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적거리: 1929.04km, 누적시간: 391시간 29분
표지사진: 서울시 종로구 신영동 ‘소꿉놀이하듯’
정릉을 지나 북악으로
드디어, 24년 새해가 밝았다. 지난 6개월간을 돌이켜 보면, 정말 미친 듯이 걸었던 게 맞다. 이제는 겨울이라고 게으름이 하늘을 찌른다. 미친 정신은 반쯤 사라졌는데, 이를 어떻게 살려야 하나 고민 중이다.
오늘 서른네 번째 워킹은 떡볶이 맛집을 찾아 경로를 구성했다. 나이가 있다 보니 어렸을 적 떡볶이 맛을 그대로 간직한 식당이 그리워졌다. 80년대 그 맛을 무어라 표현할 수 있을까? 굳이 기억을 짜낸다면, ‘조미료 가득한 맛?’ 당시에는 모든 음식에 ‘미원’은 필수였으니 말이다. 100원에 10개, 200원어치만 시켜도 배불리 먹을 수 있었던 그 시절, 그 떡볶이를 어디선가는 꼭 찾아보고야 말겠다는 일념으로 가득했다.
구글을 검색해 보니 정릉동의 ‘숭덕분식’ 집이 추천되었다. 마포역에서 직선 코스로 11km. 왕복으로 20여 km인데 주변을 보니 북악팔각정이 보인다. 경로를 더 추가하여 팔각정에서 성산까지 거쳐 돌아오면 대략 30여 km가 된다.
80년대 떡볶이 맛을 아는 세대는 현재 50에 가깝다. 그 나이에 그 시절, 그 맛을 찾아 보물찾기를 하는 일은 드물다. 지천명(知天命)이면 하늘의 뜻을 알아야 하는데, 떡볶이 맛을 알고 싶으니 ‘지병명(知餠命)’이라 쓸까?
신발끈을 질끈 묶고, ‘숭덕분식’이 있는 서울 성북구 정릉로 27길로 향한다. ‘숭덕분식’의 숭덕은 ‘숭덕초등학교’에서 따왔다. 1949년에 개교했으니, 숭덕분식은 그로부터 30년쯤 지나 생겼을 테다(since 1977). 숭덕초등학교 유명 동문으로는 현 부산시장 박형준 님이 계시는데, 1960년생이니까 안타깝게도 당시 초등학교 시절에는 ‘숭덕분식’을 맛보지는 못했으리라.
마포에서 출발을 한다. 아현으로 다시 인사동, 창덕궁과 서울대병원을 지나간다. 오전 바람은 칼바람, 머리는 털모자로 가려도 뺨은 바람으로 찰싹댄다. 붉어진 살갗 아래로 따듯한 피가 애리는 1월, 오늘은 소한(小寒)이다.
혜화동로터리까지 오면 건너 ‘동성중학교’ 옆으로 ‘혜화동 성당’이 보인다. 2006년도 결혼 전, 나는 다니던 교회를 잠시 접고, 성당을 다닌 이력이 있다. 아내와 결혼하려면 개종(改宗)을 해야 했고, 7개월 넘게 천주교 교리를 배우고 세례를 받았다. 그리고 여기 ‘혜화동 성당’은 성지순례 과정 중 하나의 장소로 내 기억의 단편으로 남아있다.
혜화동을 벗어나 한성대입구역과 이어서 성신여대역까지 왔다. 거기서 왼쪽으로 틀어 약 2km를 가면 드디어 오늘의 메인 코스인 ‘숭덕분식’이 보인다. 자, 가게 안으로 들어가 볼까?
오전 9시에 출발했는데, 오후 1시가 다 되어 도착했다. 추운 토요일이라 그런지 손님이 없다. 노년의 남자 주인께서 밀가루떡을 매만지고 2대째 주방장이신 그의 따님이 주문을 받는다. 주말이라 초등학생들이 없어 일반 떡볶이는 안 보인다. 즉석 떡볶이 1인분에 쫄면 사리를 넣고, 순대도 1인분 주문한다. 단, 카드는 안 받는다. 현금이 없어 계좌로 송금한다.
떡볶이 맛은 좋았다. 끝내준다? 보다는 짜지 않고 맛있다 정도. 그러나 내가 기대했던 80년대 맛을 찾을 순 없었다. 즉석이라 그런가? 맛은 있으나 평범하다, 그리고 엄청나게 걸어서 먹으러 올 정도는 아니었다. 순대는 아주 좋았다. 퍼지지 않고 쫄깃함이 살아 있다.
어제까지 엄청 기대했고, 오늘은 ‘그래도 한번 먹어봤으니 되었다. 맛은 있었다 ‘ 정도로 기록하려 한다. 손님이 북적대어 여기 여성 주인 특유의 ’아주 재빠른 손놀림‘을 보지는 못했으나, 떡볶이 장인으로서의 날카로움과 자부심은 느낄 수 있었다. 이제 메인코스를 정복했으니, 이어서 두 번째 코스인 ‘북악팔각정’으로 이동해 보자.
북악산은 정릉을 지나 국민대학교를 마주 건너갔다. 북악스카이웨이가 유명하고 북악터널, 그리고 북악팔각정이 있다.
올라가는 산길은 어렵지 않았다. 군데군데 눈이 얼어붙어 미끄럽기는 했다. 철책을 곁에 두고 오르다 보면 가끔 멧돼지 조심 문구가 펄럭인다. 설마, 멧돼지가 있을까?
팔각정에 다다르니 라이더들도 보이고, 연인들도 차로 이동하여 쉬었다 간다. 북쪽으로는 북한산이 가득하고 남쪽으로는 우편에 남산타워가, 좌편으로는 롯데월드타워가 자리를 지키고 서 있다.
북악스카이웨이를 따라 내려오다, 오른쪽 ‘백사실계곡’으로 빠진다. 물이 졸졸 흐르는 계곡에 풍덩 빠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어찌 맑은지. 도롱뇽이 어디 있을까 쳐다보며 내려오니 어느덧 상명대학교가 보인다.
상명대학교는 처음 와 보는데, 백사실계곡에서 흐르는 물이 암벽을 타고 미끄러져 나와 홍제천으로 졌다. 상명의 학생들은 여름이면 여기 계곡까지 와서 더위를 피하기에는 더할 나위도 없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이제 마지막 코스, 홍제천을 따라 서대문으로 빠진다. 홍제인공폭포를 지나 성산동으로, 그리고 다시 한강고수부지로 나왔다.
어느새 아침은 저녁이 되었고, 그리고 눈이 오기 시작했다. 저 멀리 여의도는 눈발에 가려 달무리로 흐릿해진 홍콩을 바라보는 것 같다. 눈은 어느새 폭설이 되어가고, 나는 이제 마포에 도착했다.
80년대 떡볶이 맛을 찾아 떠난 하루가 꿈같다. 전체 40km가 넘는 거리, 8시간 가까이 걸으면서 청명한 하늘과 몽롱한 눈발을 다 경험했다.
목표를 달성했으나 목적을 이루지는 못했으므로, 나는 다시 조만간에 세상에 알려진, 그러나 내가 모르는 그 80년대 떡볶이 맛을 찾아 보물 찾기를 하련다. 생각만 해도 좋은 그것은, 독특한 ‘행복’이 되어 오늘 밤 꿈이 될 것 같다.
- 끝
PS: 6개월 전에 처음 신었던 새 신발이, 6개월 만에 너덜너덜해졌다. 아픔이 아닌 영광을, 그리고 기록의 끝에 서서 내 온몸을 받아 준 네게 참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