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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영 Apr 07. 2024

내 편이 없다.

각자의 사정

띠띠띠띠

찰칵     


밤 열 시. 오늘도 긴 하루를 끝내고 집에 도착한 희유를 유영이 모든 짜증을 참는 얼굴로 본다. 또 저 똥 씹은 표정..이라는 생각에 희유가 못마땅하다. 부부는 서로의 얼굴만 봐도 감정을 안다. 희유는 그것조차 숨이 막힌다.    

 

"왔어?"

"응, 신이는?"

"방에 있지. 신이야 엄마 오셨잖아!"

"응, 엄마"     


신이가 나와서 얼굴을 보여주더니 도로 방에 들어간다. 희유는   "우리 신이 학교랑 학원  -"

말을 하다 만다. 사춘기 아들은 엄마의 대사가 반갑지 않다. 휙 들어가 버리고 만 아들 방을 물끄러미 보던 희유도 안방으로 향한다. 안방으로 향하는 희유가 유영은 못마땅하기만 하다. 왜 내가 빨래를 개고 있는가. 희유가 대안학교로 이직하면서 일이 많아졌고 덩달아 집안일에서 유영의 역할이 커졌다. 유영은 오늘도 일찍 퇴근해서 신이 저녁을 챙기고 건조기를 돌렸다. 아이를 학원에 보냈고 지금은 빨래를 개는 중이다.    

 

"놔둬. 내가 씻고 할게."     


희유의 영혼 없는 목소리도 유영의 짜증을 부추긴다. 마음에도 없는 소리. 빨래를 다 개고 소파에 앉아서 티브이를 켰다. 이십 분쯤 지났을까, 드디어 희유가 나온다. 우린, 오늘, 처음 만났다. 아니 어제도 인사밖에 나누지 못했다.     


"빨래, 내가 갠다니까, 다 했네. 그럼 나 들어가서 책 좀 보다 잘게."

"지금 잔다고? 이제 들어왔는데 그냥 자?"

"힘들어. 수업 준비도 다 못했고."

"난 안 힘드니? 야, 남은 일은 다 내 몫이야? 무슨 쌍팔년도 아버지처럼 행동해? 옛날 아버지가 집에 들어오면 자빠져 있고 그럼 엄마들이 잔소리하잖아. 넌 지금 더 해."

"... 내가 지금 해야 할 일이 뭔데? 지금 신이는 방에서 안 나오고 당신은 티브이 볼 거잖아. 옆에 멍하니 있어? 남은 일이 뭔데?"

"야, 애 불러다 숙제했는지 물어도 좀 보고 우유도 한 잔 주고. 애 기분도 어떤지 살피고."

"애 기분 나쁘네. 엄마가 말하는데 들어가 버리는 애의 기분을 뭘 살펴. 우유 안 줬어? 학원 갔다 오면 주더만. 왜 오늘은 안 주고 나한테 시비야?"

 "뭐? 안 주고 시비? 야, 나는 노니? 내가 너한테 생활비 받아 쓰는 사람도 아니고 짐 빨래까지 끝내 논 사람에게 뭐? 우유 안 줬어? 야... 진짜 옛날 아버지보다 더 하다 너?"

"아이 씨, 그 넘의 쌍팔년도 아버지 타령. 내가 뭘 안 했는데? 밥은 어떻게 먹었어? 그거 누가 해 놓은 건데? 빨래는? 내가 분류해서 예약 걸어 놓은 거잖아! 다섯 시도 안 돼서 일어나. 6시면 나가는데 다 해놓고 가잖아. 지금 뭔 소리 하는 거야? 신이 잘 때까지 내가 있어야 해?"

"목소리 낮춰. 밤이야."

"그러니까 입 닥치고 들어가겠다고. 억울하면 당신도 아무것도 하지 마. 건조기 돌리라고 한 적 없어. 야, 이 신. 너도 자. 늦게까지 뭐 하는 거야."  

   

쾅.     


 "X팔, 또 지 할 말 다했다고 문 닫고 들어가?"     


막무가내, 안하무인이다. 퍼붓고 들어가면 끝이다. 개 놓은 빨래가 유영을 더 화나게 만든다. 안방과 신이 방문은 열리지 않는다. 유영은 맥주 한 캔을 꺼내서 마시기 시작했다. 티브이도 재미가 없다. 일이 잘 풀리지 않아 더 짜증이 났던 건지도 모른다. 집안일하며 아내를 기다리는 스스로가 못나게 느껴졌다. 희유는 티브이에 흥미가 없다. 그냥 수다 떠는 걸 좋아하는데 둘은 이제 공통의 관심사도 별로 없다. 유영은 희유의 학교 얘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불평과 불만 투성이라서 듣는 사람의 마음이 불편하다. 바깥 얘기 그만하고 우리 얘길 하자고 했다. 이런 아줌마 같은 대사를 하게 만든 희유를 원망하기도 했다. 그 뒤로 희유는 학교 얘길 잘하지 않는다. 대신 부부 사이의 대화가 급격히 줄었다.   




희유는 침대에 벌러덩 누웠다. 진짜 뭣하나 맘에 드는 것이 없다. 눈물이 흐른다. 갑자기 전화벨이 울린다. 세상에, 엄마다. 희유는 시계를 보고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평소에 전화하시지 않는 시간인데... 의외의 시간에 오는 전화는 긴장을 불러일으킨다. 얼른 목소리를 가다듬고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딸, 잘 살아 있어?"

"네. 이 밤에 웬일이에요?"

"네가 하도 전화가 없으니까, 어디 아픈가 했지."

"...(내가 언제 전화했더라?) 괜찮아. 이제 자려고."

"목소리엔 기운이 하나도 없는데?"

"너무 힘들어서. 엄마 나 그만둬야 할까 봐요."

"그만두긴 뭘 그만둬. 젊어서는 다 힘든 거야."

"엄마 젊어서 고생하시고 지금도 힘드시잖아. 젊어서 고생이 나이 먹고도 힘들 게 하는 거 아냐?"

"고생 안 해도 나이 먹음 다 힘들어. 그리고 선생이 뭐가 그렇게 힘들다고 그러니?"

"몰라. 힘들어. 여기 그만두고 다시 기간제 할까 봐."

"복에 겨운 소리 한다. 쪽팔리게 막 옮겨 다니려고? 그냥 있어. 언제 올 거야?"

"몰라, 힘들다고."

"네가 곱게 커서 그래. 뭘 그렇게 힘들다고 난리야."

"주말에도 출근해."

"그럼 일요에 오면 되지. 일요일은 안 갈 거 아냐."

"나도 좀 쉬자고."

"아니 우리 집에서 쉬면 되지."

"몰라, 나 잘 거야. 끊어요."

"참내.. 그래, 얼른 쉬어라."     


뚝.

정말 다 자기 생각뿐이다. 희유는 전화를 집어던졌다. 하도 전화가 없어? 불과 삼 일 전에 통화를 한 게 생각났다. 쪽팔려? 희유가 기간제 교사로 근무할 때 부모는 딸을 교사로 인정하지 않았다. 비정규직은 부모에게도 인정받을 수 없는 위치였다. 대안학교 정교사로 합격했을 때부터 아빠에게 딸은 '박 선생'이었다. 세상을 다 가지신 것처럼 좋아하던 아빠의 모습이 떠올랐다. 엄마도 이제 계약 끝나는 거 걱정 없다고 신나 하며 우리 딸이 유명한 대안학교 교사라고 동네방네 소문을 냈다.     

유명한 대안학교는 맞았다. 명망 있는 학교였다. 그러나 그 명망은 교사들의 열정페이로부터 나온 것이다. 희유는 숨이 막힌다. 엄마와 통화 후 더 서럽기만 하고 잠이 오지 않는다. 거실에선 남편이 씩씩거리고 있다. 방에서 아들은 뭘 하는지 모르겠다. 벌써 11시다. 엄청난 답답함과 공포가 몰려왔다.  대략 일곱 시간 뒤, 나는 또 운전을 시작하겠지.    


아이 씨, 국어 진짜 싫어.

무슨 쌍팔년도 아버지야?

하도 연락이 없어서...     


하루에 들은 원망의 목소리가 귓가에 웅웅 맴돈다. 나는 지금 무얼 하고 있는가. 희유는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일곱 시간 뒤 시작될 하루의 모습도 오늘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숨 막힌다. 식은땀이 나기 시작한다.

    

나는, 왜, 살고 있지?

     

이불을 뒤집어쓰고 말똥한 정신으로 눈을 감았다. 이제, 눈물도 나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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