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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영 Mar 31. 2024

번아웃

눈물을 쏟다

골든벨로 수업을 열었다. 학생 하나가 무조건 ㅗ 를 쓴다. 손가락 욕이다. 희유는 처음엔 쿨하게 웃어줬다. 뭐 하는 거니. 좋게 얘기했지만 그 학생은 요지부동이다. 두 번째는 화를 냈다. 하지 말라고. 욕인 거 다 안다고.


"욕 아닌데요? 그냥 모음만 써 본 거예요~ 감탄사~ 오~"


아이들이 웃는다. 희유는 분해서 어쩔 줄을 모른다.  저 학생은 차갑기만 하다.


[이 새O가....]


희유는 이를 꽉 물고 수업을 이어나갔다.


"중국어 시간에도 국어 이어서 할 거예요. 중국어 선생님 코로나로 못 오셨습니다."

"아아아아악~~~~"

"자습시간 줄게. 이따 봅시다."


수업을 끝내고 자리로 돌아온 희유는 깊은 한숨을 쉰다.


"너무 힘들어요. 골든벨을 했는데 한규는 모음 오만 쓰더라고요. 샘 반 왜 이럽니까"

"욕한 거네요. 그 아이가 버르장머리가 없죠."


담임교사에게 이르고 눈을 감았다. 눈 속이 뜨끈해진다. 뭐 대수라고... 생각하는데 띵동 메시지가 올라온다. 10학년 아이들이 매칭한 멘토 교사 명단이다. 희유는 클릭하고 자기 이름이 없음을 확인한다.


[하.... ]


희유가 예뻐하던 반이었다. 아이들 한 명 한 명이 귀엽고 예뻐 열과 성을 다했는데 아이들은 아니었나 보다. 아이들 마음속엔 희유가 없다.


[나, 여기 왜 있지?]


학생한테 욕먹고 모든 과목 교사가 멘토로 지정될 때 한 명의 선택도 받지 못하면서 이곳에서 무얼 하고 있단 말인가. 희유는 현타를 느끼며 다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이어서 동료교사의 보강으로 수업을 들어갔는데...


"아이 씨~ 국어 진짜 싫어!!!!"


학생 한 명이 진심으로 짜증 내며 소리친다.


"조용히 못해? 자리 앉아!!!!!! 예의를 좀 갖춰봐. 교사도 사람이야. 면전에서 싫다 하면 당연히 기분 나쁘지. 뭐 하는 거야? 내가 수업한대? 자습시간 준다니까. 왜 들어만 와도, 보기만 해도 싫니?"


희유는 자기도 모르게 큰소리를 냈다. 이렇게 소리 지른 것은 처음이다. 복받치는 감정을 쏟아냈다. 아이들은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고 슬금슬금 교사의 눈치를 살핀다. 눈치를 살피는 꼴도 싫다.


"조용히 자기 할 일 해요."


희유도 교사 책상에 앉았다. 눈물이 나올 거 같아 힘을 꽉 줬다. 절대 눈물만은 안 된다. 너무 복잡한 감정에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진짜 왜 있지. 교사를 천직으로 알던 희유였다. 학생들과 함께하는 모든 걸 좋아했다. 가르치고 소통하고 웃고 울고. 담임을 맡았던 시절을 자기의 리즈시절로 기억할 만큼 교사라는 직업이 좋았다. 그런데 뭔가 잘못되고 있는 느낌이다. 이 학교에서 희유는 녹아들지 못하고 있다. 이 악물고 45분을 버티고 자리로 온 희유에게 민영이 말을 건다.


"선생님. 연달아 수업하셨네요. 힘드시겠다."

"저... 진짜... 잘... 못하고 있나 봅니다."

"아이고"


희유는 참았던 눈물을 쏟았다. 너무 민망해서 화장실로 가서 꺼이꺼이 울었다.  세상에, 울다가 눈에 있던 하드 렌즈가 돌아갔다. 희유가 렌즈를 찾아 눈을 이리저리 누르며 뒤지는데 아악 비명만 나오고 렌즈는 구석에 끼어서 요지부동이다.


[울 수도 없구나.]


눈은 충혈됐고 극심한 통증을 느끼며 한숨을 쉬었다. 울던 희유가 자리에 오더니,


"병원 다녀올게요."


동료 교사들은 어안이 벙벙하다. 희유야말로 인생이 어안이 벙벙한 일 투성이다. 택시를 타고 안과를 가서 렌즈를 원위치시켰다. 다시 학교로 돌아가기가 싫지만 또 수업이 있다. 희유는 이 학교에서 수업이 젤 많은 과목 중 하나다. 아직까지 버리지 못한 책임감이 희유의 발길을 돌렸다.


점심시간. 입맛도 없어서 앉아 있는데 아까 혼냈던 반 아이들이 우르르 내려온다.

 

"응?"

"선생님, 아까 저희가 너무 했죠. 죄송합니다."


아이들이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오더니 그룹별로 사과한다. 희유는 당혹스러워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쳐다보는 동료교사의 눈이 민망하여 괜찮다고만 말하며 돌려보냈다. 착잡하다. 감동적이지가 않은 게 더 이상하다. 면전에서 국어가 싫다고 외치던 학생은 펑펑 울면서 죄송하단다. 희유는 알겠다고 그만 울라고 달래주었다.


"그래도 아이들이, 기특하네요. 사과도 하고. 5교시 없으시죠? 커피 한 잔 합시다."


한바탕 소동이 끝난 후 민영이 희유를 데리고 나갔다. 희유는 알 수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 한복판에서 홀짝홀짝 커피만 마신다.


"선생님, 수업도 많고 힘드시죠. 그반 아이들이 저한테도 그래요."


희유의 눈에 또다시 눈물이 차오른다. 요즘 감정이 널을 뛰는 중이다. 조금만 위로를 받아도 울 것 같은 나날이었다. 이런 걸 번아웃이라고 하나. 희유는 정말 이제 아무것도 하고 싶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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