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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영 Apr 21. 2024

삶의 무게

하루를 살아내다

"오늘 회의 없는 목요일, 목맥주 어때요?"

"좋아요. 난 고기만 먹어야지~"

"ㅋㅋ 전에도 그러시더니 차 두고 가셨잖아요."

"그럼 한 잔만ㅎㅎ  희유 쌤은 대리?"

"아녜요. 맛있게 드세요. 전 오늘 집으로."

"응? 쌤 일정 있어요?"

"아뇨, 애 저녁도 안 챙겨놨고, 좀 힘드네요."


퇴근 후 맥주 한 잔. 희유가 애정하는 스케줄이다. 그러나 오늘의 희유는 민영의 제안이 땡기지  않았다. 몸이 힘든 것도 맞고 아이의 밥이 준비 안 된 것도 맞지만 무엇보다 어제 유영과의 일이 신경 쓰였다.


[나 곧 퇴근할 건데, 저녁 집에서 먹어?]

[오, 잘 됐네. 그잖아도 본사에서 온대서 걱정하던 참인데. 그럼 네가 신이 저녁 챙겨줘. 난 먹고 갈게.]

[응]


오로지 신이 밥이 걱정인 사람. 희유는 유영이 엄마보다 낫다고 생각했다.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희유는 후다닥 가방을 들고 나왔다. 퇴근길에 트레이더스에서 피자를 사 갈 예정이다. 아이가 좋아하는 걸로 오랜만에 오붓하게 저녁을 먹어야지. 살짝 설렘을 느낌과 동시에 오한도 함께 느껴진다. 왜 이러지. 어쨌든 운전을 시작했다. 예정대로 트레이더스에 들러 장을 보고 들어오니 딱 여섯 시다. 정신없이 주방을 정리하니 신이가 들어온다. 피자를 데우고 샐러드도 준비하여 정성껏 식탁을 차렸다.


"신이야, 저녁 먹자."

"응"


오랜만이다. 둘이 밥 먹는 거.


"학교는 어땠어?"

"그냥"

"별일 없고?"

"응"

"재밌는 일 없었어?"

"응, 학교를 재미로 다니나..."

"그래도 재미도 있잖아."

"재미없어."


대화가 재미없다, 이놈아. 희유는 뭐 어쩌겠나 피자나 먹어라 싶었다. 그러나 정작 희유는 계속 오한을 느끼며 입맛이 없다. 피자를 먹을 수 없었다.


"아들, 이제 수학?"

"응"


희유가 저녁 먹은 걸 치우는데 오한이 심해지고 목이 아픔을 느낀다. 열을  뵀더니 웬걸, 38도다. 괜히 힘든 게 아니었구나. 희유는 어쩔까 생각하다 오늘 야간 진료가 있는 날임이 떠올랐다. 병원과 친한 희유는 온 병원 스케줄을 꿰고 있다.


6시 50분, 신이가 어김없이 학원 가방을 챙겨 나오는데 엄마도 같이 신발을 신는다.


"엄만 왜?"

"너 데려다주려고."

"무슨 소리야~ 나 혼자 갈 거야."

"농담이야. 엄만 병원 가려고."

"아."

"뭐가 아~ 야? 엄마 어디 아픈지 안 물어?"

"어디 아픈데?"

"휴... 감기."

"응"


신이에게 엄마가 병원 가는 일은 특별한 게 아니다. 엄마는 자주 병원엘 간다. 그리고 금세 괜찮다. 병원은 가는데 크게 아파 보이지 않는다.


희유는 운전도 대중교통도 귀찮다. 병원이 문 앞에 있었으면 좋겠다. 시동을 걸고 꾸역꾸역 갔더니 또 병원이 인산인해다. 세상에, 아픈 사람이 많구나. 접수를 하고 앉아 있는 희유의 눈에 온갖 영양제 링거를 소개하는 입간판이 들어왔다. 딱히  살고 싶은 건 아닌데 그래도 사는 동안엔 아프지 말아야 한다. 몸이 아픈 건 가족에게 못할 일임을 희유는 직*간접적으로 체득했다.


기다리는 동안 먼저 영양제를 맞을 수 있는지 물어봤다. 간호사는 희유에게 증상을 물었고 열을 쟀다. 38.5도. 열이 많네요. 간호사가 의사에게 묻고는 링거부터 맞혀주겠다며 희유를 안내했다. 희유는 침대에 눕자마자 눈을 감았다.


"환자분, 좀 따끔합니다."

"아아악~ 너무 아파요."

"환자분, 몸이 많이 안 좋나 보너요. 지금은 괜찮죠?"

"네."


링거를 맞으며 까무룩 잠이 들었다.




본사서 나온 사람은 해외영업부 신입이었다. 유영은 어이없었다. 유영 회사 담당이 신입사원이다. 새파랗게 어린놈이 오는데 여긴 대표가 맞아야 한다. 담당이라고 다리 꼬고 거만하게 브리핑을 듣는 모습이 아니꼬웠지만, 어쩔 수 없다. 유영은 담당을 극진히 대접했다.


집에 가서 희유랑 맥주나 한잔 해야겠다. 사업이 녹록지 않다. 유영은 맥주를 사서 집에 왔는데 집이 텅 비었다. 분명 희유가 일찍 온댔는데.


띠띠띠띠.


신이가 들어온다.


"신이 왔어? 엄마는?"


하는데, 희유도 들어온다. 또  힘든 표정이다.


"아니, 일찍 온다며? 신이 저녁은 어떻게 한 거야?"

"애 밥이 그렇게 걱정돼? 병원 갔다 왔어."

"아... 퇴근했다가?"

"응"


서로 생각이 다르다. 희유는 어디가 아프냐고 묻지 않는 유영이 서운하고 유영은 맥주를 함께 마실 수 없겠구나 씁쓸하다. 아직도 오한에 몸이 떨려 희유는 손만 씻고 이불을 뒤집어썼다.


방에 들어온 유영이 그런 희유를 가만히 본다.


"병원서 뭐래? 약은 먹었어?"

"몸살이지, 뭐"


실은 약을 먹지 않았다. 속이 비어서 약을 먹기가 뭐 한데 입맛이 없다. 희유는 이불속에서 눈을 붙였고 유영은 거실로 나왔다. 희유와 신이가 남긴 피자를 데우지도 않은 채 안주 삼아 맥주를 땄다. 티브이를 보는데 화장실을 갔던 신이가 세상 공손하게 아빠를 부른다.


"응?"

"변기가 막혔어요."

"또?"

"응, 죄송해요. 근데 아빠 뭐 봐?"


신이가 옆에 와서 앉는다. 아빠가 보는 예능에 요즘 핫한 아이돌 그룹이 나왔다.


"너도 얘네 좋아해?"

"응. 친구들도 다 좋아해."


희유가 아예 씻고 잘 준비를 하려고 나오는데 부자의 도란도란한 모습이 보인다. 난 아픈데 니들은 좋구나. 괜히 서운하다. 화장실에 가려는데


"엄마, 안 돼. 변기 막혔어."

"좀 앉아 있어. 내가 뚫어줄게."


유영은 변기를 뚫고 희유는 냉장고서 유산균을 꺼냈다.


"신이야, 유산균 먹어."

"싫어."

"뭐가 싫어. 아빠 그만 고생시키고 먹어.'

"응..."


씻고 자려고 누웠는데 부자의 회기애애한 대화소리가 계속 들린다. 희유는 눈을 감은 채 눈 속이 뜨끈해지는 걸 느낀다. 이제  세상을 떠나도 될 것 같다.




유영이 자러 들어와서 보니 희유가 온통 땀에 젖어 있다. 수건으로 땀을 닦아 주는데 다행히 열이 나진 않는다. 땀으로 싹 빠졌나. 유영은 정신없이 자는 희유를 보며 문득, 너는 뭐가 그렇게 힘드니 생각했다. 살쪘다고 그렇게 투덜거리더니 얼굴이 말랐다.


'휴...'


유영도 희유 옆에 가만히 누웠다. 긴긴 하루가 끝났다. 우리의 삶이 언제부터 이렇게 고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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