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랜서 & 좋아하는 일 퇴사 후 갭이어
일곱 번째 |프리랜서 하리하리님
퇴사 후 자기소개서와 관련된 프리랜서 일을 하고 있으며, 글 쓰는 분야를 넓혀가고 있다. 좋아하는 일을 어떻게 만나게 되었고, 생계를 해결하는 일로 어떻게 만들었는지 이야기 나눠 보았다.
여덟 번째 |갭이어 정유진 님
발달장애 학생을 가르치던, 좋아하는 일에 흠뻑 빠져 살던 시절과 퇴사. 그리고 그 이후의 여정에 관해 이야기 나눴다. 그녀는 한 직장에서 비자발적 퇴사와 자발적 퇴사를 모두 겪었다.
일곱 번째 |프리랜서 하리하리님
일이 되기까지
어떻게 이 일을 시작하게 되신 건가요.
회사 합격 후기를 카페에 올렸는데 어떤 친구가 쪽지를 보내면서, 우연 히 시작되었어요. 그때는 특별한 생각이 있었던 건 아니고, “자기소개서 나 여러 가지 도와줄게.” 하다가 그 친구가 회사에 합격하고, ‘아, 내가 할 만하겠다’ 했어요. 처음엔 비공식적으로 2 년 동안 회사에 다니면서 했었 어요. (멘토, 튜터링이요?) 네. 기본적으로 자소서를 많이 쓰게 되었고 글 쓰는 게 재밌었어요. 여러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쓰고 하다 보니까 노하 우가생기고,사람들이꽤맘에들어하고.그렇게하다보니,퇴사할때 쉽게 결정을 했었고요.
그럼 생계에 필요한 돈이 어느 정도 충족이 되겠다, 싶으셨나요.
어느 정도 연습을 했었죠. 시행착오를 정말 많이 겪었어요. 예를 들어 스 펙업 같은 카페에서 누가 자소서 물어보면 댓글 달아 이야기하고. 스펙업에서 차단도 많이 당하고. (왜요?) 자기네들이 운영하는 학원이 있는데 외부적으로 상업적인 행위를 하니까. 좌충우돌, 우격다짐하면서 계속 이 어갔고, 아프리카 방송은 퇴사와 거의 동시에 진행했었고요. 3월 말쯤부 터. 4월 1일 자로 퇴사했었고. 아프리카TV 내에 자회사와 계약을 하고. 자리를 잡게 되지 않았나. 방송도 별건 아니고 라이브로 글 써주는 거거 든요. 제가 했던 일의 연장선이고 그래서 연명해 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추가적인 미래 계획
직장인을 대상으로 세미나나 스터디를 만들 생각도 하고 있어요. 그들에 게 새로운 회사 이후의 삶을 제안해야죠. (글쓰기 같은 주제인가요.) 아니 요. 각자 가진 재능들이 있으니까. 제가 취직을 도와줬던 친구는 영상 편집을 잘했었는데, 취직 후에 고객사들에 욕을 하도 먹고 재능도 잊고 살 았어요. 유튜브를 하기로 마음을 먹고 퇴사하려고 했는데 가족들이 말려 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긴 하지만요.
만들고 싶으신 게, 사람들이 생계 즉, 필요한 금액이 해결되지 않는 이상 퇴사하기 어렵잖아요. 그럼 현업을 유지하면서 재능을 개발하는 모임을 계획하고 계신 건가요.
사실 제가 꿈꾸는 건 그래서, 퇴사의 뽐뿌만 심지 않고 퇴사하면 원더랜 드가 펼져질 거야 이런 게 아니라, 투잡스쿨. 투잡학교. (투잡을 준비하다가 슉 갈 기회를 만드는 거로.) 네. (응원합니다.) 네 고맙습니다. (웃음)
퇴사
‘내가 생각했던 이 정도면 생계가 괜찮다’라고 봤을 때 몇 퍼센트 정 도가 만족 되었을 때 퇴사를 결심하신 건가요.
저는 그런 수치적인 생각은 안 했어요. 어차피 이쪽은 계속 클 수밖에 없 고. 취업 시장에서 가장 잘 나가는 분들보다 퍼포먼스가 좋다는 확신은 있었고요. (퍼포먼스의 기준은?) 저는 애들에게 공감할 수 있고 커스터마 이즈드 된 글을 써주는데. 누군가는 노하우나 샘플 나열만 하지 진정성 있는 콘텐츠가 나오진 않거든요. 그걸 보면서 ‘깃발만 먼저 꽂아서 일등 인 거구나’ 했어요.
본인에 대한 믿음은 그럴 수 있지만, 누가 알아봐 줄 거라는 믿음은 다른 거 같은데요.
제가 이 년 동안 하면서 느낀 것 같아요.회사에 다니면서 하면서 ‘아 이건 되겠다’. 17년 하반기에 회식이 있었어요, 대한항공 자소서가 내일 마감이에요. 일단 받아요. 그럼 미칠 것 같은데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서 마 감했어요. (안가는 방법은 없었나요?) 그런 거 없는 거 아시잖아요. (흐흐)
퇴사할 때의 마음이 ‘어느 정도 수입이 된다’고 파악하지 않고 퇴사 하셨 다고 했는데, ‘벌어지겠지?’란 믿음을 갖고 퇴사 하신건가요.
네. 제가 종속되는 걸 별로 안좋아해요. 주목받고 싶어하고. 회사에서는 그게 쉽지 않겠다는 것을 느꼈어요. 버티면 되겠지만 너무 오래 걸리겠다. 직관적으로 던지자 그랬죠.
퇴사해서 이 일을 하시면서, 만족스러운 건 시간인 거고, 생각보다 힘든 것도 있으세요?
당연히 잔고죠. 불규칙하니까. 매달 25일에 월급이 들어오고 빠져나가는 게 컨셉이어야 하는데. 불안감의 요소에 들어가 있죠. 그래도 여차여차해 서 잘 버티고 있어서. 생각해보니 제가 불안을 담보하는 선택을 해놓고 안 정을 추구하는 자신을 보니까. 불안과 안정 사이에서 애매한 줄타기를 한 거 같고. 과도한 소비는 자제하는데 너무 벌벌대진 않고 있어요.
당연히 잔고죠. 불규칙하니까. 매달 25일 에 월급이 들어오고 빠져나가는 게 컨셉 이어야 하는데. 불안감의 요소에 들어가 있죠.
진로
누군가가 ‘글을 발견해서 좋겠다. 나는 뭘 좋아하는지 모르겠어’ 라고 한다면.
다 그렇게 이야기하죠. 제가 상담한 회사원들 모두가 똑같이 이야기해요. 저같이 살고 싶다고 하면서요. (연락이 오는 건가요.) 제가 회사를 붙여준 친구가 일 년이 지나서 “형...퇴사하고 싶어.”라면서. (웃음)
사실 그런 친구들에겐, “일단 월급을 받으면서 돈이 안 되는 데 네가 하고 싶은 걸 하고 있어라.”고 해요.저는 퇴사 후 진로 찾을 때 퍼플 오션 전략을 이야기하거든요. 내가 좋아하는 일이 시장에 거의 레드 오션화 되어 있기 때문에. 블루 오션인 곳은 아무 데도 없잖아요. 레드 오션을 계속 뚫고 뚫다 보면 틈이 좀 난다.근데 그 틈은,그 틈이 났을 때 잡을 수 있는 힘은, ‘꾸준한 콘텐츠 지속 능력’과 ‘자기 재능과 흥미에 대한 확신’ 정도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퍼플 오션 이야기를 해요. 그게 돈이 안 되면 일단 다니고 있어라. 투잡 스쿨의 목적은 ‘재능을 발견했는데 이거보다 회사가 낫다 하면 회사에 집중하는 게 낫다’ 는 담론을 던져주고 싶어요. 저 같은 경우도 운이 좋게 풀린 거고.
누군가가 ‘글을 발견해서 좋겠다. 나는 뭘 좋아하는지 모르겠어’ 라고 한다면. “일단월급을받으면서돈이안되는데 네가 하고 싶은 걸 하고 있어라.”고 해요.
사회제도
교육도 적성에 맞는 걸 잘 연결 못 해주고, 직업도 적성에 맞는 걸 연결 못 해주는 사회라 보는데요. 어떤 게 주어지면 더 잘 맞아떨어질까요.
뿌리로 내려가면 교육이 문제라고 생각해요. 너무 결과 위주잖아요. 아버지께서 시험 문제 한 문제에도 잔소리 하고 그러셨거든요. 과정을 중시한 삶을 살아야 하고. 수학 문제 개념을 발견한 즐거움을 배워야 하는데. 발 견의 즐거움을 알았으면 좋겠다. 발견, 과정, 의미 같은 것이요.
직장인이 되어서 직장과의 연결. 그 케미를 잘 발견해 주는 방법이 더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있으셨는지.
그러려면 좀 덜 바빠야 할 것 같아요. 직장인들이. 저도 겪어봐서 알지만 한 명에게 너무 많은 일을 주잖아요. 그래서 그럴 거면 일본처럼 투잡을 합법화 해라. 그렇게 생각해요. 공무원도 투잡 합니다. 근무시간을 낮추 고 연봉도 낮추고. 한국은 계약서상 연봉은 높은데 야근이 많아서 실질 시급은 낮잖아요. 주 52시간이 있긴 하지만 알게 모르게 할 테고. 막상 처 음에 시행되었을 때 직장인들이 뭐 해야 할지 몰라서 방황했다고 하잖아 요. (덜 바빠지면서 적성에 맞는 일을 찾아 나가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 씀이군요.)
여덟 번째 |갭이어 정유진 님
좋아하는 일을 만나기까지
처음에 대학생 때 그 분야를 선택하신 건 어떻게 이루어 지신 건가요. 내 가 사회적 의미가 있는 일을 해보고 싶다, 인 건가요.
어렸을 때부터 저는 바뀌긴 했어도 꿈은 계속 있었어요. 티비를 보다가 호 텔리어 해볼까, 다음 날은 책을 좋아하니까 사서를 해볼까. 이런 뭐라도 꿈은 계속 있었는데. 고등학교 2학년 때 집 근처 시설에 봉사활동을 갔다 가 말이 통하지 않아도 뭔가 소통이 되는 그런 경험을 한 거에요. 한 일주일 동안. ‘이 친구들이랑 지내는 일을 해보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거 같아요. 지금 돌아보면 그때 제 최고의 고민은 그런 거였어요. 너무 좋 아하는 일이 있어도 이걸 업으로 삼으려면 너무 지겹게 느껴지는 거예요.
내가 노래를 좋아하는데, 돈을 벌기위해서 온종일 노래를 해야 한다면 너무 힘들 것 같고. 요리하는 걸 좋아하는데, 남들을 위해서 온종일 그걸 하 고. 뭔가 그게 연결이 잘 안 되더라고요. 이래서 어른들이 좋아하는 건 업 으로 삼는 게 아니라고 하는 건가. 그래서 그때 제 기준은 그랬던 것 같아 요. 하루종일 이 업을 해도 지치지 않을 일을 내 업으로 삼아야겠다. 그런 고민을 한창 하고 있었는데 우연히 봉사활동을 하게 됐고, 다른 친구들은 다 지쳐하는 거에요. 근데 저는 너무 재밌더라고요. 오히려 더 힘을 받기 도 하고. 그 친구들과 보내는 시간 속에서. 이런 일이면 정말 하루 종일 일 년 삼백육십오일 계속해도 괜찮겠다.
그럼 일주일의 봉사활동 경험으로 나는 이쪽으로 나아가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대학 진로를 정하신 거에요?
네. (고등학교 때부터 고민을 하셨다는 게 신기하네요.) 우연의 연속이었는데 그런 고민을 하던 차에 그런 기회를 만났고 진학하게 된 것도 불가능한 상황이었는데. 어떻게 또 잘 맞아떨어져서. 그때는 약간 운명인가 생 각이 들 정도로 딱딱 맞아떨어져서 하게 된 거 같아요.
일, 선택의 이유
월급을 받고 일을 하게 되시면서는 어떠셨어요? 나는 내 일이 좋아 혹은 나는 이런 부분은 힘든데. 그런 것들이 있으셨어요?
지금 돌아보면 어떻게 그럴 수 있었지 싶을 정도로, 정말 싫은 게 하나도 없이 좋게 일했어요. 사실 모든 상황을 보면 쉬운 상황은 아니었거든요. 주말 출근도 잦았고, 협동조합 구조라 학부모님들과 공동 운영해야 했고. 회의도 많고 행사도 많고. 출근하고 퇴근할 시간이 의미가 없었던 것이, 퇴근하고 집에와서도 일을 할때가 되게 많았어요. 화장실 갈 시간도 없 이 출근한 시간엔 애들을 보는 시간이고, 퇴근하고는 그때 일을 하는 시 간 인거죠. 문서일 같은 거. 그때 제가 구름쌤으로 불렸었는데, 구름쌤으로 지내는 시간이 98정도 였다면, 정유진으로 지냈던 시간이 2정도되는. 그럴 정도로 오프되는 시간이 없이 계속 온인 상태였고. 친구들을 만 나도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으니 그런 시간의 연속 같았어요. 지금 보면 ‘미쳤어. 도대체 어떻게 그렇게 지냈나 몰라’ 싶은데, 그때는 정말 한 치의 의심도 없었던 거 같아요. ‘나 너무 힘든 거 아니야?’ 그런 생각 전해본 적 없었고요.
그 노동에서의 즐거움, 거기서 일어나는 감정의 교류가 좋으셨던 건가요.
그런 의식이 크진 않았던 것 같아요. ‘내가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있어’ 보 단 정말 제가 좋아서 하는. 사회복지나 특수교사 쪽에서, “대단하시네요, 사명감이 투철하신 가봐요.” 하는 말을 부담스러워 하는 사람들이 꽤 있 어요. 자기는 직업으로서 하는 일이고 생계로서 하는 일인데, 그런 말을 듣는 게 부담스러우신 건가봐요. 저는 그 정도는 아니지만, 그냥 제가 좋 아서 했던 거죠. 사실 그런 마음으로 했다면 오래 못했을 것 같다는 생각은 해요. 내가 즐거운 일이 아니라 나를 도구로써 사회에 이바지하는. 이 런 걸로 했으면 오래 못했을 것 같다는.
비자발적 퇴사 이후
산티아고를 떠나기엔 걱정되는 건 없으셨나요. 성격 차이 일 것 같은데, 저는 미래를 걱정도 많이 하고, 계획을 하려는 타입이라서. 이 돈을 무슨 직업을 구할 때까지 몇 등분을 하고 어떻게 쓰고, 그런 불안들이 있었을 것 같거든요. 혹은 갔다와서 다음 직장을 구하기 전까지 이런 시간이 괜 찮을까, 이런 두려움들.
그 사건 이후 교사들에 대해서 질책하는 부분들이 있어서, 이전에 없던 험 한 말들이 오가는 상황이 힘들었어요. 저도 그 때가 아니었으면 고민 했을 거 같아요. 여기 드는 돈 다 어쩌고 갔다와서는 어쩌고. 그 순간에는 다 정 지된 상태였던 거 같아요. 약간 공황상태. 지금 돌아보면 힘들다 안 힘들 다 없이 감정, 사고의 움직임도 없고, 걱정이나 즐거움 아무것도 없이. 하 루 이십 사 시간을 학교 일을 하면서 살았었는데, 갑자기 아무것도 할 일 이 없어지니까. 공허하고. 앞으로 무엇을 해야겠다는 이런 고민도 에너지 가 있어야 하는 거 같더라고요. 생각할 다음이 없었어요. 그래서 아무 생 각 없이 결정했고요. 갔다 올 수 있었던 거 같아요. 부모님이랑 같이 살았 고 하니까 경제적인 것에 걱정이 없었을 것 같고. (너무 생각을 많이 하면, 움직이지 못 할 이유는 정말 많잖아요.)
퇴사 후 산티아고에 다녀온 후 사고의 변화가 있었나요. 왠지 산티아고 하면 깨 달음을 얻거나 마음의 평화를 얻거나, 다녀온 후가 엄청 다를 것 같은데. 질문을 정말 많이 받는데. (웃음) 처음에는 그런 게 어딨어 똑같은 날짜를 사는데 했는데. 여러 번 대답하면서 느꼈던 게, 제가 길을 걷고 마지막에 산티아고 성당 앞에서 한 친구를 만났어요. 걸으면서 계속 만났던 외국인 친구 였는데 저는 거기서 순례를 멈추는 일정이었고, 그 친구는 더 걸어 간다는 거예요. 잘 가고 잘 지내라 인사했거든요. 거기서 ‘부엔 까미노’라 고 좋은 길이란 인사를 하거든요. “부엔 까미노.” 인사를 하는데 그 친구 도 저한테 “부엔 까미노.” 인사를 하는 거예요. “나는 이제 길이 끝났다, 여기까지 밖에 걷지 않는다.” 했거든요. 그랬더니 “아니다. 너의 길은 이 제 시작이다.” 말을 해주더라고요. 그때는 별 감흥이 없었는데, 그 한 마디 가 굉장히 맴맴 돌더라고요. 모든 게 멈춰있는 상황이었는 데 ‘아 그렇지, 이제 다시 시작하면 되지.’ 그 이후에도 일 년 정도 일을 했지만 퇴사를 하 고 긴 방학을 보내고 있거든요. 그 결정을 할 때도 늦은 것도 없고, 어디로 가든내길은내가만들어가는거니까,이런생각을할때,그말이생각 이났던거같아요.그이후에사소한선택을할때,어떤것도다시작이 될 수 있고 가능성이 될 수 있다, 포장하고 자기 위안 하는데 좋죠. (웃음)
“아니다. 너의 길은 이제 시작이다.”
자발적 퇴사 이후
본인의 관심사의 키워드가 있다면 뭐라고 생각하세요.
장애인들과 함께하는 일을 하고 싶고요. 그것이 직접적으로 대상자들을 만나는 일이 아니더라도 시스템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일. 정책적으로. 빅 픽쳐. (웃음) 여러 알바를 하던 중에 얻게 된 생각이기도 한데, 오히려 그 것이 가장 실질적일 수 있겠다. 정말 필요한 건 그런 걸 수 있겠다. 정책을 만드는 사람은 사실 실질적으로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현장에 서는 “뭐 이런 정책이 다 있어?” 하거든요. 그건 단기간에 제가 들어갈 수 있는 필드는 아니겠지만, 언젠가는 그런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있고. 실질적으로 도움을 주고 싶다는 생각이 있는데 그러면서 내가 가장 재미 있게 할 수 있는 일이 무언지는 잘 모르겠어요. 다양한 관심사로 뻗어있 어요. 하나로 모여있진 않고 이것도 기웃거려보고 저것도 기웃거려보고.
“진로를 고민하는 친구들에게 무슨 이야 기를 해주고 싶냐”고 물어보셨어요. 대 답한 게, “누가 정한 어떤 기준이나 남들 이 정한 시각 상관없이, 좋아하는 일을 하다보면그게길이되는거같다.”저 자신한테도 그런 말을 해주고 싶고.
학생들 특히 진로를 가르치는 입장에서 어떤 말을 학생들에게 해주시는 지 궁금한데 ‘좋아하는 일을 하라’ 하시는지. ‘좋아하는 일을 모르겠다’는 친구에겐 뭐라고 하시는지.
저희 친구들은 그런 질문을 잘 하지 못하거든요. 자기가 먼저 ‘이걸 하고 싶어요’를 말하는 경우는 거의 없고. 무슨 활동을 하면 저 친구가 저런 면이 있네. 꼼꼼하게 하는 걸 좋아하는구나 그런 분야에 취업을 시켜주면 좋겠다. 이렇게 접근하는 경우가 많죠. 특히나 발달장애 친구들의 경우 취업이 굉장히 어렵기 때문에, 이미 취업을 한 선례가 있고 안정성을 인 정받은 직무를 가는 경우가 많은 편이에요. 경증 친구의 경우 바리스타 나 장애가 심한 경우엔 일반 제조업, 컨베이어에서 일하는 단순 직무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제가 아직 실무를 경험하지 않아서 이상 속에 있는 거일 수도 있지만, 정말 그 친구에게 맞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이미 마련되어 있는 일자리에 사람을 맞추는 게 아니라 사람에게 맞춰 일자리를 개발하는.
제가 만났던 친구들은 사실 바리스타나 베이커리가 맞지 않아요. 단내가 나면 너무 흥분하는 친구를 베이커리에 갖다 놓는 건 말이 안 되잖아요. 또 뜨거운 걸 너무 무서워하는 친구를 바리스타에 갖다 놓을 수도 없고. 그런 면들을 잘 고려해서 정말 맞게 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실무에 서는 힘들 수도 있지만, 아직 실무 경험하지 않은 사람이라도 이런 꿈을 꿔야 하는 거 아닐까요.
예전에 대학생 분과 인터뷰를 했었는데 “진로를 고민하는 친구들에게 무슨 이야기를 해주고 싶냐”고 물어보셨어요. 대답 한 게, “누가 정한 어떤 기준이나 남들이 정한 시각 상관없이, 좋아하는 일 을하다보면그게길이되는거같다.”저자신한테도그런말을해주고 싶고. 이십 대와 삼십 대의 갈림길에서 쉬는 걸 결정하기도 쉽지 않았는 데. 내가 하는 모든 게 길이 될 수 있다는 말이 힘이 되었듯이, 시기적으로 나남들이하는말에신경쓰지않고마음이이끄는일을했으면좋겠다 고. 장애 학생들이건 비장애 학생들이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