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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요 Apr 12. 2024

사라지는 것에 연연하지 말고

사랑하는 선생님들께


요즘은 커피 대신 짜이를 끓이고 마시는 시간을 자주 가집니다. 주로 아프리카 짜이를 끓이는데 마실 때 산뜻한 느낌이 참 좋습니다. 그 느낌이 목을 차올라 마음에 담길 때면 절로 입은 다물어지고 가만히 귀 기울이게 됩니다. 신이 우리에게 주신 것 중 귀는 두 개, 입은 한 개를 주신 이유가 있다지요. 내가 말하는 것보다 두 배나 많이 귀 기울여 들으라는 뜻이라던데. 저는 얼마큼 더 귀 기울여야 짜이의 진짜 맛을 알 수 있을까요. 마시면 그뿐인 짜이일 뿐인데 하면서도 아차 싶어 멈춰보면 보이는 것이 있습니다.  짜이 한 잔을 만들기까지 스쳐간 인연들 말이에요. 짜이 한 잔에 그들의 언젠가의 인생이 담겨 있다면, 그 인생을 허투루 마실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보다 더 정성스레 귀 기울여 보기로 합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선시는 괴로움을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괴로움을 알아차린다고 해서 그것이 단박에 바뀌진 않아요. 삶 자체가 바뀌지도 않아요. 하지만 우리가 매일의 공부를 이어가는 이유는, 괴로움을 괴로움이라 이름 붙이지 않는 때를 기다리기 위해서예요. 공부한 내용을 머릿속에 잘 품고 있어야 필요한 때가 오지, 그것을 알지 못하면 나에게 맞는 때와 시간이 와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습관의 수레바퀴를 탈뿐입니다.


다만 괴로움은 내 안에서 일어난 '현상'일뿐이고, 조건에 의해서 혹은 인연에 의해서 바뀌게 된다는 것만 기억하면 된답니다. 우리가 공부한 받아들임이란, 멈출 수 있는 힘이 내게 있었지,를 알고 멈추는 것이지 그냥 멈추는 게 아니랍니다. 하지만 짧게 공부해서는 잘 멈춰지지 않아요. 그래서 마음공부는 길고 긴 여정일 수밖에 없지요. 현상은 조건 따라 매번 바뀌기 때문에 우리도 매번 그것을 알아차리고 멈춰줘야 하니까요.


공부로 쌓은 경지가 가장 큰 힘을 발휘할 때는 죽음을 맞을 때랍니다. 죽음을 통해 공부의 뿌리인 무아, 무상, 연기의 법칙을 진정으로 마주할 수 있다면, 죽음이라는 새로운 문을 두려워하지 않고 열 수 있어요. 죽음이란 단지 또 다른 세계일 뿐, 끝이 아니니까요.


그러니 여전히 '현상'에 집착하고 있다면, 천천히 멈춰 보세요. 그리고 깊이 바라봅니다. 그것은 '나'가 아님을, '나의 것'이 아님을, '나의 몸'이 아님을 알아차려 보세요. 그러면 알게 되지요. 아, 그것은 일어나고 변화하고 사라지는 거지. 고정되어 있는 게 아니지. 영원하지 않지.


그리고나서 할 일은 이토록 무상한 것에 집착하기보다 바로 지금 눈앞의 소중한 것을 발견하는 일밖에 없습니다. 지금의 나 역시 홀로 있는 게 아니라 눈앞의 것들과 함께 있음을 아는 거예요. 현상은 그 뒤에 오는 또 다른 것들과 인연을 맺으며 사그라지기 마련입니다. 훅 불면 사라지는 것에 연연하지 말고, 지금 생생하게 살아 있는 눈앞의 촛불을 마주하세요. 그것이 예쁘면 예쁘다 말하고 슬프면 슬프다 말하면 됩니다. 어떤 것도 부정하지 않되 있는 그대로 경험하는 것. 그것이 매일의 과제이고 공부의 복습입니다.


이것은 어려운 게 아니예요. 매일을 평범하게 살되 그 평범함 속에서 소중한 것들을 찾아 살아가면 됩니다 그리고 소중한 것들과 행복하게 살아가면 됩니다. 그뿐입니다.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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