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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포걷달 Jul 31. 2024

FW #35, 성수동(34.84km)

누적거리: 1991.32km, 누적시간: 402시간 50분

표지사진: 서울 성동구 성수동, ’트리마제 아파트‘


비 오는 겨울, 오늘도 걷기


오늘은 날씨가 구지다. 먹구름은 잔뜩인데 눈 대신 비가 내릴 것 같다. 우비를 입어야 하나? 아니면 우산이라도 들고 갈까? 고민만 하다가 결국, 빈 손으로 길을 나섰다. 1월, 겨울의 한복판이라 입고 나간 옷은 두툼할 대로 두툼했다. 이런 날 걷기란, 땀보다는 추위로 인한 망설임이 더욱 크다. 그래서 아예 걷기를 ‘목표 달성하기’로 전환했다. 요즘 가장 핫하다는 동네에 가서 아주 멋진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오는 거야. 그래서 성수동이다.

성수동은 서울특별시 성동구에 속한 법정동 성수동 1가와 성수동 2가를 포함하는 지역으로, 흔히 '뚝섬'이라고 부르는 지역이다. 성수라는 동명은 옛날 ‘성덕정’이란 정자와 ‘뚝도수원지’가 있던 곳이라 하여 각각 첫머리를 따서 성수라 했다는 설과 한강을 낀 물가 마을로 한강물을 식수로 사용하는 깨끗하고 고마운 물이라는 뜻으로서 성수라는 동명이 붙었다는 설이 있다 - 위키백과



그래, 커피는 성수동이지


내 젊은 날 성수동은 공장 많은 스산한 동네 중 하나였다. 평일 늦은 저녁은 물론이고, 주말에는 공장 주변으로 한산하여 오늘날의 카페나 맛집은 거의 찾아 볼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2010년부터 공장이나 정미소 건물을 문화 예술인들이 하나 둘 구매하여, 예술의 거리로 만들기 시작한 것이 오늘날의 성수동을 핫플레이스로 만든 시작이 되었다. 그러고 보면 문화의 발전이, 경제의 발전으로 이어지는 것은 틀림없는 후행 같다.


특히, 커피로 보면 그렇다. 커피의 성지처럼, 성수동 하면 ‘대림창고’가 가장 먼저 생각난다. 이 또한 옛날이야기라 할 수 있겠지만, 그만큼 ‘대림창고 갤러리 카페’의 역할은 매우 컸다. 더 살피자면 대림창고는 70년대 정미소로 사용되다 90년대는 창고, 2011년에 들어서야 지금의 갤러리가 되었다. 연간 50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방문한다고 하니, 성수동의 메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성수동 뿐만은 아니지. 가까웁게는 문래동도
그렇고, 을지로도 그렇고


이전에 영등포구 문래동을 걸을 때도 비슷한 느낌이었다. 영등포역 주변으로는 아직도 철공소가 많은데, 이들이 하나둘씩 카페나 음식점으로 개조되면서 많은 젊은이들이 찾게 되었다. 그보다 앞서 예술인들이 정착했던 것도 성수동의 발전과 맥을 같이 한다.


오늘 걷기 코스는 간결하다. 한강고수부지를 따라 뚝섬역까지 걸은 다음, 성수동에서 가장 유명하다고 하는 커피집 ‘로우키’를 들러 커피 한잔을 마실 예정이다. 그리고 왕십리를 거쳐 서울 시청까지 온 후, 마포역으로 돌아오는 코스이다. 지도를 보면 둥글게 단순한 코스이지만, 대충 거리를 잡아도 25km가 넘는다. ‘오늘도 걷다가 켁 죽어볼까나’

마포역에서 한강고수부지로 나와 뚝섬까지 걷는다. 성수동을 들러 커피 한잔을 마시고 왕십리로를 따라 시청까지 와서 아현동과 공덕으로 빠져 돌아오는 코스이다. 계획은 그럴듯하다.



비가 올 듯 말 듯, 아직은 하늘에 구름만 잔뜩이라 크게 날씨 걱정 없이 집을 나섰다. 오늘 최저 기온은 -1도, 최고 기온은 5도에 육박하여 강추위는 아니지만, 그래도 저녁이 되면 기온이 어떨지 몰라 오리털 잠바로 중무장을 했다.


마포역에서 한강으로 빠져나가는 길이 여럿 있는데, 특히 마포구 도화동의 ‘마포종점나들목’은 새롭게 개축 준비를 하느라 입구를 막아놨다. 하는 수 없이 빙 돌아 ‘청암 자이 아파트 육교’를 통해 한강고수부지로 내려갔다. 육교 위에서 바라본 여의도는 푸르른 잿빛으로 ‘나, 겨울이야’라며 계절을 말한다. ‘그래, 알고 있단다’ 나도 한마디 하고는, 늘 그렇듯이 터벅터벅 걸어갔다.

온통 잿빛 세상에 금빛 하나, 63빌딩이 우뚝하게 서 있으면서 오른편의 IFC 빌딩과 기싸움을 한다


가을까지 보이던 갈대는 어느새 땅속으로 들어가 앉았다. 잠시 추위를 피하러 간 녀석이 봄이 되어야 빼꼼 얼굴을 내밀 것 같다. 앙상한 나뭇가지마다 철이 들려고 겨울의 시련을 묵묵히 참아내고 있는 게 보인다. 걸으면서도 풀대를 한참 째려보니 여름에도 오고 가을에도 온 녀석이 겨울에 또 왔냐고 나에게 따진다. 피식 웃는다. 혼자 상상하는 시간이 누구에게도 없을 중년의 행복으로 온다.

여름에 풍성했던 네 머리카락 다 어딨니?



반포대교를 지나 한남대교, 동호대교에 이르니 어느새 하늘은 빗줄기로 가득하다. 두툼한 옷도 빗물을 이겨내지 못하고 축축하게 젖어간다. 강변북로에서 동부간선도로로 이어지는 중랑천을 만났다. 이왕 맞은 비를 내가 다 끌어안겠다고 뚝심 있게 말을 걸었다. 나에게 무슨 소리를 하는 것 같았는데, 빗소리에 묻혀 아무 소리도 들리질 않았다. ‘그래! 중랑천아. 너도 네 갈길 가거라. 나도 내 갈길 간다’

중랑천은 뭐라고 떠들면서 한강으로 흐르는데, 무슨 소린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난 걸으면서도 때때로 시인이 되고 싶은가 보다



성수동에 도착했다. 비가 이렇게 내리는데, 여기저기 하나의 우산을 쓰고 젊은 연인들이 데이트를 한다. 그 둘 중 하나는 분명 나처럼 비를 맞고 있으리라.

비 내리는 성수동은 여전히 스산해 보인다


와이프와 결혼하기 전, 회사 앞에서 둘이 점심 식사를 하고 나오는데 갑자기 비가 옴팡 쏟아진 적이 있었다. 다행히 우산을 가지고 온 나는 내 왼쪽 어깨를 비에 다 적시고, 와이프에게 우산을 씌어 주어 환심을 산 적이 있다. 그래, 그것은 그 상황에서 누구나 할 수 있는 의도된 친절이었지. 지금 보니, 나만큼이나 비에 젖은 남자들은 보이지가 않는다. 로맨스를 모르는 녀석들이라고 혼자 중얼거리며, 누가 봐도 비렁뱅이인 나는 온몸에 비를 맞아가며 ‘로우키’ 커피집으로 걸어 들어갔다.

겨울비가 한참 쏟아지는데도, 로우키엔 커피를 마시러 온 사람들이 많았다


다행히도 비렁뱅이인 나를 쫓아내지는 않았다. ‘아! 여기 커피집 좋구나?’ 마시기도 전에 나는 그들이 벌써 좋아졌다. 빗물이 뚝뚝 흘러 일단 밖에서 대충 털고 들어왔는데도 바닥이 흥건해졌다. 카운터에서는 보이지가 않나 보다. 나만 혼자 미안해하며 커피를 주문한다. ‘여기 시그니처 드립으로 한 잔 주세요’. 그래, 여기까지 왔으니 시그니처 정도는 먹어줘야겠지. 커피 한 잔이 나오는데, 진짜 감탄하며 마셨다.


로우키 커피를 소개하는 글을 블로그와 SNS에 게재했다. 이런 집은 널리 널리 알릴 필요가 있었다. 개인적으로 아무 관계도 없지만, 또 좋은 커피를 접할 수 있는 누군가에게는 소소한 기쁨이 될 테니 말이다.


[바리스타 추천 커피집] 성수동 ‘Lowkey'

안녕하세요? 워킹 리뷰어, 마포건달입니다.

오전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합니다. 오늘도 그 비를 뚫고 걸어서 직접 추천받은 커피집을 방문하였고 팩트 중심으로 글을 작성합니다. 오늘은 24년 1월 14일입니다.

이수역 ‘카페방배상회’ 변수정 바리스타님이 추천해 주신 두 번째 장소는 서울 성수동에 위치한 ‘로우키(Lowkey)’입니다.

주식회사 로우키네요. 2010년부터 지금까지 다섯 개 매장을 운영하고 있으며, Lowkey는 ‘낮은 곳으로부터 묵묵히 진심을 다해 스며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운영하는 커피집이라고 소개합니다.

성수동 특유의 낡은 공장 건물을 개조하여 만든 커피집입니다. 지하까지 있으며 1층은 매우 협소하고 집단이 앉아 서로 개개인이 커피를 마시는 장소입니다. 개방적 구조이나 각자가 커피를 마시는 곳으로 보여집니다.

커피의 품질은 원두의 수입과 로스팅에 있습니다. 애당초 주식회사 로우키의 시작이 원두 유통과 로스팅이었고, 직접 매장을 운영하되 품질을 끔찍하게 생각하는 곳 같습니다.

젊은 손님들이 끊임없이 들어옵니다. 네다섯명의 직원들은 쉴틈이 없어 보입니다. 비가 오는 일요일에도 다양한 사람들이 찾아오는 걸 보니, 날씨 좋은 날은 말할 것도 없을 것 같습니다.

처음 왔다고 하고, 추천을 요청하니 ‘다크문’을 가리킵니다. 원산지는 에티오피아, 다크초콜릿과 상큼한 과일 그리고 약간의 산미가 묵직하게 전해집니다.

중간중간, 새로운 맛의 커피를 작은 잔에 따라 줍니다. 이것도 맛을 보시라고 전합니다. 상큼한 산미가 강렬한 커피는 이름조차 물어보지는 못했습니다.

커피의 품질만큼 직원들 또한 매우 격식 있고 친절합니다. 모두 커피의 진심인 듯하고, 아무래도 일반적인 아르바이트생이 아니라 모두 최고의 바리스타가 되고 싶어서 일을 하는 것처럼 보이네요.

좋은 커피에 기분이 맑아집니다. 집에 돌아가기
위해, 이제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오늘도 좋은 커피 하세요!
굿럭!
출처: 마포걷달의 팩트체크



아주 늦은 오후가 아닌데도, 밤이 생각보다 일찍 찾아왔다. 더 어둑해지기 전에, 더 빠른 걸음으로 집으로 돌아간다. 이제 비가 그치고 나니 추위가 더 세게 아려온다. 덜덜덜덜 떨며 걷는다. 여름에 걷는 것보다 몇 배는 더 힘든 것 같다. 물리적 고통보다도 ‘따듯한 전기장판 위에서 실컷 잠이나 자고 싶다’ 하는 여러 가지 잡념들이 머릿속을 어지럽힌다.

더 어두워지기 전에 돌아가야 한다. 한참 커피를 마시고 나왔는데도 비는 그치지 않았다


왕십리를 떠나 동대문을 지난다. 은색의 DDP(동대문디자인플라자)가 짙은 잿빛에 웅크린 채로 땅을 마주하고 있다. 미지의 세계에서 온 우주선처럼, 인적이 뜸한 지구에 정착해 있다. 사진을 한 컷 찍고 나니 손이 얼어서 덜덜 떨린다. 이제 사진 찍기는 그만두고, 마지막 발걸음에 집중해야겠다.

우주선을 닮은 동대문디자인플라자 건물, 다행히도 서서히 비가 그치고 있었다


오늘 다녀온 성수동을 밝은 봄날에 다시 한번 더 찾아오련다. 내 기억 속 메모리가 온통 회색빛이다. 채색된 성수동에서 정상적인 모습으로 커피 한 잔을 해야겠다.


- 끝


마포역 > 반포대교 > 중랑천 > 성수대교 > 성수동 > 왕십리 > 동대문 > 시청 > 아현동 > 마포로 이어지는 총 거리 34.84km, 39,513 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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