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지금 무슨 소리를 들은 걸까.
엄마, 결혼하지 마요!
아직 파스타를 먹고 있던 공주가 갑자기 외쳤다. 먼저 식사를 마치고 일어나 그릇을 막 싱크대에 놔두던 참이었는데 이게 무슨 소리람. 내가 제대로 들은 게 맞나 했다.
”공주, 뭐라고? 그릇 놓느라 잘 못 들었어.“
“엄마 결혼하지 말라구요!”
잘못 들은 게 아니었다. 갑자기 이게 다 무슨 소린가 싶고, 얘가 왜 이런 말을 하나 싶고, 아빠를 만나고 막 돌아와서 그런가도 싶고, 평온하던 머릿속이 공주 말 한마디에 금세 쑥대밭이 되었다.
“엄마가 결혼을 왜 해~ 벌써 했잖아, 공주랑 왕자도 낳아서 키우고.”
“아니, 결혼 한 번 하고 나서 또 결혼하는 거 있잖아, 그거 하지 말라고.”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고 하는 말이었다.
“재혼 말이야?”
“응, 그거.“
“할 일이 아마 없지 않을까? 엄마는 공주랑 왕자랑 살 거니깐. 근데 너가 그런 거를 어떻게 알았어?”
고아원이 고등학생 어쩌고냐고 물어보는 아이가 알 만한 단어는 아무래도 아닌 것 같아서 공주에게 물었다.
“엄마, 그건 여기저기에서 나온다구~ 신데렐라에도 나오고 백설공주에도 나오잖아! 그거 안 하면 좋겠어!”
그러네. 신데렐라랑 백설공주에 재혼이 나오네.
엄마는 일련의 사건들을 겪은 후 그런 어떤 따사로운 마음이라는 가치에 별 소중한 의미를 두지 않게 되었다고 말하지 않았다. 이미 조금 겪은 바, 애 둘 딸린 이혼녀를 만만하게 보는 우리 사회 어떤 이들의 결코 만만하지 않은 시선에 대해서도 굳이 언급하지 않았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애들 밥 먹이고 치우느라 바쁘고, 주말이면 애들 데리고 놀아주기 고단하고, 애들이 아빠 만나는 주말에는 밀린 집안일을 하거나 낮잠 자고 멍 때리거나 내 나름의 숨고르기를 하느라 하루가 짧다는 말을 꺼내지도 않았다.
엄마는 공주랑 왕자 챙길 건데~ 하고만 말했다. 아이가 듣고 싶었던 말은 그게 아니었을까 하고. 이혼 한 달 차, 이전과 대단히 다르지도 않지만 아직도 적응하고 사느라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고 지내는데 열 살 먹은 내 공주는 엄마가 결혼할까 봐 걱정이라니, 새삼 아이가 많이 큰 것 같다.
이 와중에 왕자는 슬퍼서 밥을 못 먹겠다며 식탁에 앉아 엉엉 울다 흐느끼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아빠랑 엄마가 같이 있는 걸 보고 싶다고 울었다. 아까 엄마가 물어 봤는데 아빠는 일이 있어서 같이 못 먹는다고 하지 않았냐, 다음에는 미리 날을 잡아 같이 먹으면 된다고 어르고 달랬다. 그래도 두 번째 보니 마음이 좀 덜 아팠다. 차차 그러려니 하게 되는가 보다, 이렇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