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선생님들께
햇빛 좋은 오후, 갓 내린 커피를 텀블러에 담아 보라색 꽃무늬 가방에 챙겨 집 뒷동산 산책을 나섭니다. 몇 개의 짧은 계단을 오르기도 쉽지 않은 몸의 변화가 느껴지지만, 그래도 함께하는 사람이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뒷동산에는 벤치가 몇 군데 놓여있습니다. 산책할 때마다 느낌이 좋은 벤치를 향해 걸음을 옮기는 것도 산책의 묘미이지요. 잠깐 걸은 것만으로도 금방 숨이 차오르지만, 앉아 쉴 수 있는 벤치가 있으니 참 감사한 일입니다. 잠시 앉아 가쁜 숨을 가다듬으며 커피를 마시는데 집중합니다.
요즘은 집 앞 커피전문점에서 산 원두로 내린 커피를 즐겨 마십니다. 원두 자체의 클래식한 풍미가 살아있고 산미는 적당한 안정감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 원두로 커피를 내려 마실 때마다 봄에서 여름으로 흘러가는 순간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잠시 커피를 마시는 순간에 머물러 보면 눈앞에는 봄의 화사한 풍경이 지나고 초록으로 빛나는 숲이 펼쳐져 있습니다. 한 달 전만 해도 이 자리에서 만난 온갖 색의 철쭉과 풍성한 겹벚꽃의 터널은 천사들이 사는 별세상 같았는데, 돌아보니 이제 과거의 한 장면일 뿐입니다. 꿈꾸고 깨어난 것처럼 지금은 5월의 신록이 눈앞에 있습니다.
그림자에 비춘 작은 잎들은 살랑이는 바람결 따라 천천히 춤을 춥니다. 새들의 울음소리는 봄보다 더 경쾌해졌고요. 사과나무 밑에는 떨어진 꽃잎이 무성합니다. 꽃잎 하나를 주워 향을 맡아보니 여전히 은은하고 달콤한 향이 마음을 적십니다. 계절은 가도, 계절에 대한 기억은 아름다움을 남겨줍니다.
아름다움이란, 보는 이의 것이 아니라 온전히 느끼는 이의 것입니다. 순간은 지나도 기억은 영원으로 남아 삶의 양분이 되지요. 지금, 여러분들은 어떤 양분으로 살아가시나요? 잠시 기억을 음미해 보며 기억 속 순간에 담겼던 마음을 떠올려 보세요. 그 마음을 되새김질하는 것만으로도 오늘을 사는데 충분한 양분을 얻게 될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