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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영 May 05. 2024

일탈

예상치 못한 일


희유는 해가 뜨는 바다를 생각하며 방향을 잡았다. 다른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저 갈 뿐이다.


고속도로로 들어서고 네비가 가리키는 대로 열심히 밟는데, 옆에서 자꾸 빵빵거린다. 나랑 상관없겠지. 그런데도 계속 빵빵거린다. 희유가 고개를 돌려 보니 옆차 운전자가 창문을 열고 희유에게 손짓을 한다. 희유도 창문을 열었다.    


“차 타이어 빵꾸 났어요! 계속 달리시면 안 될 거 같아요.”
“저요?”
“네”
“아, 감사합니다.”   

  
당황스럽다. 희유는 운전만 할 뿐 무엇 하나 아는 게 없다. 펑크 난 것도 몰랐단 말인가! 계속 가야 하나? 멈춰야 하나? 고속도로는 빠져나와야 하나? 갓길에 세워야 하나? 희유는 당황해서 유영에게 전화를 걸었다. 벨이 한참 울리다 유영이 받는다.

    
“여보세요.”
“여보 있잖아, 나 지금 고속도론데 타이어가 펑크 났대.”
“뭐라고? 고속도로? 왜 고속도로야?”
“아무튼 나 고속도로 다음 IC에서 나갈까? 아님, 바로 갓길에 세워야 해?”
“갓길에 세워야지. 어딜 가. 근데 펑크 났다고? 못 느꼈어?”
“응 몰랐어. 암튼 세울게.”
“세워서 보험사 불러. 어디 타이어야?”
“몰라, 그냥 옆 차가 펑크 났다고 알려만 줬어.”
“갓길 있어? 갓길에 세워.”    


스피커 폰이라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며 슬금슬금 갓길로 갔다.

    
“헉 갓길 왜 이렇게 좁아? 무서워서 못 내리겠어.”    

 
갑자기 옆 차선의 차들이 쌩쌩 달린다. 분명 막혔었는데, 왜 갑자기 뚫렸지?  


 “근데 너 어디 가는 길이야? 출근 안 했어?”
“오늘 외근이야. 출장 가는 길이야.”
“그런 말 없었잖아?”
“몰라. 깜빡했지.”
“내려서 타이어 봐 봐. 어딘지.”
“무서워서 못 내리겠어. 너무 차가 쌩쌩 가.”
“오른쪽으로 바짝 붙여.”


희유는 유영이 시키는 대로 차를 살금살금 또 갖다 붙였다. 그래도, 내리자니 무섭다.


“그래도 무서워. 차 문을 못 열겠어.”
“그럼 조수석으로 내려!”
“아! 그러면 되겠구나. 아이씨, 오른쪽으로 너무 붙여서 조수석도 안 돼.”
“그새 붙였어?”

    
다시, 차를 살금살금 왼쪽으로 옮기고, 조수석으로 내렸다.


“나 내렸어. 이제 살펴볼게.”   


타이어는 터지다 못해 찢어졌다. 이게 뭐지? 사진을 찍어서 유영에게 보내줬다.   


“이 정돈데도 몰랐어? 이거 타이어   갈아야겠는데? 때우는 걸로 안 돼. 보험사 전화해서 갈아달라고 해. 근데  늦지 않겠어? 괜찮아?”
“응. 내가 알아서 할게.”
“도로교통공사나 경찰에 신고해야 하는지 확인해 봐. 갓길에 차 안 다녀? 차 안에 있지 말고 차랑 멀리 떨어져 있어. 이 차 사고 나면 큰일 나니까 조심해. 보험사 신고해서 레커차 타야 할 거야. 근처 타이어 가게로 가게 될걸.”   

  
희유는 보험사랑 통화해야 하는데 유영은 하나부터 열까지를 알려 준다. 희유에게 남편은 그런 사람이다. 꼼꼼하고 정확하다. 희유와 다르다. 혼자만의 여행, 일상을 벗어나다. 엄청난 도전이라고 생각했다. 한 번도 수업을 빼먹은 적이 없었는 용감하게 질렀다. 그런데 시작부터 꼬였다. 레커차를 부르고 한여름 뙤약볕을 온몸으로 받으며 희유는 고속도로 한복판에 서 있다. 출근 시간이라 사십 분 정도 걸린다고 한다. 사십 분. 뭘 해야 하지. 멍하니 하늘을 보는데 깨똑, 깨똑, 깨똑. 타이어 사진이 올라온다.    

 
[이게 타이어 번호야. 너무 아무것도 모르는 거 티 내지 말고.]
[타이어 가격은 이 정도야. 이 정도면 사도 괜찮을 거야.]
[타이어는 하나 터져도 쌍으로 갈아야 해. 양쪽 다 갈자고 할 거야. 그렇게 해. 뒷바퀴는 간 지 얼마 안 됐어. 앞바퀴만 갈면 돼. 내 카드로 해.]

    
희유는 멍하니 본다. 유영은 아는 것도 많고 섬세하다. 희유는 운전만 할 뿐 자동차에 관심이 없다. 희유는, '내가 아는 척을 할 수 있을까? 어설프게 아는 척했다가 비웃음 당하는 건 아닌지.'

잠시 고민했다. 관심 없는 분야엔 철저히 문외한인 희유는 그냥 더울 뿐이다.  그러다 부끄러워졌다. 운전자로서 자동차에 대한 기본 상식 정도는 있어야 했다. 희유는 자신이 참 무책임하다고 생각했다.

  
[응, 고마워. 지금 기다리는 중. 40분 정도 걸린댔어.]
[오래 걸리네. 시간 괜찮아? 근데 너 어디로 가는 중이었어? 늦는다고 연락했어?]     
이상하게 유영에게 일탈을 이야기할 수 없었다. 말을 안 하고 나와서 더 말을 못 하겠다. 희유는 강원도에 갈 생각이었다. 동해를 간다고  얘기할 수 있을까?  

   
[용인. 한국어 동아리 지도교사 모임이 있어.]   

  
차마 해와 바다가 있는 강원도라고 말을 못 하겠어서, 출장 갈 만한 곳으로 그냥 막 갖다 붙였다. 거짓말은 거짓말을 낳는다. 왜 말을 못 하지? 모르겠다. 희유는 그냥 말하기 싫었다. 크게 아프지 않은데 아프다고 병가를 냈다는 말, 쉽지 않다. 갑자기 덥고 짜증 난다. 희유는 자기가 일터에 늦을까 걱정하는 남편 유영에게도 화가 난다.


'지금 고생하고 있는 건 나라고. 왜 이렇게 일은 꼬이기만 하지?'
  
유는 그냥 힘들다. 요 며칠 힘들다는 단어를 잊어 본 적이 없다. 희유는 쉬고 싶은데 모두가 쉬질 못하게 한다. 이 일이 버거운데,  딸이 교사라는 게 너무 좋은 부모님은 사표의 ‘사’ 자에 경기를 일으키시고 사업을 하는 남편은 둘 중 한 명은 땅에 발을 대고 있어야 한다며 역시 이직할 곳을 찾은 후에 사표를 내라고 한다. 이젠 아이도 커서 엄마가 일을 하든 말든 상관하지 않는다.


'왜 내가 힘들다는 것은 고려 대상이 아닌가? 왜 내가 힘들다는데, 내가 일을 하는 것인데 본인들의 입장이 우선인가? 왜 나는 한 번의 일탈도 이렇게 되질 않는가?'


처음 쓰는 병가였다. 몸이 아파도 꾹꾹 참고 일을 했었다. 그 흔한 코로나도 걸린 적이 없었고 다쳐도 병원에 갔다가 학교에 갔었다. 무엇을 위해 이렇게 열심히 살고 있나. 회의가 들었다. 재미가 없었다. 안팎의 끊임없는 요구에 지쳤고 따라주지 않는 체력에 힘들었으며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형편도 희유의 회의에 한몫했다. 훌쩍 커 버린 아이도 희유를 공허하게 했다. 이렇게 재미없는 세상 이제 하직해도 괜찮겠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갓길에서 운전석 문 하나 열지 못하는  이중성이 희유는 기가 막혔다.

“어디 타이어인가요?”
“앞바퀴요. 여깁니다.”
“아휴, 사모님. 이건 때우는 걸로 안 되겠는데요? 타이어 갈아야겠어요.”
“네, 갈아주세요.”
“어디로 가시는 중이었어요?”
“… 용인으로요.”
“그럼 00 IC로 나가서 있는 타이어 가게로 갈게요. 거기서 갈고 다시 고속도로 타시면 돼요.”
“네.”     


레커차를 타고 함께 타이어 가게로 갔다.   


“차가 연식에 비해서 엔진소리도 좋고 깨끗하네요. 타이어야 원래 갈면서 쓰는 소모품이고. 자동차 관리 잘하셨어요.”
“네. 고맙습니다. 남편이 꼼꼼해요.”
“아, 관리는 남편 분이 하시는구나.”
“네.”   

  
'좋겠다. 남편은 없는 곳에서도 빛을 발하는구나.'


희유는 잘한다는 칭찬을 받아 본 적이 별로 없다. 대신 주변 사람 칭찬은 많이 받아 봤었다.


'그런데 타이어 가는데 시동은 왜 켜 본 거지?' 


정신을 바짝 차려야겠다. 적당한 아는 척이 필요하기도 하겠다. 타이어 가게로 와서 기다리는 동안 희유는 놀라운 사실을 깨달았다. 희유에게 타이어는 아이들 장난감 자동차 바퀴 같은 것이었다. 휠을 감싸고 있는 고무만 타이어일 줄은 희유는 꿈에도 몰랐다. 정신을 바짝 차려야겠다고 또다시 생각하며 아예 말을 줄이기로 했다. 다행히 바가지를 씌우진 않는 느낌이다. 희유는 타이어 두 짝을 갈고 90도 인사를 받으며 다시 고속도로를 탔다. 어디로 갈까.  희유는 짧은 고민 끝에 파란 하늘을 보며 달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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