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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마친 수환은 터덜터덜 걸었다. 언제나처럼 한강변에 마련되어 있는 추모 공원으로 향했다. 그날 이후 줄곧 이곳에서 희서의 흔적을 찾았다. 아니 찾아야만 했다. 희서는 10년이 지나가는 지금까지도 발견되지 않았다. 하던 것을 모두 관두고 복구작업에 뛰어든 것도 희서를 찾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그날 내가 좀 더 빨리 약속 장소에 도착했더라도. 5분만 일찍 전화했더라도. 늘 머릿속에 꼬리표처럼 후회를 달고 있었다.
남의 나라 일이라고만 생각했던 대지진이 한국에서. 서울 도심 한복판을 흔들어댈 때 수환은 전철 안에 있었다. 일주일만 부탁한다고 해서 대타를 뛰었던 아르바이트가 하루 늘어버리는 바람에 반나절을 겨우 하고 뛰쳐나왔다. 오랜만에 희서를 만난다고 들뜬 마음은 가라앉을 줄을 몰랐다. 일하는 동안 오늘 기분 좋아 보인다는 말을 몇 번이나 들었는지. 일찍 나와 기다릴 것이 뻔해서 희서에게 미리 늦는다고 전화를 하려던 참이었다.
창문 밖으로는 한강의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저기 어딘가에 희서가 있을 것이었다. 통화 버튼을 누르고 막 전화기를 귀에 가져다 댈 때였다. 창밖의 풍경이 이상하게 뒤틀렸다. 손잡이를 잡은 손이 휙 하고 미끄러져 몸이 어딘가로 나동그라졌다. 저도 모르게 지르는 비명에 섞여 여기저기서 공포와 놀람의 소리가 터져 나왔다.
누군가 몸을 흔드는 바람에 정신이 들었다.
“이보세요. 괜찮아요? 일어날 수 있겠어요?”
희뿌연 시야로 누군가의 팔이 들어왔다.
“네. 아 네. 여기가 어디죠?”
“지진이 난 것 같아요. 전철이 탈선했는데 다행히 다리를 다 건널 즈음이어서 살았어요. 얼른 일어나요. 전철 밖으로 나갑시다. 여기 있으면 위험해요. 지금 꼬리 부분이 탈선해서 밖에 매달려 있거든요. 저기 봐요.”
침착한 말투였지만 목소리가 무척이나 떨렸다. 가슴팍에 달린 명찰을 보니 철도기관사인 것 같았다. 주변을 둘러보니 여기저기 쓰러진 사람들이 남아있었다. 몸을 겨우 일으켜 앞쪽 의자에 넘어져 있는 사람에게 향했다.
마주한 창문 밖으로 옮겨진 시선이 굳어졌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이 세상 풍경 같지 않았다. 한강 주변은 공사판처럼 너저분하고 시커맸다. 원래 한강 주변이 이렇던가. 높다랗던 고층 아파트 들은 다 어디로 갔지? 원래 그랬다는 듯이 시커먼 갯벌이 드러나 있었다. 옆으로 공중에 달랑거리는 것이 보였다. 전철이었다. 아슬아슬하게 앞 전철에 연결된 채로 매달려 있었다. 다행히 타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듯 보였다. 아니면 이미 밑으로 떨어져 버린 걸까.
수환은 감각이 잘 느껴지지 않는 몸을 겨우 움직여 전철을 빠져나갔다. 누군가 수동으로 전철 문을 열어 놓은 덕에 수월하게 빠져나갈 수 있었다. 전철 안에서 함께 흔들리던 사람들이 넋을 잃은 듯한 표정을 하고 수환을 스쳐 지나갔다. 밖은 아수라장이었다. 장난감처럼 부서진 건물들이 보였다. 전철은 아슬아슬하게 부서진 다리를 넘어서 육지에 닿은 것 같았다. 무작정 사람들을 쫓았다. 불현듯 희서의 웃는 얼굴이 떠올랐다. 급하게 전화기를 꺼내 통화 버튼을 눌렀다. 물건을 잘 잊어버리는 탓에 무조건 주머니에 넣던 습관 덕에 흔들리는 와중에도 전화기를 넣어둘 수 있었다. 신호는 갔지만 받는 사람은 없었다.
만나기로 한 곳은 역에서 조금만 걸어가면 되는 한강을 마주한 카페였다. 하지만 지금 한강변에 있는 것은 시커멓게 흐르는 갯벌 같은 벌판뿐이었다. 제대로 된 건물은 남아있지 않았다. 현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죽은 뒤의 세계를 걷고 있는 걸까. 끊임없이 통화 버튼을 누르며 이상한 세상으로 바뀌어버린 한강변을 쳐다보았다. 안개 가득한 강가에는 역겨운 냄새가 둥둥 떠다녔다. 구역질이 올라왔다. 수환은 걸어가다 말고 고개를 돌려 먹은 것도 없는 속을 게워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