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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민주 Jul 22. 2024

대나무 그리기

#17 별난 게 아니라 빛난 거야

최근에 나는 지인들로부터 필명과 본명을 나눠 쓰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자주 받았었다. 나의 필명은 곽민주. 내가 스스로 지은 나의 필명은 온화할 ‘민’에 두루 ‘주’를 쓴다. 필명을 쓰게 된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내 사람들의 프라이버시를 지켜주고 싶기 때문이다. 작가가 되기로 결심한 이후, 이왕이면 유명해져 돈을 많이 벌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적어도 내 인생에선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마안) 나의 배우자, 나의 자녀, 그리고 나의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낼 때에는 작가가 아닌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엄마, 누군가의 가족이 되어 내밀함을 공유할 수 있는 한 인간으로서만 살고 싶다. 두 번째로는 수평적인 이름이 갖고 싶었다. 부모님이 지어주신 나의 본명은 ‘다스린다’의 의미를 가진 다소 수직적인 느낌을 주는 한자어를 쓴다. 나는 내 인생에 있어서도 독자와의 사이에서도 언제나 수평적인 작가이자 사람으로 남고 싶다. 일반적으로 떠올리기 쉬운 ‘민주주의’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 마지막으로는 중성적인 이름이 갖고 싶었다. 조금 더 추진력 있고, 힘이 있는 글을 쓰고 싶다.      


  작가로서 ‘곽민주’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한 지 이제 2년이 되어간다. 처음 ‘민주 작가님’으로 불리기 시작한 때에는 별다른 수상을 하지 못했던 때에 운이 좋게 한 출판사와 연이 닿아 함께 소설 작업을 할 기회가 생겼을 때였다. ‘민주’라는 이름도 어색했지만 ‘작가’라는 호칭은 얼마나 부끄럽고 이상하던지. 편집자님이 ‘작가님!’이라 할 때마다 주변을 스윽 둘러보며 고개를 푹 숙인 채 얼굴을 살포시 가리고 복도를 가로질렀던 기억이 있다. 그건 반년이 지난 지금도 그렇다. 수상을 했던 하지 않았던 매체에 글을 발표하고, 계속해서 글을 쓰고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이미 나는 작가가 맞는데, 누군가 나를 ‘작가’라고 불러줄 때마다 나는 괜히 부끄러워지고, 때로 사적인 자리에서 ‘작가님’이라는 말을 들으면 내게 일부러 거리를 두려고 하거나 놀림을 받는 것 같다는 혼란에 빠질 때도 있다. 그럴 때면 마음이 푹푹 서운해지기도 하는데 이건 어디까지나 지극히 나의 개인적인 생각이다.      


  이런 이야기를 어디에도 해본 적이 없다. 내가 ‘작가’라는 사실을 부담스럽게 여기고, 부끄러워하고, 어색하고,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걸. 가끔은 내가 작가가 맞나? 하고 뒤를 돌아보게 된다. 내 이름으로 나온 책이 한 권도 없다. 공식적으로 발표한 글의 수가 많지도 않다. 나는 등단 이전이나 이후나 같은 패턴의 생활을 하고 있다. 조금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이전처럼 열심히 쓰지 않는다는 거다. 운동도 하고, 사람들도 만나고, 최근엔 한 달에 한 번씩 여행도 다니며 삶을 대하는 태도에 여유를 가지려 한다. 즐겁게 살아가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러다 한 번씩 열심히 하고 싶은 게 있으면 또 푹 빠져 있다가 나오기도 하고, 글을 쓰는 시간을 정해두고 그 이상을 넘기려 하지 않으려 한다. 세상엔 너무 재밌는 게 많고, 나는 벌써 인생의 절반 가까이를 살아왔으니까.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나는 내 인생을 별나게 살아가고 있나? 그렇다면 평범하게 사는 것은 무엇이지? 회사를 다니고, 운동을 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인생에 재미난 것들을 찾아다닌다. 나는 거기에 ‘소설’이라는 것을 하나 더 쓸 뿐이다. 내 머릿속에 있는 무수한 이야기 열매들을 하나씩 벗겨 먹는 중이다. 조금 더 다른 시각으로 세계를 바라보고, 아무리 생각해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인물에 마음이 쓰이기 시작하면 그 사람을 향해 애정을 듬뿍 담은 세계를 그려 본다. 그의 선악 기준이나 윤리적 가치를 동의해 달라는 것이 아닌, 그저 우리가 사는 세계에 이런 사람도 존재한다는 것을 관조하고 싶은 것뿐이다.      


  나무를 그리라고 하길래 대나무를 그린 적이 있다. 열일곱이었고, 학교에서 형식적으로 진행하던 또래 상담 프로그램에서였다. 반에서 조를 나누어 여자애들 여섯 명씩 상담실에 들어가 선생님과 상담을 하거나 나눠준 종이에 과제를 채우면 되는 시간이었다. 매주 다른 활동을 했는데 어느 날은 ‘나무’를 그리라는 거다. 갈색 기둥에 초록잎, 그리고 빨간 열매. 어떤 아이의 나무는 뿌리까지 훤히 드러나 있고, 또 어떤 아이는 나뭇가지에 새 한 마리가 앉아 있다. 또 어떤 아이는 앙상한 가지만 남아 있다. 나는 뭘 그릴까 하다 문득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춘기라거나 선생님한테 반항하고 싶었던 마음이 일었던 것은 아니다. 그저 재미와 호기심이었던 것 같다. 에이포용지 가득 초록빛 굵은 기둥을 그려 넣었다. 대나무의 결을 따라 가로로 선을 긋기도 했다. 그리하여 파이프 같은 초록색 네모상자(라고 친구들은 킥킥 대며 웃었다)가 테이블 위에 올려졌다.      


  “이게 뭐니?”

  “대나무요.”

  “왜 대나무를 그렸어?”

  “나무를 그리라고 하셔서요.”

  “너 참 별난 아이구나.”     


  내 말에 선생님은 기가 막힌 듯이 나를 쳐다보다가 이내 다른 아이들의 그림을 보고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내 나무엔 잎이 없었고, 하늘도 없었고, 땅도 없었다. 그저 나무의 한 단면. 어쩌면 무협지 속 누군가에 의해 몸체가 댕강 잘려진 채로 허공을 가르는 중이었을지도 모른다. 나의 나무는 단순하지만 강렬했으므로, 주변 친구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남은 시간을 아이들의 그림에 채색을 도와주며 썼다. 그리고 집에 와서는 다른 아이들이 그린 그림에 대한 글을 썼다. 모두가 ‘나무’를 떠올리면 같은 생각을 하지 않는다고. 그러나 ‘나무’라고 생각하는 바오밥 나무 같은 나무만이 나무는 아닌 것 같다는 글을 썼던 것 같다.      


  조금 더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면 소설을 쓰겠다고 마음을 먹은 것은 열일곱의 일이나 나는 중학교 때에도 소설을 쓰곤 했다. 한 번은 ‘버스가 도착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글을 써야 했는데, 모두가 목적지에 도착해 다음 행선지를 고민하거나 목적지가 어떻게 생겼는지를 묘사할 때 나는 버스에서 내리지 않는 캐릭터를 썼다. 좀체 하라는 대로 하지 않는 사람. 살아오며 사춘기를 겪지도 않았거니와 가족들 사이에서도 크게 갈등을 빚지 않으며 순종적인 채로 살아왔으나 소설을 쓸 때만큼은 내 안의 반항심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가 보다. 나는 늘 그런 글을 써 왔다. 좀체 별난 사람, 정말로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을 발견하면 이상하게 마음이 쓰였다. 그 사람의 세계를 이해해보고 싶었던 것 같기도 하다.      


  지난 저녁에 지인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나는 내가 조금 더 평범해지고 싶다고 말을 했었다. 조금 더 평평하게 나를 두들기고 싶다고. 그러자 누군가 내게 ‘별난 것이 아니라 빛난 거야’라는 말을 해주었다.   

   

  “본인은 모르지. 의문을 품고 있는 동안. 본인이 얼마나 빛나고 있는지.”     


  그 밤에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울컥하는 마음이 들어 오사쯔(요즘 빠진 고구마맛 과자가 있다)를 3봉지나 샀다. 한 봉지를 까먹으며 그런 말을 해주는 사람을 이 시기에 만나서 고맙다는 생각을 했다. 언젠가 누군가는 내게 조금 더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라고 말을 해주었고, 또 누군가는 ‘빛나는 네가 마음에 든다’라고 말을 해주었다. 그 역시 나무를 떠올리면 뿌리를 그리는 사람이거나 대나무를 그리려는, 단순한 시선의 차이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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