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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영 Apr 28. 2024

생각

이유 있는 무기력

다시 새날이 시작됐다. 희유는 눈을 뜨고 그저 멍하니 침대에 앉았다. 잘 잤다. 생각보다 컨디션이 좋다. 희유는 한숨이 나왔다. 간단히 샤워를 하고 나서 자는 유영의 얼굴을 보며 또 한숨을 쉰다.


'당신은 좋겠다. 일찍 안 나가도 되니.'


희유는 거실로 나가 생각에 빠졌다. 왜 몸이 괜찮지. 아파야 결근을 할 텐데.  지금 나는 뭘 하고 있는 것인가.

희유는 잠시 베란다에 나가 밑을 내려다본다. 까마득하게 높다. 떨어지면 바로 사망일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는 자신에게 화들짝 놀란다.


희유는 스스로를 만성 우울증이라고 진단 내렸다. 아침도 저녁도 주말도 없는 삶을 살면서 유영의 눈치를 보고 매달 카드값을 걱정하며 통장 잔고와 나갈 돈을 원 단위까지 계산한다. 그러면서 생각한다. 무엇이 문제인지. 돈이 없다는 사실은 남편에게도 말 못 할 정도로 자존심이 상한다. 분명 생활비로 쓰는 것인데 왜 이것까지 죄책감을 느끼나. 경제 공동체인데 희유 눈에 유영은 늘 여유 있어 보인다. 희유는 그게 이상할 따름이다.


도저히 재미가 없다. 희유에게 삶이 재미없어진 지는 꽤 됐다. 희유에게 하루하루는 다람쥐 쳇바퀴 굴리는 일상이다. 날이 갈수록 다람쥐는 힘이 빠지는데 쳇바퀴는 자꾸 커진다.  


시답잖은 생각의 나래를 펼치다 보니 어느덧 다섯 시가 넘었다. 역시 간단한 아침을 준비하고 또 물 한 잔에 약을 들이켠 채 옷을 입고 화장을 한다. 기운이 하나도 없다.


"몸 괜찮아?"


웬일로 유영이 일어나 질문을 한다.


"응"


의아한 희유는 짧게 답하고 을 나선다. 더 할 말이 없다. 차를 희유의 눈에서 눈물이 쏟아진다. 유영의 한 마디에 마음이 놓였나. 아니면 힘든 것일까. 희유도 희유 자신을 이해할 수 없다. 다만 기운이 없다. 이렇게 힘든데 출근을 해야 한다. 이제는 무엇이 그렇게 힘든지도 모르겠다. 그냥 싫을 뿐이다.


희유는 시동을 켜지 못한 채 울었다. 못 가겠다. 숨이 막힌다. 몸이 힘들다.


"오빠.. 나 어떡하지?"


희유는 문득 오빠에게 말을 걸었다. 오빠라면 뭐라고 해 줄까.




희유는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오빠에게 질문을 했었다. 그러면 희성은 늘 단순 명료하게 답을 해 줬다.


"나 내일 사회 시험인데 공부 하나도 안 했어."

"두 번만 소리 내서 읽어."


"오빠 나 디카 갖고 싶은데 돈이 없어."

"넌 샀어. 잃어버린 거야. 그럼 됐지?"


"오빠 있잖아, 친구가 만나자고 하는데 돈이 없어."

"안 나가면 되지."


"아빠 큰일 나셨다는데? 감옥 가면 어떡해?"

"아니야. 그럴 일 없어. 일이 생겨도 벌금 내면 돼."


희유는 언제나 막힘없는 희성이 신기했다. 사소한 것도 큰일도 늘 명쾌해서 천재는 다르구나 싶었다.




희유에게 정신적 지주이자 친구이자 멘토이자 오빠였던 희성이 세상을 떠나면서 희유는 이 험한 세상에서 드디어 홀로서기를 시작했다. 그리고  년이 되어 간다. 희유는 아직도 이 세상이 어렵기만 하다.


"나 어떡하지.. 못 가겠어."

"뭘 어떡해. 안 가면 되지."


희유의 마음속에서부터 단순 명료한 답이 울려 퍼졌다. 이 학교로 오고 만 사 년 동안 한 번도 결근해 본 적이 없는 희유이다. 코로나도 희유를 피해 갔다. 그러나 도저히 출근을 못하겠다. 희유는 마음을 먹고 민영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제가 너무 아파서 출근이 힘들 것 같습니다. 2, 3, 5교시 11, 10, 12 학년 수업이 있어요. 수업 대체 구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죄송해요. 너무 아프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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