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장로 딸입니다.라는 말의 무게

아빠는 장로고, 언니는 모범생이고 저는 접니다만.

by 프니

큰일 났다. 전교인 수련회에 가서 춤을 춰야 한다. 룰라의 '날개 잃은 천사'음악에 맞춰서. 그것도 아빠랑 동생이랑 나랑 셋이서. 아니 왜? 도대체 우리가 왜 쳐야 하냐니 장로의 자식들이라 그렇단다. 장로님이 되어버린 아빠를 둔 탓에, 자식들이 고생이었다. 평소 남 앞에 나서기를 극도로 꺼려하는 유전자를 지닌 나는 무대에 올라갈 순서가 다가올 때마다 초조해지기 시작했고, 이내 하나님을 찾았다.

"하나님 제발 천재지변이 일어나서 춤을 안 추게 해 주세요, 이번에 제 부탁 들어주시면..." 하나님에 이어 부처님, 알라신을 소환하려던 차 누군가 날 확 쳤다. 놀란 마음으로 상대를 확인했다. 다름 아닌 남편이었다. 남편은 토요일 낮 12시 30분이 되어도 일어나지 않는 나를 깨웠다. 아, 꿈이었구나. 진짜 다행이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교회에서 장로라는 직분은 꽤 높은 것인데, 우리 아빠가 왜 벌써 장로가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아니 사실 안다. 바쁜 회사생활을 쪼개어 교회일에도 최선을 다했으니까. 게다가 엄마는 권사. 부모만 놓고 보면 우리 집안은 독실한 기독교인 집안이라고 보인다. 많이들 그렇게 본다.


하지만 나보다 두 살 많은 언니는 교회에 가는 대신 스타벅스에 갔고, 나보다 여섯 살 적은 동생은 군대를 다녀온 후에는 영 발을 들이지 않는다. 그런 형제 사이에 끼인 나 또한 열심히 다니지 않았다.


교회에 정이 잘 안 든 이유는 여러 가지였지만, 가장 큰 건 아무래도 부담감이었다. 부모님이 장로, 권사님이라 하면 자식들 또한 그 믿음의 크기와 깊이가 크고 깊을 것이다 생각하는 사람들의 시선, 그게 너무 불편했다. 조용히 예배만 드리고 싶은데, 어? 아빠가 장로고 엄마가 권사인데 교회활동을 1도 안 한다고? 하고 바라보는 그 부담스러운 시선들..





"이야, 공부 정말 잘하겠네?"

이러한 무거운 부담감은 비단 교회에서만 느낄 수 있는 게아니다. 고등학생 때 나는 불편한 오해를 많이 받았는데, 그건 내가 공부를 정말 잘하게 생겼다는 것이었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시력이 나빠질수록, 안경 렌즈 알의 두께가 두꺼워질수록 나는 누가 봐도 공부를 잘하는 사람으로 비쳤다.


이것뿐인가. 나보다 공부를 많이 하지 않아도 언제나 나보다 월등히 잘했던 언니 이야기를 하며, 언니가 잘하니까 너도 잘하겠지~~ 라는 말도 무진장 많이 들었다.


하지만 슬프게도 나는 그들의 기대에 미치는 모범생이 아니었는데, 저 공부 잘 못해요.라는 말을 하면 에이, 잘하게 생겼는데? 거봐 내 말이 맞지? 하는 눈으로 바라볼 때마다 정말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생긴 거랑 다르게 못하네 라는 말은 사춘기 소녀가 듣기에는 너무 슬픈 말이었다.




아빠는 장로고, 언니는 모범생이고 저는 접니다만.


같은 피를 나눈 가족이라는 공동체의식 때문인지, 하도 주변에서 아빠, 언니 이야기를 해서 그런지 나는 장로의 딸이다, 나는 모범생의 동생이다라는 명찰을 스스로 주워서 붙이고 다녔다. 그때는 몰랐다. 아빠는 아빠고, 언니는 언니고, 나는 나라는 그 간단하고도 단순한 사실을.


여전히 아빠는 교회의 장로고, 엄마는 권사고, 언니는 좋은 직장에서 일을 하고 있다. 나? 나는 집에서 일하고, 집에서 노는 삶의 만족도가 최상인 사람이 되었다.


장로라는 딸의 무게를 견디는 것이 그 당시에는 왜 그렇게 힘들었는지. 생각해보면 굳이 버티지 않아도 될 부담감의 무게를 참 묵묵히도 버텼다. 내가 교회에서 열심히 하지 않으면 나를 뭐라고 생각할까, 장로 아빠 얼굴에 먹칠하는 것 아닐까 하는 과한 걱정을 하면서 정작 나를 보호하지 못했다. 만약 지금 이상하게 어깨가 무겁다면 내가 지니고 있는 무거움의 원인을 알아보자(우리는 생각보다 쓸데없는 압박감과 부담감을 많이 가지고 있다.)


그런데 장로 딸이라고 무조건 신앙심이 좋으라는 법이 없는 것처럼, 안경알이 두껍다고 무조건 공부 잘한다는 법은 없는 것처럼, 언니가 공부를 잘한다고 동생도 잘하는 건 아니지 않나?


나 또한 타인을 투명하게 바라보고, 그들에게 불필요한 무게를 던지지 않으려 노력한다. 그들의 생김새에서, 그들이 가지고 있는 특수한 배경을 통해서, 개성 강한 옷차림에서 섣불리 그들의 이면을 보지 않으리. 나를 나대로 봐주길 원하는 나의 마음은 그들도 같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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