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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영 Aug 16. 2024

참는 즐거움

찐사랑

집에 오는 길에 트레이더스에 들러 두 마리 치킨을 샀다. 우리 가족은 모두 치킨을 사랑한다. 내가 특히 더 사랑한다. 마음만 먹으면 1닭 할 수 있다.


나의 치킨 사랑은 유난하다. 닭고기의 오도독뼈까지 오독오독 씹어 먹는다. 한창 때는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나는 냄새만으로 어느 치킨 브랜드가 다녀갔는지를 맞췄다. 우리 오빠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닭남매로 통했다.


내 첫사랑은 나와 치킨 먹는 것을 꺼려했다. 첫 단추가 잘못 껴졌다. 우리 둘이 처음 치킨 호프집을 들어간 날, 그는 치킨 반 마리를 주문했고(그 당시에, 그곳엔, 메뉴판에 반 마리가 있었다)  나는 진심으로 깜짝 놀랐었다. 내 머릿속엔 한 마리냐 한 마리 반이냐를 고민하고 있었지 반 마리는 생각도 못했었다. 깜짝 놀라는 내 모습에 그는 당황했고 나의 주장으로 결국 한 마리로 주문을 정정했다. 그리고 우린, 어쩌면 나는, 깨끗이 한 마리를 먹어치웠다. 그 뒤로 그는 나와 치킨을 먹으려 하지 않았다. 이유를 물으니, 내가 치킨을 먹을 땐 다른 사람이 된단다. 치킨 먹는 내 모습이 그렇게 낯설다 했다. 결국, 우리는 헤어졌다. 물론 치킨 때문만은 아니었다.


아무튼, 그 정도로 치킨을 사랑하는 내가 오늘, 눈앞에 치킨을 두고 참았다. 주말의 시작점, 금요일, 집밥이 지루하겠다 싶어 치킨을 사 들고 갔다. 에어프라이어로 한 번 데우고 샐러드와 함께 저녁 상을 차렸다. 남편과 아들이 맛있게 먹었다.


나는 그 모습을 바라만 봤다. 내가 치킨을 참을 수 있구나. 난 먹지도 않으면서 왜 식탁에 앉아서 이들을 바라보는가. 먹진 않아도 저녁 식사를 함께하고 싶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다.


남편은 자꾸 내게 닭다리를 권했다. 꼴깍. 안 된다. 그잖아도 내 몫은 좀 남겨뒀다고 말했다. 나는, 내일, 낮에 먹을 예정이다.


요즘 두 끼 먹기를 실천 중이다. 거울을 볼 때마다 못생긴 뚱땡이에 화들짝 놀라 살을 빼기로 했다. 그런데 너무도 안 빠진다. 찌는 건 금방인데 빼는 건 너무 어렵다는 걸 실감 중이다. 나잇살이라는 게 괜히 있는 말이 아니다. 먹는 걸 너무 좋아하는 나는 더더욱 어렵다.


세끼를 다 먹으면 찌고 두 끼를 먹으면 현상이 유지된다. 거기에 걷기를 병행 중이다. 하루 6000보는 걷는다. 만 보를 못 걸어서인가. 거북이가 기어가는 속도로 살이 찔끔찔끔 빠지는 중이다. 매일 체중을 재는데 50그램에서 백 그램 사이로 줄고 있다. 그러다 한 번 많이 먹거나 걷기를 안 하면 500그램 정도가 늘어난다. 도대체가 너무... 하다.


이런 이유로 오늘, 치킨을 참았다. 그리고 걸으러 나갔다. 문득 해가 졌다는 게 신기했다. 저녁 8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어둠이 내리기 시작했다. 이렇게 더워도 태양의 시계는 가을을 향해 가고 있었다. 나의 체중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처음으로 참는 즐거움을 느꼈다. 나도 치킨을 참을 수 있다. 어쩌면 이것은 나도 살을 뺄 수 있다는 희망의 징조일 수 있다.


예쁘게 지는 노을을 보며, 속이 비었다는 허기를 느끼며, 또 썩 괜찮은 기분이었다. 나도 예쁘게 지고 싶다고 생각했다. 살을 좀 빼면 가능하지 않을까.


일기를 써야만 하는 날이었다. 내 인생 처음으로 나의 의지로 치킨을 참았다.


                                                             2024. 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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