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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영 Apr 14. 2024

삶의 이유

존재의 가치

저 멀리서 자그마한 신이가 까르르까르르 웃으며 뛰어온다.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 쪼그리고 앉아 두 팔 벌려 아이를 안을 준비를 했다. 이제 곧 내 품 안에 쏙 안길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아이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당황하고 놀라 벌떡 일어났는데 앞에 오빠, 희성이 있다.


"오빠?"

"응, 뭘 그렇게 놀래?"

"어떻게 왔어? 이제 안 아파?"

"아프긴... 집에 기려고 왔지."

"그래, 얼른 가자."


오빠의 팔짱을 끼고 조심스럽게 걷는다. 오빠를 다시 잃으면 안 된다는 생각에 동작 하나하나를 매우 조심한다. 집문을 열고,


"오빠 얼른 방에 가서 누워 있어. 내가 맛있는 거 해 줄게."

"응, 나 좀 잘게."

 

마치 어린 신이를 보살피듯 오빠에게 이불을 덮어주고 주방에서 요리를 시작했다. 닭을 손질하고 데치고 삶고 찹쌀을 불리고 그렇게 닭죽을 뚝딱 만들고,


"오빠, 죽 먹자!!!"


방문을 열었는데 오빠가 없다. 방은 온통 하얀빛이 번쩍인다.




희유가 눈을 번쩍 떴다.


하아...


깊은숨을 쉬며, 꿈이었구나, 상황을 이해한다. 옆에 유영이 없고, 시간은 새벽 네 시 반이다. 희유는 괜히 불안한 마음에 일어나서 신이 방문을 슬쩍 열어 보았다. 귀여운 아이가 쌔근쌔근 자고 있다. 오랜만에 보는 아들의 자는 모습은 애기 신이와 닮아 있었다.


다시 주방으로 가다 돌아보니 유영이 소파에서 자고 있다. 이불을 가져다 덮어주고 크게 또 한 번 한숨을 쉬었다.


희유는 밑반찬을 확인하고 달걀말이를 만들었다. 그리고 후다닥 밥을 안치고 물 한 잔을 쭉 마셨다. 정작 자신은 먹을 밥이 없다.


화장대 의자에 멍하니 앉아 거울을 들여다봤다. 살찌고 푸석한 얼굴이 참 보기 싫다. 꿈속에서 본 희성은 그대로였는데 자신은 볼품없어졌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또 생각한다. 나도 희성처럼 떠날 수 있지 않을까. 세상을 떠나면 어떻게 될까.


희유는 지금이 버겁기만 하다.




 "날자, 한 번만 더 날아보자꾸나, 여기서 '날자'를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진짜 날 수는 없을 텐데 주인공은 무슨 의지를 표현한 걸까?"

 "자살이요!"

 "응? 아니요, 새 출발 하겠다는 거 아니에요?"

 "오, 좋아. A부터, 왜 자살로 생각했는지 얘기해 볼까?"

 "아내에게 배신감을 느꼈으니 이제 의지할 데가 없잖아요. 그러니까 자살 아니에요?"

 "말도 안 돼. 선생님!! 의지할 데가 없다고 자살해요? 그러니까 이제 자립해서 살겠다는 의지 아니에요?"

 "아니죠. 주인공은 유폐된 삶을 살았잖아요. 갑자기 어떻게 새 출발 해요?"

 "두 학생 의견 다 일리가 있어요. 우선 A 주장부터 같이 이야기해 볼까? 그는 유폐된 삶 속에서 아내만 의지하다가 아내에게 배신감을 느꼈죠. 그렇다면 살 이유를 잃어버린 걸까?"

 "선생님은 이유가 있어서 사세요?"


 갑자기 C가 뜬금없이 질문했다. 희유는 좋은 질문이라고 칭찬하면서 머릿속으로 답해줄 말을 고민했다. 요즘 희유의 관심사가 바로 저 질문이었다. 나는, 왜, 사는가.


 "삶의 이유가 무언인지 꼭 집어 말할 수는 없겠지만 이유가 있겠죠?"

 "그게 뭐예요~"


 희유가 사는 이유는 책임이었다. 남편과 아이를 자살 유가족으로 만들 수 없었고 이미 아들을 앞세운 부모님이 딸까지 앞세우게 할 수 없었다. 그게 지금 희유가 존재하는 이유다.


  "내 삶의 이유는 책임인 것 같아. 생명을 얻은 책임. 그런데, 이 얘긴 담에 또 하기로 하고 《날개》에서 '나'의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 볼까?"


 수업을 마치고 자리로 돌아온 희유는 자리에 털썩 앉는다.  힘들다. 언제부턴가, 힘들다는 소리가, 숨처럼 나온다.


 희유는 숨을 고르다 문득, 어젯밤 꿈을 떠올렸다. 오빠가 나오고, 그를 보살피는 꿈은 특별하지 않다. 오빠를 보내고 자주 꿨던 내용이다. 그런데 어린 신이가 뛰다가 사라진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 괜히 찝찝하다. 희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꿈에 의미를 부여하지 말자. 희유는 또다시 고됨을 느끼며 눈을 잠시 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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