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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요 Apr 15. 2024

'우리'라는 질료

사랑하는 선생님들께 

 

문득 꽃이 피나 싶더니 다시 문득 봄비가 내립니다. 자연의 조각들이 모여 삶이 되고 거름이 되는 매일은 평범하지만 특별한 날입니다. 

 

주어진 하루를 특별하게 사는 것은, 날씨에 맞게 사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마음을 일구는 사람은 매일 변화하는 날씨를 탓하기보다 오늘의 날씨에 맞게 최선을 다해 살아갈 수 있습니다. 비가 올 때는 우산을 준비해 비에 젖지 않게 하고, 해가 내리쬘 때는 양산을 준비해 여린 피부를 보호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특별한 사람만 준비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누구나 준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지금 멈추어 바라볼 수 있다면, 자연스레 알게 되는 것들이지요. 

 

 

오늘 수업의 화두는 '관계'입니다. 관계를 편안하게 이어가고 싶다면, 관계 맺기에 집중하기보다 관계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관계 안에도 연기적인 괴로움이 늘 존재합니다. 태어남, 늙음, 죽음, 근심, 탄식, 괴로움, 슬픔, 절망 등 여러 느낌과 감정이 일어나지요. 하지만 그것은 우리의 일상적인 습관일 뿐입니다. 진정한 괴로움은 그러한 습관에 이끌리는 나의 마음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공부와 수행을 통해 멈출 수 있는 힘이 자신 안에 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괴로움이 일어나도 괴로움에 개입하지 않으면, 괴로움과의 관계를 바꿀 수 있어요. 관계 안에서 나의 역할은 두 가지. '지켜봐 주기’와 기다려주기'. 그 외 어떤 역할은 필요치 않아요. 막막한 상황에서도 나의 역할만 잘 수행한다면 관계의 본질을 바라볼 수 있게 돼요. 본질이란, 어떤 일이 일어나도 흔들리지 않는 뿌리이고, 언제든 다시 돌아올 수 있는 마음의 집입니다. 본질을 바라보면 우리는 알게 됩니다. 좋은 관계란 ‘우리’를 이해하는 데서 시작한다는 것을요. 나와 너 말고 '우리'를 이해하는 것. 이것이 관계의 본질입니다. 나와 너가 사라진 '우리'에게는 사랑만이 남습니다. 사랑은 우리가 관계를 맺는 목적이자 이유이기도 하지요. 

 

우리는 문득 피었다가, 문득 떨어지는 꽃잎일 뿐입니다. 그러나 어떠한 형태로든 최선을 다한다면 ‘우리’라는 본질을 지킬 수 있습니다.

최선을 다한다는 것은 우리가 함께 피어 있음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함께 괴로워하는 게 아니라, 괴로움을 지켜보고 기다리는 우리를 돌보고 위로해 주는 것. 이것이 지금의 최선입니다. 그렇게 최선을 다한 순간이 매 순간 이어지는 것이 삶이라는 아름다운 여정입니다.

 

선생님들은 지금 어떤 여정 중에 계시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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