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 한낮 무심결에 나온 독백
5월의 어느 화요일 오전, 친구네 동네로 넘어가 커피 한 잔 마시고 맛집에서 점심을 먹고 또 카페로 가 신나게 수다를 떨었다. 했던 이야기와 새로운 이야기가 뒤섞여 쉼 없이 떠드는 동안 굴러가는 낙엽에도 웃음꽃 피는 여고생처럼 깔깔거렸다. 언젠가부터 집 나간 웃음이 퇴사와 동시에 돌아왔나 보다. 좀처럼 눌리지 않던 웃음 버튼은 쉴 새 없이 눌렸고, 방전된 배터리인 양 맥 없던 웃음소리도 풀 충전 상태였다. 퇴사 후 만난 지인들은 보자마자 얼굴 좋아졌다고들 평했다. 입꼬리가 올라가 있는 게 언제든 웃을 준비가 되어 있다나. ‘회사 다닐 때 나의 몰골이 대체 어땠길래...’ 싶은 의문과 함께, 한때 잘 웃는 게 나의 장점이던 시절이 생각나 떨떠름했다.
장소를 이동하는 중간중간에는 길 따라 걸으며 동네 구경도 했다. 평일 한낮에는 서울 도심도 적당히 한적했다. 바쁘게 걸어가는 사람들도, 손님으로 꽉 찬 가게도, 길게 늘어 선 웨이팅 줄도 보이지 않았다. 천천히 산책하는 사람들, 벤치에 앉아 봄기운을 느끼는 사람들, 운동하는 사람들... 고요하고 여유롭고 느긋했다. 그날따라 낯선 그 동네가 그랬을 수도 있지만, 그날따라 그런 풍경들이 눈에 띄었다. 회사에 연차를 내고 보낸 날들과도 미묘하게 달랐다.
“와, 행복하다.”
그렇게 화창한 날씨의 기운을 받으며 정처 없이 걷다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행복하다 느껴도 이렇게 말소리로 내뱉은 건 처음이었다. 내뱉었다기보다 내뱉어졌다. 뭐지, 이런 내가 낯설고 웃겼다. ‘행복하다고?’, ‘응, 행복한 거 같아!’ 그렇게 자문자답하는 스스로가 웃겨 또 웃음이 났다. 이토록 평범하고 소소한 일에 행복해할 줄 아는 나인데...! (뒷말 생략)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니 아보하(아주 보통의 하루)니 하는 철 지난 트렌드 용어를 진정으로 체감하는 순간이었다. 한편으로는 새삼스럽게 번아웃이었나 하는 깨달음과 그래도 회복되고 있구나 하는 양가감정이 들었다. 정확히 정의할 순 없어도 내 속에서 무언가 조금씩 다시 차오르고 있었다.
그 뒤로도 요일, 시간,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거침없이 약속을 잡았다. 직장을 다니는 친구와도, 살림과 육아 중인 친구와도, 프리랜서로 일하는 친구와도 확인하고 조율하는 과정은 필요치 않았다. 상대방이 편한 시간과 장소에 맞출 수 있었고, 언제 어디서 만나든 부담 없었다. 나에겐 남는 게 시간이었고, 장소가 멀면 그만큼 내가 더 일찍 출발하면 됐다. 얽매여 있지 않으니 몸은 자유로웠고 마음은 너그러웠다. 그동안 누리지 못했던 평일 한낮의 여유를 만끽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월요일 아침 9시? 오케이. 수요일 오후 2시? 노 프라블럼. 목요일 저녁 6시? 오브 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