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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 운전 딱지'가 거슬렸다

by 새내기권선생

집에서 조금 먼 곳으로 첫 발령을 받게 되었다. 자취를 고민하던 내게 아버지는 평소 몰던 차를 흔쾌히 선물해 주셨다. 삐까번쩍한 차는 아니었지만, 내게 차가 생겼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히 설렜다. 더러워지면 직접 손으로 세차했고, 부품을 교환한 날짜까지 전부 기록해 가며 관리했다. 가끔 차에 못 보던 문콕 자국이라도 남아 있는 날에는 내 몸에 상처 난 것처럼 아려왔다.

그리고 평소 가고 싶었던 곳들을 차를 타고 이곳저곳 다녔다. 평소에는 잘 가지 못하는 인적 드문 바다가 보이는 카페를 가기도 했고, 어떤 날은 한 번도 가지 못했던 곳으로 가서 등산하기도 했다. 돗자리를 펴서 강을 보며 커피를 마시는 날에는 차가 있다는 게 이렇게 좋은 건가 싶었다. 하지만 동시에 나는 초보 운전자였기에 노심초사했다. '초보 운전'이라고 쓰여있는 스티커를 뒤편에 대문짝만 하게 붙였고, 다른 운전자에게 방해되지 않을까 하며 전전긍긍했다. 규정 속도를 철석같이 지켰기에 과속하는 사람들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1차선은 꿈도 꾸지 않았고, 노란불이 걸리면 급 브레이크를 밟아 멈추려 애썼다. 차선을 바꾸려고 깜빡이를 켜면 일부러 앞으로 쏜살같이 치고 들어오는 차들이 얼마나 얄밉던지.


그런데 시간이 흐르자, 언제부턴가 내 차의 뒤편에 붙여둔 '초보 운전' 스티커가 거슬리기 시작했다. 초보 운전이라는 문구가 날 지켜주는 게 아니라 이상하게 공격의 빌미가 된 것만 같았다. 끼어들기를 일부러 더 안 해주는 것 같고, 이상하게 나에게만 더 클락션을 울리는 거 같았다. 초보라서 배려받는 게 아니라, 비난할 수 있게 표적을 만들어 준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과감하게 나는 스티커를 뜯어 쓰레기통에 버렸다.

전보다 클락션 소리가 줄어든 것 같았다. 이상하게 양보도 더 잘해주는 것 같았다. '그래, 사회가 원래 그런 거지 뭐.' 하며 자조했다. 강약약강. 강한 사람한테 약하고, 약한 사람한테 강한 게 당연한 거지.

하지만 동시에 내 운전 습관은 점점 망가져가고 있었다. 규정 속도를 잘 지키지 않았고, 1차선을 마구 횡보하며 액셀을 한껏 밟았다. 무리하게 끼어드는 차들을 향해 이번에는 내가 클락션을 울렸고, 노란불이면 액셀을 밟고 있었다. 특히 거북이 운전자가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분명 나도 초보였던 시절이 있었는데, 그들을 향한 관용이 점차 사라져 갔다.


어느 날, 똑같이 무료하게 퇴근하던 날. 사건이 일어났다. 하필 퇴근 시간이라 차들이 길게 줄지어 있었다. 우 편을 보니 한 차가 골목에서 우회전 방향지시등을 켜고 타이밍을 잡지 못한 채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었다. 앞 유리 너머로 초조한 표정의 운전자가 보였다. 잠시 브레이크를 밟고 그가 우회전할 수 있게 기다려줬다.

양보받은 운전자는 비상등을 계속 깜빡였다. 정말 고마웠던 모양이었다. 그의 표정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그리고 그의 차 뒤편에는 '초보 운전'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마침 뒤에서는 아주 강한 클락션이 울렸다. 아마 '왜 멈춰, 끼워주지 마'라는 신호였을 것이다.

집에 가는 동안 생각에 잠겼다. 누구에게나 초보일 때가 있었는데. 왜 나는 그들을 배려하고 있지 않았을까 하고.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한다더니.


초보운전을 탈출하고 싶었던 날, 내가 떼어버린 건 단순한 스티커 하나가 아니었다. 서툴렀던 시절의 나, 그리고 배려받고 싶었던 마음까지 함께 쓰레기통에 내동댕이 쳐버렸다. 오늘부터라도 브레이크로 누군가를 조금 더 기다려주는 마음을 갖고 싶다. 누군가의 초보 시절을, 누군가의 서툰 용기를 떠올리며. 알게 모르게 내가 받았던 작은 배려를 이제는 나누며 살아야 할 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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