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나는 늘 특별해지고 싶었다.
특별한 삶을 살고 특별한 글을 쓰고 싶었다. 어디에도 구속받지 않고 자유롭게 살면서, 남들이 귀 기울여 듣고 싶은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러나 인생은 기대와 상관없이 흘러, 나는 평범한 회사원이 되고 평범하게 결혼을 하고 다른 사람들처럼 아이를 가졌다. 그렇다 해도 글은 좀 다르게 쓰고 싶었다. 그래서 임신에 대한 글을 쓰면서도 어떻게 하면 남들이 하는 이야기와 차별화되는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임신의 전 과정을 남들과는 조금 다른 시선에서 바라보고 싶었다. 가능하면 예민하고 삐딱해지고 싶었다. 에세이라고 써 놓은 글이 진부한 넋두리같이 보이는 날엔 내 마음속의 비평가가 쏘아붙였다. 이런, 네이버 블로그 메모장에 끄적인 일기 같은 글이라니. 왜, 라인 프렌즈 스티커도 붙이지 그러니?
그렇게 잔뜩 날을 세운 채 어떻게 하면 좀 더 남달라 질 수 있을지를 고민하던 나를, 아기는 종종 무장해제시킨다. 재택근무 중에 임신성 하체부종으로 뭉친 다리를 벽에 올리고 누워 있다가 뱃속에서 톡톡, 톡톡 문을 두드리는 아기의 존재를 느끼는 순간, 나는 무방비 상태에서 감동한다. 태명을 부르며 배를 두드려 본다.
거기 있니? 잘 있는 거지?
내가 톡톡, 오른쪽 배를 두드리면 아이도 그쪽을 팡 하고 발로 찬다. 내 뱃속에서 생명이 자라고 있다. 늘 독특해지고 싶었던 나는 이 평범한 행복에 항복하고 만다. 아, 나는 남들과 완전히 다른 글을 쓰고 싶었지만 이건 그냥 사랑에 대한 이야기라고, 그것도 아주 평범한 사랑 이야기라고 인정해 버리게 된다.
오후 반차를 내고 간 30주차 진료에서 의사는 초음파를 통해 아기 머리카락이 자란 것을 보여주었다. 아기가 머리숱이 많은 편이에요, 의사는 말했다. 초음파에 눈이 부신 아이가 눈꺼풀을 깜빡, 깜빡하는 모습도 보았다. 1.5kg. 몸무게가 쓰인 초음파 사진을 받아 진료실을 나오면서, 내 뱃속에 머리카락이 있고 눈꺼풀을 자기 의지대로 깜빡이는 존재가 자라고 있다는 사실에 나는 또 감동한다. 이제는 설령 조산을 하더라도 인큐베이터에서 키워볼 수 있는 주차가 된 것에, 무교인 나는 누구인지 모를 신을 더듬더듬 찾아 감사 기도를 올린다.
여기까지 올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건강하게 아이를 낳고 아이를 돌보고 사랑을 쏟는 삶. 한때 내가 지루하고 평범해 마지않다 생각하는 삶을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린다. 그 평범한 행복이 누구에게나 허락된 것이 아니라는 것도 이제는 안다. 아기는 다 괜찮고 문제없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병원을 나서는 길, 여름 햇살이 초록 잎사귀 사이로 뜨겁게 쏟아지며 오색의 문양을 만드는 것을 본다. 길 건너 횡단보도에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든 직장인들이 얼음 든 컵을 까딱까딱 흔들며 수다를 떨고 있다. 초록색 마을버스가 걸음이 느린 할머니를 기다리며 느림보 걸음으로 정류장에 들어서는 모습을 본다.
이 평범한 여름날의 풍경 속에서, 나는 평범한 행복을 나 자신에게 허락해 주고 싶어진다. 남들과 차별화될 필요 없이 그냥 단순하게 행복해해도 괜찮다고. 이제 그 삐딱한 팔짱을 풀고 마음껏 사랑하고 신기해하고 설레도 된다고.
아기를 만날 날이 하루하루 더 가까워지고 있다. 아기를 기다리며 디데이를 세지만 그건 곧 내 남은 자유의 날들을 헤아리는 것이기도 하다. 끝이 없는 자유는 그게 자유인지도 모르지만 끝이 있는 자유는 숨겨놓은 알사탕처럼 달다. 좋아하는 알사탕을 숨겨놓고 하나씩 꺼내먹는 아이처럼, 얼마 안 남은 자유를 귀하게 음미한다.
주변 사람들의 배려와 걱정도 처음엔 어색하고 불편했으나 이제는 제법 즐긴다. 내가 이룬 성취 때문이 아니라 단지 뱃속에 사람 하나를 데리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축하받고 격려받는 날들도 얼마 남지 않았다. 출산과 동시에 사람들의 관심은 아기에게로 쏠릴 것이고 나는 난생처음 해 보는 엄마 노릇 앞에서 혼자 강인해져야 할 것이다. 그러니 남에게 자리 양보를 받고 야근을 자연스레 면제받는 날들을 마음껏 누리자.
뭔가가 되어야 한다는 마음, 뭔가를 이루어야만 한다는 마음을 내려놓은 자리에 맑은 샘물 같은 행복감이 차오른다. 행복한 임산부여도 괜찮다. 그게 조금 진부해 보여도 괜찮다. 그냥 필부로 살아도 되고 필부의 글을 써도 된다. 그냥 여자, 그냥 사람, 그냥 남들과 똑같이 사랑하며 늙어가는 사람의 이야기를 소중히 기록하고 싶다.
버스에 카드를 찍고 올라타 무거운 몸을 임산부석에 올려놓는다. 내 인생은 이제 목적지가 정해진 버스에 올라탔으며 시간이 지나면 곧 도착할 것이라는 데서 안도감을 느낀다. 평생 시달려온 특별함과의 전쟁에서 나는 졌지만 행복하다. 백기들고 투항한 자의 가벼운 마음을 싣고 버스가 스르르, 출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