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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책 Oct 31. 2019

반지하

한 바닥 소설집

창문 앞으로 계단이 보인다. 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일 수도 있고, 혹은 일층으로 연결된 계단일 수도 있겠다. 창문 앞에 계단이 보인다는 것으로는 이곳이 반지하라는 사실을 나타낼 수 없다. 창문 앞으로 나 있는 골목길, 그 위로 걸어가는 사람들의 발을 눈앞에서 본다. 위로 가는 사람과 아래로 가는 사람 사이에 시선이 있다. 도로에서 반 층 내려온 집, 이 집은 반지하다.


계단은 반 지하에 사는 에이에겐 올라가고 싶은 삶이다. 집중 호우가 쏟아지던 어느 여름, 굳게 닫은 안방 창문 앞으로 찰랑이며 빗물이 쌓이는 걸 본 이후, 한밤중 욕실의 수채 구멍이 들썩이며 자신보다 더 아래에 사는 생명체가 하수구를 타고 위층으로 들어오려 애쓰던 걸 목격한 이후, 볕이 전혀 들지 않는 작은 방 벽면에 회색빛의 곰팡이가 무리 지어 검게 피어오르는 것을 본 이후부터 에이는 내려오는 계단에서 올라가는 계단으로의 삶을 꿈꿨다. 유일한 쉴 곳이 빗물과 쥐와 곰팡이와 습기에 잠식당할까 봐 두려웠다. 일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갈 때면 에이는 전철역에서 나와 마주치는 거대한 아파트 단지들을 올려다봤다. 불이 켜진 집들 사이에 검은 박스의 불 꺼진 베란다가 보였다. 저 집에 살면 어떨까? 이렇게 많은 집들 중에 왜 내 것은 없는 거지? 저 집에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태어나야 했을까?


박복한 년. 부모 복 없는 년은 남편 복도, 자식 복도 없다더니 그게 딱 내 말이네. 아유, 지긋지긋해. 그냥 딱 뒈져버렸으면 좋겠네.


그런 생각을 하며 대단지 사이의 대로를 지나갈 때면 귓가에 엄마 목소리가 들렸다. 처음 에이가 그 말의 뜻을 깨닫고 들은 날, 날카로운 뭔가가 가슴을 가르는 것 같았다. 머리에 커다란 못이 박혔다. 뭐야, 자기가 박복하면 나는? 그런 부모를 둔 나는? 그것은 저주였다. 에이가 마주한 삶에 대한 저주. 엄마의 한탄은 에이를 향한 예언이었고, 저주였고, 질투였다. 에이는 책상 스탠드의 불을 켰다. 귀에는 이어폰을 꽂고 라디오를 틀었다. 반지하에서 라디오 주파수를 맞추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워크맨의 안테나를 길게 뽑아 크게 원을 그렸다. 그러다 운이 좋으면 좋아하는 주파수가 선명하게 나왔다. 에이는 연습장에 꾹꾹 눌러썼다. 스무 살이 되면.


계단을 내려가는 것에 더해 현관문이라고 달려있는 회색의 알루미늄 문을 열고 들어가면 또 몇 계단을 내려가야 했다. 여기는 낮이 짧고 어둠이 길다. 해가 스며드는 공간이 정해진 집안에 눅진한 시멘트 향이 풍겼다. 낮 동안 소나기가 한 차례 내려서만은 아니었다. 여름이 다가올수록 해의 무게가 무거워질수록, 해를 피해 공기 방울은 아래로, 밑으로, 에이의 집 안으로 모여들었다. 에이는 안방부터 차례로 불을 켰다. 다녀왔습니다. 아무도 없다는 것을 알지만 흠흠, 일부러 큰 소리를 냈다. 왠지 집의 가장 안 쪽, 불이 꺼진 부엌과 욕실에 그때 그 눈이 마주친 지하 주민이 돌아다니고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에이는 집에 들어가는 걸 좋아하지 않았지만, 집 밖에 있을 때는 자꾸 집이 생각났다. 그것은 불안이었다. 폭우가 쏟아지기라도 하면 장판이 들뜨지 않았는지, 집 안으로 물이 새어 들어오진 않았는지, 하수구는 벽돌로 잘 막아두고 나왔는지 같은 걱정을 했다.


지상에 방 한 칸, 그것은 에이가 바라던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엄마의 바람이었다. 반지하와 지상의 월세 차이도 차이이지만, 보증금 차이가 컸다. 엄마는 지상에 방 한 칸 얻는 게 소원이었지만 박복했으므로, 부모 복도 남편 복도 자식 복도 없었으므로, 해가 뜨는지 지는지 모르는 곳에서 생을 마쳤다.


에이는 엄마의 소원을 들어주고 싶기도 했다. 그게 저주를 깨는 유일한 방법 같았기 때문이었다. 에이는 소공녀 이야기를 좋아했는데, 어느 밤엔 잘 차려진 식탁이, 어느 밤에는 읽고 싶었던 책이 쌓여 있던 소공녀의 다락방을 책상 앞에서 상상했다. 책상 위쪽으로 난 창문으로 주인집 사람들이 지나가는 다리가 보였다. 언젠가 엄마와 나도 그런 꿈같은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야지, 에이는 연습장에 수학 문제를 풀면서 영어 단어를 적으면서 생각했다. 그래도 피붙이니까, 같은 연민과 당신의 예언이 틀렸음을 증명해 보이고 싶은 오기가 뒤섞인 채로. 그러나 스무 살이 되어도 변한 건 없었다. 붉은색 벽돌로 눌러 놓은 하수구 구멍을 등에 지고 세수를 하고, 아침밥을 챙겨 먹고 가방을 들고 계단을 올라가 알루미늄 문을 밀고 밖으로 나와야 날씨를 가늠할 수 있는 날들은 이어졌다. 해가 뜬 날인지, 구름이 많은 날인지, 비가 올 것 같은지. 반지하의 장점이기도 했다. 항상성. 형광등이 태양이었다. 꺼지지 않는 태양, 언제든 켤 수 있는 태양. 날씨에 구애받지 않는 동굴. 계단 몇 개를 내려갈 뿐인데 세상은 그렇게 달랐고, 또 그대로이기도 했다.


엄마가 죽고 에이는 보증금의 3분의 1을 털어 엄마의 장례식 비용으로 댔다. 오래 살아서, 혼자된 에이를 안타깝게 여긴 주인집의 배려였다고 부동산 사장이 말했지만, 월세를 오 만원 올리는 조건이 붙었으니 그것은 거래였다. 손해날 것 없는 계산이 깔린 배려 덕분에 에이는 집에 남아 있을 수 있었다. 에이는 엄마와 달리 부모 복이 없지는 않아서 다행히 넘겨받은 빚은 없었다. 엄마의 불행은 외할머니의 빚이었고, 그러니 여기서 엄마의 저주가 끝난 것인지 모른다. 나는 그래도 그렇게까지 박복하지는 않아.


에이는 과외를 했다. 시간 대비 벌이가 괜찮았다. 선배 소개로 간 양천구의 어느 아파트는 입구에서부터 방이 이어지는, 에이가 지금 사는 집과 별반 다를 게 없는 구조였다. 에이의 주거 공간이 입구부터 나란히 이어지는 방이 두 개라면, 이 집은 그게 두 개 더 있다는 정도. 그러나 내내 볕이 들어오고 아파트 단지 안 공원이 내려다보이는 전망을 갖고 있었다. 화장실에서는 보일러를 켜지 않아도 더운물이 하염없이 나왔다. 에이는 손을 오래 씻었다. 선생님은 댁이 어디세요? 열 손가락에 노랗고 파란, 색색의 손톱을 올린 학생의 엄마는 노랗고 빨간 과일 접시를 내려놓으며 물었다. 에이가 사는 동네를 얘기하자 노랗고 파란 손톱을 가진 여자의 표정에 묘한 안도가 퍼졌다. 같은 고향 출신을 만난 것 같은 반가움이 스쳤다. 에이는 알고 있었다. 살고 있는 동네를 말하면 상대방의 얼굴에서 느껴지는 일종의 감탄을. 그들은 도시 이름을 듣는 순간, 전철역 주변의 빼곡한 대단지 아파트들과 녹지, 부동산 뉴스에서 들먹이는 동네가 겹쳐지면서 에이의 모든 것을 안다는 얼굴이 되었다. 에이는 그런 반응이 나쁘지 않았다. 그렇게 해서 받게 되는 보이지 않는 이익이 더 많다는 것도 알았다. 과외를 받는 학생들의 부모는 에이의 학교도 학교지만 에이가 사는 동네를 좋아했다. 그런 동네에 살면서 이런 학교에 다니는 에이는 반듯한 중산층, 흠없이 자란 모범생, 부모님이 자랑스러워하는 자식이자 그들의 자식이 앞으로 그 자리에 있었으면 하는 이상향 같은 선배가 되었다. 에이는 언젠가 이들과 같은 공간에 놓이리라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졸업을 하면, 취업을 하면, 나도 햇볕이 하루 종일 들어오는 집을, 계단을 오를 수 있을 거라고.


에이의 휴학이 길어졌다. 취업도 멀어졌다. 친구들이 이력서 한 줄 더 넣기 위해 쌓는 스펙들, 기업의 인턴쉽, 어학연수, 공모전 같은 것들을 준비할 시간이 에이에겐 없었다. 반지하에 살기 위해 에이는 돈을 벌어야 했다.


에이는 안방에 누워 생각했다. 하수구의 벽돌, 머리 위의 사람들. 주인집 사람들의 계단 오르는 소리. 내 머리 위에도 벽돌이 있나 보다, 엄마.


박복한 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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