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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요 Jun 12. 2024

사랑의 물결을 남길 수 있도록

사랑하는 선생님들께


말린 풀꽃을 모아 꽃누르미를 해 보았습니다. 꽃누르미란, 풀꽃을 눌러 말리는 ‘압화’를 우리말로 표현한 것입니다. 꽃누르미를 할 때 중요한 것은 풀꽃이 지닌 빛깔과 형태를 최대한 지키는 것이지요.



텃밭에서 작은 풀꽃들을 모아 펼쳐보니, 새삼 제게 주어진 것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삼색제비꽃, 데이지, 한련화, 고수, 체리세이지 등 온갖 종류의 허브와 갖가지 빛깔의 풀꽃들이 소박하면서도 풍성하게 저를 맞아주고 있었지요. 그 풍경을 잠시 바라보며 행복했던 경험을 기억으로 남기는 과정은 참으로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풀꽃들을 누르기 전에 먼저 하나하나 세심히 관찰해 보았습니다. 작은 풀 한 포기도 다 똑같은 풀이 아니고, 같은 품종의 꽃이어도 각기 다른 특색을 지니고 있더군요. 새롭게 알게 된 꽃 이름을 부르며, 무심하게 스쳤던 풀꽃들을 아름답게 보는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아름다움을 보는 눈은, 어떤 분별도 갖지 않습니다. 눈앞에 펼쳐진 것들을 감사히 여기는 눈빛은 온화하고 그윽하게 빛날 뿐이지요. 그러고 보면 꽃누르미는 풀꽃의 형태를 그대로 보존하는 것만이 아니라, 아름답게 바라본 시선 또한 함께 간직하는 일인 것 같아요.


저의 꽃누르미에는 아무것도 뽐내지 않는 여백이 있습니다. 풀꽃들이 화려한 형태보다는 본래 모습 그대로 사랑받기를 바랐지요. 자연은 늘 변화하지만, 변화의 흐름은 기억 속에서 사랑으로 지속됩니다. 기억을 되살려 바라볼 때마다 그것은 새로운 옷을 입고 우리를 반겨주지요.


작업을 마치고 라디오를 켜니 은은한 하모니카 소리가 귓가에 울립니다. 꽃누르미 속 풀꽃들은 하모니카 소리를 덧입고 저를 싱그럽게 감싸줍니다. 순간을 움켜쥐는 게 아니라, 자연스레 흘러가며 사랑의 물결을 남길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우리의 역할인 것 같아요. 그러면 그 순간을 기억할 때마다 기쁨의 꽃이 마음속에 피어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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