고 말이다. 내 마음은 변하지 않을 것이며 조금 늦춰졌을 뿐, 우리의 이혼은 반드시 일어날 거라는 얘기도 잊지 않았다. 가능하면 순한맛 이혼으로 진행하고 싶다는 바람도 덧붙였다. 아무리 순해봤자 핵불닭 맛이지만.


스타벅스에서 너무 갑작스럽다고, 1년, 아니 6개월 만이라도 시간을 달라며 간곡히 부탁했던 그였다. 겸사겸사 아마도 마지막일 그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했다. 다만 그에게 시간을 줄 기력이 없으니 약을 먹어서 벌어야 했다. 약에게 나의 멱살을 맡기고서라도 버텨야 했다. 그는 나에게 알겠다고, 고생이 많다고 했다.


나는 바로 병원을 찾았고, 약을 먹었다. 처방 없이 살 수 있는 수면유도제는 무용지물이었는데 병원에서 받은 약을 먹으니 잠이 솔솔 왔다. 옅어지는 어둠을 시시각각 확인하며 새벽을 맞이한 날들이 있었던가 싶을 정도로 몇 년 만에 밤잠을 푹 잤다. 직장에서, 엄마들 사이에서 멀쩡한 척, 안 졸린 척하느라 힘들었지만 덕분에 나는 덕수궁 돌담길 단풍이 예쁜 걸 잊지 않을 수 있었고, 흥인지문 성곽길 갈대밭도 걸을 수도 있었다. 가을이 그렇게 지나갔다.


병원을 다니면서 버티던 중, 가족 나들이를 할 일이 생겼다. 그리고 나는 더 버티지 않아도 될 이유를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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