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인정할 것은 인정하자.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아닌 것쯤은 충분히 알았다. 설마 11년이나 했는데 그걸 모를까.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사는 사람이 몇이냐 되겠느냐는 꼰대 같은 소리는 잠시 접어두자. 지금은 그런 걸로 시간 낭비할 때가 아니니까. 갑자기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내고 그걸로 성공할 수 있는 확률이 얼마나 될까를 계산해 봤더니 5%도 안 될 것 같았다. 그렇다면 이건 일단 포기하고 다음 선택지를 찾아보는 게 현실적이라고 생각했다. 그저 그렇게 믿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렇다면 매일매일 엉망진창이 되어가고 있는 내 인생은 도대체 어떻게 해야 달라질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역시나 돈이다. 돈이 전부가 아니라고? 돈이 없는 사람이라면 절대 했을 리가 없는 말이다. 돈이 전부는 아니라지만 없으면 서러운 일들이 참 많이 생기더라. 자꾸 구차해지고, 주눅 들고 그렇게 되니까 말이다. 그럴 때마다 해봤던 것은 상상이었다. 혼자 망상하는 것은 돈이 들지 않으니까. 물론 주제는 매번 비슷한 것 같다. ‘그때 돈이 많았다면…’이라는 생각은 나를 자꾸만 힘든 과거의 순간으로 데리고 간다.
아버지의 사업이 부도가 나서 서울로 도망쳐 온 것도, 더 이상 화목한 가정을 꿈꿀 수 없을 정도로 부모님의 사이가 점점 멀어지게 되는 것도, 대학생 때 계속 알바를 해야만 했던 것도, 그 와중에 학식을 먹기에도 돈이 아까워서 매일 김밥 한 줄로 버티던 것도. 결국 매 순간 내 인생을 흔들어대며 나를 힘들게 했던 모든 것들이 돈 때문인 것만 같았다. 그래, 돈만 있었다면 그렇지는 않았을 거다.
그렇다고 돈을 미워할 수는 없으니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라도 미워하는 사람한테는 안 가고 싶을 테니까 말이다. 나중에 김승호 회장님의 <돈의 속성>에서 돈을 하나의 인격체로 대해야 한다는 구절을 읽었다. 그저 단순히 생각하고 있던 내 생각과 비슷한 개념이 나와서 읽으면서 반가웠다. 그래, 미워하지는 말자. 돈이 없어서 힘든 거지 돈이 우릴 괴롭힌 것은 아니니까.
돈을 번다는 것은 좋은데 그래서 어떻게 벌 거냐고? 스스로에게 아무리 질문을 던져봐도 아무런 대답도 나오질 않는다. 평생을 월급쟁이로 살아왔는데 월급 말고 돈을 만드는 법을 알리가 없지 않겠나. 수십 개의 알바를 했던 경험도 별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 결국 이것도 누군가의 밑에서 시간을 팔아서 돈을 버는 것이니 월급쟁이로 성장하기 위한 연습 과정일 뿐이다. 그렇게 열심히 연습한 덕분에 나는 월급쟁이라는 프레임에서 도무지 나올 수가 없었던 것 같다.
다들 이렇게 답답해지면 무엇을 하는지 궁금하다. 지금의 나라면 일단 책에서 답을 찾아보려고 노력해 볼 것 같지만 그 당시에는 책이라는 선택지가 전혀 없는 사람이었기에 다른 효과적인 방법을 찾았다. 사주를 보는 것!! 독서나 사주나 어차피 다른 사람의 조언을 듣는 것 아니냐는 귀여운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심심풀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진지하게 사주를 보러 가면 매번 말하는 것이 말년에 금전적으로 좋은 편이라고 한다. 좋은 이야기니까 들으면 기분이 좋긴 한데 내 머리로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해가 되질 않는 부분이 있다. 월급쟁이의 월급이 얼마나 된다고 금전적으로 좋아질 수 있는 건지? 지금처럼 사는 걸 말하는 것은 아닐 테고. 아무리 생각해도 돈이 나올 구석은 상여금 밖에 없는데 그래봤자 그게 얼마나 되겠는가. N잡 같은 것은 생각도 못해본 정말 꽉 막힌 사고를 하는 평범한, 아니 평균보다도 부족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러다가 우연한 기회로 시작하게 된 것은 부동산 공부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결심을 할 수 있도록 나를 이끌어주고 도와준 것은 다름 아닌 예전에 봤던 사주 결과였다. 4년 후에 대운이 바뀐다는 그 말에 꽂혔던 나머지 계속해서 의문을 품고 생각하게 되었다. 나도 모르게 끌어당기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4년 뒤에 대운이 바뀌고 금전적으로 잘 풀린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아무것도 안 하는데 그럴 리가 없잖아?”
그래서 뭔가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부동산이었던 것이고.
사실 엄청난 극적인 변화를 처음부터 꿈꿨던 것은 아니다. 그냥 막연한 시도였을 뿐이다. 뭐라도 해야 달라지겠지 라는 그저 희망사항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것에라도 매달리고 싶을 만큼 내 미래는 암울하게만 느껴졌다. 이렇게 살다가 늙어서 죽는다면 왜 나는 살아야만 하는 것인가 라는 생각으로 가득 찬 내 머리에게는 한 줄기 빛과 같은 존재였다고 자부한다. 자존감을 지하까지 파내려 가던 그 시기에 잠시 고개를 들어보니 푸른 하늘색이 아름다웠다. 내 인생이 달라질 수 있다고? 정말 평생을 지금처럼 사는 게 아니라고? 그것을 상상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두근거렸다. 오랜만에 살아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던 것 같다. 지금 당장은 변한 게 없지만 바로 그 순간에 모든 것이 변해버렸다. 인생이라는 향해 중에 키를 잡는 법을 드디어 알게 되었던 것 같다. 그 비싼 대학교에서는 안 알려주던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