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고 처음 맞은 빼빼로데이, 남편은 야근이지만
오늘은 2020년 11월 11일, 농업인의 날이자, 빼빼로데이라고 하는데 그런 거 모르겠고 열나게 타자를 두들기며 일을 하고 있던 오후였다. 정확히 3시 50분, 방정맞은 카톡! 소리가 내 귀를 강타했다. 대부분의 대화방 알람을 꺼두었는데 웬 소리인가 하고 카톡방을 들여다봤더니, 아빠였다.
아, 고마운데 당황스럽지만 좋은 느낌
아빠가 내게 빼빼로 그림을 툭 던졌다. 그림을 보자마자 육성으로 "아 뭐야!"를 외쳤고, 적잖이 당황했지만 답장을 했다.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싶어 망설이다가 헐랭이라는 헐랭 같은 말을 던져버리고는 오늘 새로 받은 이모티콘으로 마무리했다. 그리고는 그간의 날들이 스쳤다. 아빠에게 빼빼로를 받은 적이 있던가 생각해봤다. 아무리 생각해도 없던 것 같다.
표현하는 데 서툴고, 약간은 무뚝뚝한 전형적인 아빠의 모습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런데, 그런 아빠가 조금씩 변해가는 것 같다. 몇 달 전, 친정에 갔을 때 아빠는 내게 2만 원을 건네며 난 하나와, 꽃 하나를 사 오라고 했다. 생전 처음 아빠의 꽃심부름이었다. 아빠는 언젠가부터 정성스레 식물을 키우기 시작했고, 얼마 전에는 수험생이 되었던 엄마를 대신해, 아빠가 손수 감자전과 감자조림을 만들어주었다. 정기적으로 사위가 좋아하는 장어를 포장해서 사다 주고, 아빠가 사다준 빵이 맛있다고 하면 또 그다음 주에도 빵을 사다 주었다. 아, 동백꽃필무렵 드라마가 너무 감명깊었다는 말도 했었다. 며칠 전에는 에어프라이어 베이킹에 대해 진지한 대화를 했었다. 어린 시절의 아빠와 나는 별 마디 안 하던(?) 사이였는데 오히려, 결혼을 한 후, 아빠와 소중한 추억들이 쌓이는 것 같다.
그렇게 흐뭇하게 추억에 잠겨있다가 다시 일을 시작했다. 집안에는 내 숨소리와 타자 치는 소리, 딸그락 거리는 마우스 소리만이 가득했다. 그때, 또다시 카톡이 울렸다. 이번에는 남편이었다. 상기된 남편은 장인어른에게 빼빼로를 받았다며 자랑했다. 아니, 아빠가 사위한테까지 보낼 줄은 몰랐는데, 거 참.ㅋㅋㅋㅋㅋㅋ웃음이 절로 났다. 아빠에게 사위도 빼빼로데이에 생각나는 가족이 되었구나 싶어 뭉클해졌다. 서로에게 마음을 표현하는 것에 낯선 사이였던 우리 가족은, 조금씩 조금씩 변해 가는 듯하다.
빼빼로데이는 상술이다!!!!! 여기에 넘어가면 안 돼!! 라며 남편에게 빼빼로를 사 오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던 나였는데, 오늘은 달달한 빼빼로 한입 하고 싶은 밤이다. 빼빼로를 닮아 통통하고 달콤한 남편과 함께, 그리고 아빠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