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어떤 색을 좋아하시나요?
당신의 색깔은 무엇인가요? 알고 싶어요.
(What's your color? I wanna know)
저는 빨강, 노랑, 파랑, 보라색이 될 수 있어요.
(I could be red or I could be yellow. I could be blue or I could be purple. I could be green or pink or black or white)
당신이 좋아하는 모든 색이 될 수 있어요
(I could be every color you like)
인스타그램 릴스를 통해 이 곡을 알게 되었다. 처음 들었을 때는, 통통 튀는 멜로디와 이에 어우러지는 가수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참 좋았다. 가사는 모두 영어였지만,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단순한 '색'이 가사의 대부분이기에 쉽게 느껴졌던 거 같다. 스텔라장의 'COLORS'는 들으면 들을수록 더욱 매료되었다. 2분 남짓의 멜로디에서 어떻게 이런 매력이 느껴질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해 보니, 아마 가사 때문이었던 거 같다. 그녀가 쓴 가사를 눈으로 보며 노래를 듣고 나니, 매력은 배가 되었다.
교실에서 작은 사건이 있었다. 한 남학생이 크레파스로 핑크색을 집어 들었을 때였다. 옆에 앉은 여학생이 날카라운 목소리로 말했다.
"남자가 무슨 핑크야?"
"응?"
"남자가 무슨 핑크냐고. 이상해."
"내가 좋아하면... 좋아하는 거지..."
말을 더듬는 목소리에는 떨림이 느껴졌다. 순식간에 표정이 굳어졌고,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내가 괜찮다고 말해주려는 순간, 갑자기 저 멀리 앉아 있던 남학생이 그들에게 불쑥 다가섰다.
"괜찮아. 나도 핑크 좋아해!"
순간 아주 짧은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남학생이 덧붙였다.
"근데 그게 어때서?"
아이는 참았던 눈물을 터뜨리며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아이의 눈물은 멈추질 않았다.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마침내 헐떡이며 울기 시작했다. 설움을 토하는 것처럼 보였다. 10살 밖에 안 된 아이이지만, 아마 그런 말을 한두 번 들어본 게 아니었겠지. 그리고 아마 같은 편이 되어준 사람이 없었겠지. 고마움도, 안도감도, 그리고 오래 쌓인 설움까지 뱉어냈다. 아이에게 휴지를 가져다주며 생각했다. 그래, 단지 좋아하는 색을 말했을 뿐인데.
아이들을 집으로 보내고 나서도 그 장면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남자는 핑크를 좋아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어떻게 생긴 걸까 하고. 누가 알려주었겠지. 가르쳐준 거겠지? 그렇다면 대체 누가? 친구들이었을까. 엄마, 아빠였을까. TV였을까.
문득 며칠 전 수업 준비를 하다 놀랐던 기억이 떠올랐다. 아이들이 보는 애니메이션 속에 성 고정관념을 심는 듯한 내용이 생각보다 많았다. 예를 들어 애니메이션 '뽀로로'만 해도, 분홍색 치마를 입은 캐릭터 루피는 요리 같은 집안일을 좋아한다. 반면 파란색의 뽀로로는 실외 활동을 주로 보여주며 독립적이고 용감한 모습으로 그려진다. 다른 인기 만화도 비슷했다. 주인공은 대부분 용감하고 짓궂은 남자 캐릭터다. 여자 캐릭터는 상냥하고 착한 조연이거나, 쉽게 토라져서 달래줘야 하는 보조적 역할로 등장한다. 장난감 매장만 봐도 그렇다. 공주 인형과 소꿉놀이는 핑크 포장지에, 로봇과 자동차는 파란 포장지에 담겨 있다. 색깔로 성별을 나누는 건 너무나 당연한 것처럼.
아이들은 아마 자연스럽게 배웠을 것이다. 파란색은 남자의 색, 핑크색은 여자의 색이라고. 남자는 이래야 하고, 여자는 저래야 한다고. 그렇게 우리 어른들이 아주 어릴 때부터, 보이지 않는 선을 그어왔던 건 아닐까.
퇴근하는 길, 하늘을 올려다보니 노을이 넓은 공간을 여러 색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주황빛, 분홍빛, 보랏빛으로. 여러 색이 마구 뒤섞여 형언할 수 없이 아름답다고 느끼던 순간이었다. 모든 색이 함께 어우러져 더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하늘은 그 어떤 색도 거부하지 않구나.
"I could be every color you like (당신이 좋아하는 모든 색이 될 수 있어요)"
그러다 어떤 색깔도 되지 못하는 건 인간만이 유일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틀 안에 가두는 건 개인일까 우리일까 사회일까 싶었다. 그러다 그 색 자체로 존중받는 세상이 오면 좋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빨강이든, 노랑이든, 파랑이든, 핑크든.
오늘 눈물 흘리던 그 아이가 언젠가는 자신의 색을 자연스레 말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그런 날이 오기를 조용히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