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구하다 알게 된 인생의 진리

장점 없는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by 프니
이 집은 볕이 잘 들어서 좋아, 여기는 평수 치고 넓게 나왔어요, 아 여기는 진짜 좋은 게 동네가 조용해서, 이 집은 신축이라 좋죠.


작년 여름, 우리는 부지런히 신혼집을 구하러 이곳저곳 돌아다녔다. 나이, 외모는 모두 다르신 공인중개사님을 만났다. 곧 그들의 공통점을 찾았는데 그건 바로, 본인의 매물을 대하는 최고의 태도. 최선을 다해 장점을 부각한다는 것. 신기하게도, 들어가자마자 아 여기는 조금 별론데? 하는 마음이 드는 순간, 중개인은 곧바로 그럴싸한 장점 카드를 내밀며 내 마음을 흔들었다.


집을 보러 다녔던 떙볕의 여름날이 되면, 짐을 들였던 선선한 가을날이 되면, 그리고 문득문득 그때가 떠오른다.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던 그날, 집주인분이 말했다. "여기서 좋은 기운 많이 받아서 부자 돼서 더 좋은 집 가세요" 환하게 웃으시는 모습을 보며, 내 미래도, 우리의 미래도 그렇게 밝고 좋을 줄만 알았다.

그런데 나는 그 집에 와서 일자리를 잃었다. 방문이 닫히지 않는 비좁은 방, 침대에 누워 베갯잇에 눈물을 적시던 날도 있었다. 나이 서른을 넘고, 일자리를 잃으니 세상과 단절된 느낌은 물론이거니와, 더 이상 쓸모 없어진 사람이 된 것 같았다. 남편이 출근을 하면, 느지막이 일어나 계란 프라이를 밥에 비비면서 참기름 대신 눈물을 넣은 적도 있고, 사람인을 보다가 어이없는 연봉 후려치기 공고에 화가 난 적도 있다. 그런데, 더 화가 나는 건 "아, 여기는 돼도 고민이다"했던 곳들에서조차 나를 불러주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그러니까, 나쁜 남자에게 거하게 차인 기분 나쁜 감정이 매일 들었다. 내가 이렇게 사회에서 매력이 없는 사람이었나, 나를 원하는 곳은 진정 없는 것인가, 그들이 원하는 조건은 도대체 무엇일까 생각을 하다 보니 집을 구하던 그때가 떠올랐다.


나보다 더 오래된 연식을 가진 아파트들은, 여기저기 낡고 헤져있었다. 하지만, 중개인은 이 부분은 도배를 하면 보완이 되고, 이곳은 세탁실이 별도로 있어서 편하고, 이 집은 창고가 있어서 수납이 편하고, 이 집은 지하철과 가까운데도 소음이 심하지 않다 등의 이야기를 술술술 내뱉었다.


마치, 자기소개서에 나를 소개하듯.

때로는, 그렇게따지면 안 좋은 집이 없겠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중개인들은 열심히 집을 어필했다. 그들은 집의 작은 단점은 다른 장점으로, 작은 장점은 더 큰 장점으로 부각했다. 매물을 대하는 그들의 진정성 있는 태도를 통해 알게 된 사실은 세상에 완벽한 집은 없고, 또 완벽한 사람도 없다는 것 하나와, 그 완벽하지 않음을 받아들이는 대신 다른 강점을 찾아내는 것은 참 중요하다는 것이다.



곧장 나는 그 진리를 나에게 대입해본다.

(전) 파워포인트 실력도 중이고, 엑셀도 중이고, 포토샵도 중이고, 영어는 잘 못하고요, 경력은 5년 있는데 이제 이 일 안 할 거고요, 나이도 적지 않고요.


뭐든지 중간중간, 어중간한 내 이력을 보고 있자니, 씁쓸함만 느껴졌다.


(후) 파워포인트, 엑셀, 포토샵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다룰 수 있으며, 5년의 경력은 저의 성실함을 말해준다고 생각하고요, 적지 않은 나이와 경력 덕에 조금은 능숙한 일처리가 가능합니다.

라고 말하면 내가 조금 더 괜찮은 사람으로 느껴진다. 내 이력을 스스로가 인정해주지 않으면 더 빛이 나지 않는다는 걸 이제는 안다.


작고 하찮은 존재라고 생각하는 대신, 크진 않지만 단단한 사람이라고 스스로에게 말해주는 것, 완벽하지 않아도 이 정도면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 남들이 가진 장점은 없어도, 남들에게 없는 특별한 점이 있다는 걸 말해주는 것, 그런 과정 속에서 나는 조금 더 매력적이고 괜찮은 사람이 돼가는 것이 아닐까. 주차공간은 협소하지만, 집앞 공원이 있으며, 오래됐지만 깔끔하게 리모델링이 된 작은 집, 거실 소파에 앉아 오늘도 나의 숨겨진 장점을 찾아보고 스스로 칭찬해본다. 그날의 중개인이 그러하였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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