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
주영은 나를 ‘우희’라고 불렀다.
형님도, 언니도 아닌 우희. 우혁이 주영보다 두 살 정도 어렸고, 나는 우혁보다 두 살 정도 많았으므로 나는 주영에게 우희가 되었다. 두 사람이 사는 동네 근처의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 3잔과 바닐라 아이스크림이 올라간 크로플을 사이에 두고 우리는 머뭇거리며 포크를 들었다 내려놓고,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다 손을 떼기를 반복했다. 우혁은 나의 친동생이고, 주영은 우혁이 7년 동안 만나고 있는 애인이다.
우희씨.
주영이 나를 우희 씨,라고 불렀을 때 나는 그 발음이 생경하게 들렸다. 하루에도 몇 번이고 불리는 이름이지만, 주영이 부르는 이름에는 낯선 감각이 느껴졌다.
우희야.
병원에 가게 되면 요란하고, 미련스럽고, 찌질하게 굴어야 한단다,라고 돌아가신 할머니가 말해준 적이 있다.
우리 같이 가진 게 없는 사람들은 무언가를 얻어내기 위해선 부끄러움을 모르듯 무례하게, 귀찮게 굴어야 사람들이 상처를 제대로 들여다봐 준단다.
그렇지 않으면, 쏟아부은 치료비에 비해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어. 왜냐하면 우리 같은 사람들은 세상에 넘쳐나니까. 때로는 우리의 차례가 와도 우리를 기억해주지 못한단다. 그러니까 죽어 나가는 거야. 충분히 살 수 있었던 기회가 있어도 어떤 사람들처럼 교양 있게 굴면 얌전히 세상에서 사라지는 거야. 그러니까 기다리면 시간이 해결해 줄 거라고, 순순히 네 차례가 올 거라고 기대하지 마. 진정으로 살아남고 싶다면 우리는 어디서든 어떤 식으로든 기억에 남는 사람이 되어야 해.
세상을 그렇게 살아가야 해.
교양 있고 좋은 사람이 될 수 없다면, 무례하고 무식하고 나쁜 사람이 되어라. 그렇게라도 네가 들인 공력만큼을 되돌려 받아야 해.
그렇지만 할머니는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죽었다. 치료를 해도 호전이 될 가능성이 높지 않았으며, 당장의 생명을 5년에서 10년 정도로 늘리는 것일 뿐. 그것은 우리 가족의 입장에선 그렇게 긴 시간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보다 우리는 할머니의 병원비를 댈 능력이 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할머니는 병원에서 검사를 받을 때마다 제 몸을 지키겠다며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고, 자신이 받을 치료나 검사, 그리고 복용해야 하는 약에 대해 제대로 된 설명을 해 보이라며 꼬치꼬치 캐물어 주변 사람들의 인상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결국엔 무구하게 죽어버릴 거면서.
죽을 사람이면서.
살 수 있어도 살게 해줄 사람이 어디에도 없는데.
우희씨는 병원에서 일을 하시나요.
주영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 병원에서 일을 하시나요.
대학병원이요.
가족 중에 병원에서 일하는 분이 있다는 건 참 든든한 일인 거 같아요.
주영이 손을 가리며 하하하, 하고 웃었다. 예의 있는 웃음이었으나 우혁과 나는 웃지 않았다. 웃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타이밍을 놓쳤다고, 나는 생각하고 있었다. 찰나에 우혁과 눈이 마주치자 우혁 역시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우리가 어색하게 시선을 마주치자 주영이 입가에 있던 미소를 지우며 입술을 동그랗게 말았다.
죄송해요, 제가 생각이 짧았나 봐요, 가족 중에 의료진이 있다고 해서 편하게 기대어도 되겠다는 뜻은 아니었는데.
그러자 우혁이 주영의 손에 포크를 쥐어주며 ‘괜찮아, 그런 거 아니야.’라고 말했다. 나는 누군가에게는 익숙하게 다정할 우혁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주영씨, 내가 잠시 다른 생각을 했었어요.
무슨 생각인가요.
가족에 대해 생각했었어요,라고 대답하려다 나는 입을 다물었다. 정말로 가족에 대해 생각했었으니까. 우혁과 내가 가족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적어도 나만큼은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가족에 대해 생각하면 비정한 사람이 되어버리는 게 나다우니까.
비워낼수록 선명해지는 기억이 있다.
집에서 걸어서 한 시간 정도 거리에 있는 구립도서관이었다. 날갯죽지의 손잡이가 반쯤 뜯어진 감색 책가방에 흰색 실로 엉성하게 기워놓은 것을 바닥에 내려놓고 도서관 책상에 앉아 손목 부근에 이마를 괴고 잠이 들었다. 오른편에는 두꺼운 책 한 권을 두었다. 그곳에 있으면 해가 저물 때까지 누구도 나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왜 이렇게 오래 있느냐고, 점심도 먹지 않고 한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이냐고 관심도 주지 않았다. 수두룩 빽빽하게 채워진 책장 사이에서 아무도 모르게 울다, 얇은 종이에 콧물을 쓱 닦아도 모두 다 감추어졌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날은 감추지 못했지. 제법 잠이 들었다고 생각했는데, 깨어보니 점심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사실은 요란하게 배에서 꼬르륵거리는 소리가 나 부끄러움을 느끼며 몸을 일으켜 앉았다. 아무도 나에게 시선을 주지 않았으나 어쩐지 나를 가엾게 여기는 것 같았다. 그때부터였다. 아무리 가족이라도 수치스러운 일을 겪은 것에 대해 말하지 않게 된 것이. 나는 나를 불쌍하게 보는 시선을 견딜 수 없다. 어디에서든 사람들에게 동정을 받고 싶지 않았다.
얘, 혹시 밥 먹지 않을래?
1층 입구에서 정수기 물을 떠다 마시며 배를 채우고 있는 나에게 사서가 다가와 물었다. 30대 초반의 남자였다. 남자는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더니 도서관 5층 식당가에서 쓸 수 있는 식권 한 장을 꺼냈다.
내가 오늘 배가 별로 안 고파서, 이거 여기서 직원들한테 매일 나눠주는 건데 괜찮으면 너한테 주려고.
그렇지만 나는 그것을 받지 않았다. 세상에 공짜는 없을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날 그 사서는 어쩌면 나에게 순수하게 선의를 베풀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받은 만큼 돌려주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었다. 오늘 식권을 받으면, 내일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 내가 받은 만큼 당신과 가까워져야 한다는 의심. 그것의 끝이 진부하고 괴로울지도 모른다는 공포.
그때 나는 열아홉이었다.
주영씨, 혹시 병원에 오게 된다면.
우혁이 나이프와 포크를 들고 한입에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주자 주영이 그것을 포크로 푹 찌르며 한 조각을 먹었다. 아이스크림 위에 뿌려진 캐러멜 시럽이 흐물하게 녹아 그릇은 금세 지저분해졌다. 나는 주영의 입가에 노란 시럽이 묻어 있는 것을 곰곰이 들여다보면서 계속해서 말했다.
아는 척을 해도 될까요.
그럼요, 우희씨가 일하는 데 방해만 되지 않는다면.
가급적이면 병원은 오지 않는 편이 좋겠지만.
우희씨를 만나러 병원에 갈 수도 있겠죠.
주영은 혀를 조금 내밀고는 입가에 묻은 시럽을 핥다 부족했는지 자리에서 일어나 서비스 바에서 물티슈를 챙겨 왔다. 병원에 온다는 건, 남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내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주영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었다. 아마도 주영은 크게 아파 본 적이 없거나, 가족 중에 장기 입원 환자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주영에게 이 질문은 가벼운 것이 되어버렸다.
다행이네요.
내 말에 주영이 말의 의미를 모르겠다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표정으로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남은 한 조각의 크로플까지 깨끗하게 비운 주영은 오후에 일이 있다면서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고, 우혁과 나는 카페에 남았다. 우혁은 나에게 할 말이 있다고 했다.
누나.
우혁이 내 앞에 놓인 커피잔을 쟁반 위로 가져가며 말했다. 자신이 지나간 자리는 반드시 흔적을 남기는 우혁답지 않은 행동이었다.
아버지가 그저께 검사를 받으러 누나가 있는 병원에 갔었어.
그렇구나.
누나에게 말을 거는 일은 없을 거야.
그래.
누나는 요즘 괜찮아?
건강이?
그냥 다.
그만 일어날까? 오늘 너무 많이 먹었다.
그래. 그러자.
나는 끝내 우혁에게 대답하지 않았다. 사실은 나도 잘 모르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괜찮냐고? 무엇이? 그런 질문을 내게 하는 이유가 뭐야,라고 과거의 나였다면 우혁에게 따져 물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분명 나는 그때보다는 몸이 편했으니까. 마음은 여전하지만 몸은 편한 상태. 아니, 원망하던 아버지를 조금씩 남처럼 생각하게 되었으니까.
*
수화기를 들고 112를 차례대로 눌러본 경험이 있다.
아버지에게 죽어버려 새끼야,라고 상스럽게 욕을 했던 날이었다. 그것은 처음은 아니었고 무수히 많았던 날 중 하나였을 것이다. 그렇지만 세상 사람들이 그것에 대해 조금 알아줬으면 좋겠는 마음. 아무리 소리를 지르고 발버둥 쳐도 영영 해결되지 않을 상황 앞에서 순진하게 타인에게 기대고 싶었다. 언성이 높아졌고, 몸싸움이 있었다. 몸에 있던 모든 피가 발바닥까지 내려앉는 기분. 가만히 있어도 사시나무처럼 떨리던 몸.
내가 왜 이렇게 되었지?
어머니의 편을 들었으니까. 밤늦게까지 아이들 뒷바라지를 하고, 한밤중에 당신과 섹스를 하고, 새벽까지 당신이 회사에서 겪었던 일들에 대해 귀담아 들어주고, 당신이 잠든 사이 찾아온 아침에 차례대로 밥을 챙겨 주고, 가족이 집에 없는 사이 집 안 청소와 빨래, 그리고 두 번 이상 겹치지 않게 반찬과 밥과 국을 만들어 내어야 했으니까. 제한된 시간과 비용으로 그 모든 것을 해내어야 했으니까.
그동안 당신은 뭘 했어?
주말마다 누나의 집에 찾아가 내 어머니의 흉을 보았지. 내 어머니가 잠은 더럽게 많고, 집안 살림은 표도 나지 않으며 음식은 간이 맞지 않고 그마저도 종류가 제한되어 먹기에도 보기에도 힘들다고, 거기에 세상 물정은 하나도 몰라서 내가 이렇게 고생을 하고 있다고 떠들고 다녔지.
나는 무엇을 했느냐면, 어머니를 내 방에서 재웠다. 매일 밤마다 내 방의 문을 잠그고 작은 소리에도 예민하게 반응하며 홀로 독립을 할 때까지 그렇게 지냈다. 출근 전 이른 아침마다 당신이 손과 발로 무수히 겁을 준 탓에 내 방의 문짝이 너덜너덜하게 뜯어져 있는 자국이 아직도 그 집에 남아 있다. 그때의 기억을 우혁도 나도 가지고 있다.
지금의 당신은 그것을 인정하며 살고 있다. 내가 서른이 다 되어 가도록 이제는 홀로 내 방에서 지내는 것을 불만하지 않으며, 어머니가 아침을 차리지 않고, 시장에서 사 온 반찬을 식탁 위에 올리는 것을 말없이 받아먹으며.
이제 나는 그 집에 없고, 우혁도 없다. 두 사람은 각자의 공간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다.
나는 당신에게 사과를 받은 적이 없고, 당신은 어머니가 과거의 일을 꺼내며 책망을 할 때마다 무심하게 방으로 기어들어 가 나오지 않다가 조용해지면 밖으로 나와 저녁을 챙겨 먹거나 눈치를 살피고, 눈에 띄게 시무룩해진 표정으로 거실을 살금살금 살펴보다가 어머니의 분이 풀릴 때까지 다시 방에 들어가 한참을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가끔 내가 집에 들를 때면 어머니는 당신과 아무렇지도 않은 척 사소한 대화를 주고받으며 웃기도 한다. 그러다가도 나에게 과거의 고통을 풀어놓으며 당신을 원망하곤 한다. 나는 그것을 모두 들어주기 위해 어머니를 만난다.
찰나에 수화기를 내려놓았는데 경찰이 집에 찾아왔을 때, 초인종을 누르고 문을 두드리며 대여섯 명의 경찰이 신발장 앞에 모여 있었다. 당신은 방에 들어가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워 있었고 어머니는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다가 그들에게 아무 일도 아니라고 말했다.
그럼 아무 일도 아니라는 것에 서명을 해주셔야겠는데요.
아무것도 아닌데 왜 서명을 해야 하나요.
경찰의 물음에 어머니가 그들을 모두 문밖으로 내쫓으며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게 원칙이니까요. 댁이 안전하다는 걸 확인했다는 일종의 절차이니까요.
글쎄, 우리는 아무런 기록도 남기고 싶지 않다니까요.
그럼 왜 연락을 하셨나요.
실수로 손이 미끄러졌나 보죠.
경찰은 눈물과 콧물이 범벅된 내 얼굴을, 눈꺼풀이 부어 쌍꺼풀이 사라진 내 얼굴을 바라보다 정말로 괜찮은 것이 맞냐고 물었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허리를 구십 도로 숙이며 내가 말했다. 그러는 동안 당신은 안방에서 라디오를 들으며 눈을 꼭 감고 있었지. 내가 힘을 주어 문을 닫을수록 경찰은 힘을 주어 문을 열었다. 그것을 반복했다. 그렇지만 결국엔 혹시 무슨 일이 생기면 그때는 꼭 연락하라는 말을 남기고는 훌쩍 돌아갔다.
우혁이가 아직 고등학생이잖니.
학교에 연락이 가면 어떡해, 우혁이 친구들이 알면 어떻게 해. 우혁의 선생님이 알면 어떻게 해. 우혁이가 상처를 받게 된다면 어떻게 하니,라고 어머니는 내가 큰 잘못을 저지른 사람처럼 질책했고, 나는 그때 내가 정말 경솔한 짓을 했다고 생각해 덜컥 겁이 났다.
그렇지만 나는 저 사람들이 우리 집을 감시했으면 좋겠어. 그래서 내가 이렇게 살고 있다는 걸 누군가는 알아주었으면 좋겠어.
그래서 나는 우혁이를 볼 때마다 그것에 대해 생각한다. 우혁의 행복을 바라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불쾌감을 느끼고 있다. 우혁은 그때마다 방 안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았으니까. 아무 일도 없었던 사람처럼 굴었으니까.
*
푸르다,라고 생각했던 날에 병원 밖의 담장을 걸었던 적이 있었다.
병원 내부의 사람들과 병원 밖의 사람들이 뒤섞여 거리를 걷고 있었다.
낡은 스피커와 악기를 꺼내 연주를 하는 사람이 있었고, 한 손을 턱에 괴며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었다. 환자복을 입은 사람도 있었다.
멀리 갈 수는 없어서 그들의 주변을 돌며 걷고, 또 걸었다. 걷는 동안 생각했다. 당신에 대해 생각했다. 내 어머니와 여전히 함께 살고 있는 당신에 대해 생각하는 동안 우혁과 주영에 대해 생각했다. 우혁은 주영과 정상적인 관계를 맺고 있나? 주영은 우혁으로부터 이상한 점을 발견하지 못했나? 아들은 아버지를 닮는다던데. 주영은 잠을 잘 자는 편인가? 주영은 우혁과의 섹스에 대해 불쾌감을 느끼고 있지 않나. 그런 생각을 하다 다시 병원으로 돌아왔다.
우희야,
그런 것들은 병원이 아니어도 중요한 삶의 지혜 같은 거란다.
할머니는 죽기 전에 나에게 그런 말을 했다. 그러니 부끄러워하지 말고 이루고 싶은 것이 있다면 상대에게 먼저 강렬한 인상을 남기라고. 그것이 좋든 나쁘든 그 편이 좋다고.
학교를 다니는 동안 병원은 되도록 가지 않는 게 좋다, 고 생각하고 있었으면서 나는 병원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내가 병원에서 일을 하면 간호사일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그렇다면 조금 무례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건 내가 의사여서 그런 것은 아니었고, 나는 병원의 원무과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원무과에 있으면 주로 병원비를 수납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아침 일찍 오는 사람들은 이곳 대학병원을 방문한 적이 없거나, 세분화된 과목 중에서 어느 곳에서 진료를 봐야 할지 몰라 당일 진료 예약을 하기 위해 오는 사람들이었다.
원무과에 있는 동안 기억에 남는 사람은 최근엔 어디가 아픈지 모르겠지만 몸이 아픈 것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아가씨. 내가 몸이 많이 아픈데. 주변에서 나보고 살이 자꾸 빠지는 것 같다고 말하는데, 내가 몸이 아픈 것 같은데. 아가씨가 보기엔 어떤가요.
나를 아가씨라고 불렀던 사람은 50대 후반의 남성으로, 눈 밑이 유난히 검고, 뒤통수에 탈모가 진행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최근 살이 10kg가 빠졌다고 주장하고 있었지만 몸집을 보아하니 비만에서 정상 체중으로 바뀐 것 같았고, 그렇지만 1년 사이 급격히 살이 빠진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나는 그에게 종합검진을 추천해 주었고 그는 며칠 뒤 자신의 검진 결과가 ‘정상’이라는 것을 확인하고는 개운한 얼굴로 수납을 하기 위해 다시 찾아왔다. 그는 마지막까지 나에게 아가씨라고 부르는 것을 잊지 않았다.
반면에 어떤 사람은 이미 밀려 있는 진료 일정을 뒤로 제치고 당장 선생님의 진료를 보게 해달라고 떼를 쓰기도 했는데 병원 로비의 원무과였기 때문에 나로서는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 사람은 40대 중반의 여성으로, 최근 자궁에 이상이 생겨 찾아왔다고 했다. 번호표를 들고 내게 다가올 때부터 그녀는 눈에 띄게 복부를 앞으로 쭉 빼며 뒤뚱뒤뚱 걸었다. 산부인과로 안내를 해주려는데 대뜸 어떤 이름을 대며 이 교수님을 원한다고 말했다. 그 교수는 최근 TV에 출연하여 급격히 찾는 환자들이 많았고 특히나 그날은 도저히 당일 환자를 받을 수 없었다. 죄송하지만, 이 선생님은 지금 예약이 꽉 차서……. 내 말에 여자는 표정을 우악스럽게 구기며 언성을 높였다.
아가씨, 내가 죽을 것 같다니까. 내가 지금 몸이 아파 죽을 것 같다니까.
죽을 것 같으시면 응급실로 가시는 게 어떨까요. 아니면 다른 선생님을 뵙거나, 내키지 않으시면 이곳보다 규모가 조금 작은 병원으로 가시는 걸 추천해 드릴게요.
나는 일정한 속도와 톤의 목소리로 여자에게 말했다. 그러자 여자는 대뜸 울음을 터트리며 나에게 소리를 질렀다.
사람이 살고 죽는 일인데……. 만약에 아가씨 가족이 진료를 받는다고 해도 나한테 한 것처럼 그럴 수 있어요?
그럴 수 있어.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세상엔 아버지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매일 밤마다 기도하는 딸도 있을 수 있다고. 당신이 나의 삶을 방관했던 것처럼, 나 역시 당신의 불행을 바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얼마 동안은 당신의 불행을 나는 바라고 있었다. 세상에 정해진 수명 같은 게 있다면 당신의 수명이 생각보다 빠르게 채워지길 바라고 있었고, 어느 날엔 음주운전 사고의 피해자가 당신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꿈속에선 당신을 죽이는 상상을 하기도 했다. 깨고 나면 내 손이 피범벅으로 물들어 있는 것만 같아 제법 섬뜩하기도 했는데 가끔 싸움이 벌어질 때마다 흥분한 내가 부엌으로 뛰어 들어가 고기를 자르는 식칼을 손에 들고 미친 사람처럼 당신을 향해 비명을 지른 적은 있어도 나는 그것을 실제로 실행에 옮긴 적은 없다.
그런데 우혁으로부터 당신이 검사를 받기 위해 병원에 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의사의 진단에 따라 조직 검사를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가슴이 조금 철렁 내려앉았다. 어머니는 그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나는 저 인간이 우혁이가 장가갈 때까지는 살아 있었으면 좋겠어. 아니, 그냥 적당히 오래 살았으면 좋겠어.
어머니는 오래전에 집을 나가 돌아오지 않는 우혁이를 두고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어머니는 적어도 내가 우혁이보다 먼저 결혼을 할 것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무래도 우혁은 언젠가 결혼을 할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나보다 먼저 결혼을 하게 될 사람은 우혁이가 먼저 임에 틀림없었다.
엄마는 어떻게 그런 마음이 돼? 그렇게 살고도 어떻게 그런 마음을 먹을 수 있어?
어느 밤에 나는 잠들기 직전의 어머니에게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내 물음에 어머니는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돌아누우며 낮게 읊조렸다.
아무래도 그렇지? 씨발, 저 새끼는 끝까지 진상이야.
*
살면서 주목을 받고 싶었던 적은 단 한 번이었다.
뜨개질을 하는 모임에서 였는데, 그것은 내가 유일하게 오래도록 가지고 있던 취미이기도 했다. 회사를 다니면서 첫해에는 기억에 남는 일이 생길 때마다 나는 집으로 가는 골목을 지나기 전에 있었던 작은 수예점에서 마음에 드는 털실 한 뭉치를 사서 아무런 목적도 없이 네모난 판을 만들었다. 도마 같기도 하고, 냄비 받침 같기도 한 그런 것을.
이듬해엔 동영상 사이트를 참고해가면서 목도리를 만들거나 모자, 장갑 같은 것을 떴고, 나중엔 취미를 붙여 가방이나 스웨터, 그다음엔 무엇이라고 딱히 이름을 붙이긴 어렵지만 인형 같기도 하고 그냥 관상용 소품 같기도 한 것들을 만들었다. 다 만들고 나면 문구점에서 500원짜리 눈알을 붙여주기도 했는데, 정체를 알 순 없지만 다양한 모양의 인형들이 머리맡에 쌓였다.
아가씨만 괜찮다면 우리 모임에 나올라요?
수예점에서 털실을 고르고 있는데 주인아주머니가 대바늘을 앉은자리에 내려놓으며 물었다. 제일 얇은 털실 중에 파란색과 하늘색을 두고 고민을 하고 있을 때였다.
그냥 일주일에 한 번씩 모여서 뜨개질을 하는 모임이에요. 모여서 수다를 떨면서 시간을 보내다가…… 모르는 게 있으면 알려주기도 하고요.
그날 나는 아주머니의 휴대전화에 내 전화번호와 이름을 알려주었다. 그 모임에 참석하기로 마음을 먹은 결정적인 이유가 있다면, 당시에 아주머니의 손에 들려 있던 이상한 소품 때문이었다. 커다란 노리개 모양으로 장신구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그것은 악몽을 걸러준다는 드림캐처라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장신구보다는 장식품에 가까운 것.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나를 제외한 그 모임의 사람들은 모두 드림캐처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어 나는 조금 충격을 받았는데, 그건 TV나 영화 속에 간혹 등장을 하는 물품이라 했고, 동남아 여행이라도 가게 된다면 흔하게 볼 수 있는 기념품 중 하나라고 했다.
그날 아주머니의 손에 들려 있던 것은 이솔이 만든 것이었다. 이솔은 아주머니의 언니의 딸로 조카였는데, 그날 모임에서 듣기론 미술을 공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솔은 최근에 예술의 전당에 자신의 이름을 건 기획 전시를 올렸다면서 나에게 시간이 된다면 보러 와도 좋다고 말했지만 나는 그때 그 말을 한 귀로 흘려들었다. 실제로 나는 미술이고 뭐고 굳이 미술관까지 가서 다리 아프게 서서 그림 같은 걸 보는 행위에 돈을 쓰는 걸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 건 허영에 들뜬 사람들이나 교양을 채우기 위해 의미 없이 행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었다.
여기서부터는 안뜨기를 하는 게 맞죠. 색깔이나 크기나 안뜨기가 훨씬 예쁠 텐데.
모임에 참여하는 동안 나는 진심을 다해 다른 사람들의 뜨개질에 참견하곤 했다. 이곳은 그러라고 있는 자리이니까. 부끄러울 것 없이 솔직하게. 나는 내가 이 모임 중에서 뜨개질을 가장 잘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모자나 장갑, 니트 원피스나 가방을 뜰 때마다 가끔은 아주머니의 판단보다도 내 판단이 맞을 수도 있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아닌 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우리 집에도 하지 못하는 말들을, 병원에서도 하지 못하는 말들을 나는 그 모임에서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뜨개질은 거짓말을 하지 않으니까. 그 사람이 짜놓은 형태와 태도에 대해 가장 적나라하게 이야기해 줄 수 있으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드림캐처를 만들어 보고 싶었다. 이솔에게 드림캐처를 만드는 방법 같은 걸 배우고 싶었다. 인터넷에서도 찾을 수 있겠지만 나는 이솔에게 그것을 배우고 싶었고, 이 모임에서 수준급의 뜨개질 실력을 가지고 있는 내가 만들어 낼 작품들에 사람들의 동경을 받고 싶었다. 고작 그 작은 모임에서.
우희씨는 뜨개질을 하신 지 얼마나 되셨나요.
어느 날 이솔의 물음에 나는 대바늘을 잡던 손을 가슴께로 가져오며 손가락을 접었다. 회사를 다니고, 이 동네로 이사를 오고 나서부터였으니까…….
뜨개질은 한 달 만 배워도 금방 늘 수 있어요. 감각만 있으면요. 그렇지만 역시나 우희씨는 뜨개질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으신 거죠?
그날 이솔은 내 맞은편에 앉아서 갈색 털실로 무언가를 둥글게, 둥글게 만들어 내고 있었다. 그 옆에 둘러앉은 사람 중 한 명이 이솔에게 그것이 무엇이냐고 묻자 이솔은 고슴도치요, 하고는 주먹만 한 크기의 공 같은 그것을 내 앞으로 내어 보였는데 고슴도치고 뭐고 내 눈에는 그건 그냥 똥 같았고, 그보다 이솔이 나에게 그런 말을 했을 때 나는 얼굴이 목 끝까지 벌겋게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어째서,라고 묻고 싶었지만 그날 나는 모임에서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아니, 꺼낼 수 없었다. 그날 나는 구석진 자리에서 몸을 수그리고 앉은 채로 이제 막 시작한 드림캐처 키트에 털실을 반쯤 엮다 말고 수예점을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다시는 가지 말아야지. 역시 시간 낭비였어.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나는 혼잣말을 하며 빠른 걸음으로 경사로를 올랐다. 이솔이 매우 무례하고 건방진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병원에 출근을 하면서 그 일에 대해 생각했다. 그때 나는 다른 사람들의 기분이나 마음 같은 건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소중하게 생각해야 하는 건 오직 잘 만들어진 작업물 같은 것. 나는 거짓말 같은 건 하고 싶지 않았다. 잘못되고 부족한 건 상대에게 알아듣게 이야기를 해 줘야지. 그래야 실수고 실망이고 실패고 그런 것들을 하지 않지. 고고한 척하는 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쓸모가 없다. 그렇지만 나는 얼마 후 주영과 우혁을 만나기 전까지 내내 그것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
우희씨.
나를 ‘아가씨, 혹은 저기요’라고 부르지 않고 우희씨, 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은 주영 한 명뿐이라고 생각했다. 병원에서 마주치게 된다면 인사를 해도 좋겠다고 생각한 사람은 주영이 처음이었으니까. 그러나 그날 번호표를 손에 든 채로 내 앞에 서 있던 사람은 주영도, 아버지도 아닌 이솔이었다.
이솔은 치과 진료를 받기 위해 병원에 들렀다고 했다. 나는 이솔의 진료비를 수납한 뒤 그와 함께 잠깐 밖으로 나왔다. 이솔과 함께 걷던 길은 내가 가끔 점심시간마다 푸르다, 고 생각하며 걷던 그 길이었다. 점심시간이 코앞이었고, 이솔 역시 어차피 이 길을 통과해야만 가까운 버스 정류장까지 갈 수 있었다. 이솔은 내가 먼저 저에게 점심을 먹자고 이야기하기를 기대하는 것 같았지만 나는 부러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이솔과는 편하게 점심을 먹지 못할 것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함께 걷는 동안 이솔은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카락이 거슬리는지 자꾸만 어깨 뒤로 머리를 넘겼다. 여름이었지만 하얀 반팔 티셔츠 위로 얇은 감색 니트조끼를 입고 있어 조금 덥게 보였는데, 그보다 더 시선이 가는 건 이솔의 손에 들린 아이스초코였다. 휘핑크림이 3단으로 올려져 있었는데, 치과에 온 사람치고는 대단히 과감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아, 이건 제가 사려고 한 건 아니고요. 사정이 좀…… 혹시 드실래요?
아니요, 단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요.
우희씨, 드림캐처는 완성하셨나요.
이솔의 물음에 나는 그럼요,라고 말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사실은 그날 이후로 나는 더 이상 뜨개질을 하지 않게 되었으므로. 속에 오래 담아두고 있었던 일들을 털실을 일정한 간격으로 풀면서 삭히게 되었지만 이제는 바늘을 잡을 때마다 내가 고집스럽고 이상하고, 괴팍하고, 못된 사람이 된 것 같아서 기분이 더 나빠졌기 때문이다. 내가 대답이 없자 이솔은 주머니에서 머리끈을 꺼내 제 머리를 위로 질끈 묶으며 말했다.
그럼 또 볼까요. 조만간, 그곳에서.
이솔의 말에 무어라고 대답을 해야 할지 몰라서 머뭇거리는데 마침 버스가 도착했다며 이솔은 버스가 오는 방향으로 빠르게 달려가기 시작했다. 나는 이솔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이솔이 탄 버스가 멀리 사라져 가는 걸 바라보기만 했다.
*
괴롭다고 생각했다.
다시 병원으로 가는 길엔 정말로 여름이 된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 나는 내 앞에 서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저들 중엔 어쩌면 오늘이고 내일이고 나에게 수납을 하러 올 아버지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나는 가족 중에 당신의 병명이나 치료 과정 같은 것들을 알기 싫어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니까 괴롭다. 괴롭다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그 자체로 사는 게 괴롭다고 생각했다.
주영은 우리 가족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면 우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혁을 사랑할 수 있어?
끔찍하지 않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할 수 있나.
카페에서 우혁이 잠시 화장실을 간 사이에 주영에게 털실로 만든 그물 모양의 가방을 선물했었다. 실이 거칠고 뻣뻣해서 가방을 만들기에 제격이라고 생각한 것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수세미를 만든다는 그것을 나는 가방으로 만들었다. 실의 표면에 반짝이는 가루가 고르게 퍼져 있었다. 주영은 갈색 쇼핑백에서 그것을 꺼내 보이고는 마음에 드는 듯 입가에 옅은 미소를 지으며 직접 만든 것이냐고 물었고,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장 보러 갈 때 과일 같은 걸 담기 좋다고 말했다. 뜨개질을 좋아하느냐는 물음에는 부러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 순간 이솔을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우희씨는요. 우혁이랑 같은 종류의 사람인 것 같아요. 우혁이도 그러거든요. 며칠 전엔 늦은 밤에 <니모를 찾아서>를 보다가 혼자 막 울었는데, 그러고 말았거든요. 나한테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그런 일이 있었어요.
우혁이는 그런 사람인 거겠죠. ……우희씨 같은 사람.
나는 주영의 입에서 ‘우희씨 같은 사람’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아니, 처음부터 나는 주영에게 아무것도 말할 수 없는 사람이니까. 가끔 알 수 없는 대목에서 눈물을 흘리거나, 모두가 웃고 있는 장면에서 홀로 심각한 표정으로 무언가에 골몰해 있는 사람. 주영은 나와 우혁이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주영씨, 그렇지만…… 우리들은요.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모두 다 처음부터 어떤 종류의 사람이 되지는 않으니까요. 그런 말을 하려고 하던 때에 우혁이 다시 자리에 돌아와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느냐고 물었고 나는 아무것도, 하면서 앞에 놓인 유리컵을 들어 한참 얼음이 녹아 밍밍해진 아메리카노를 몇 모금 마셨다.
이듬해, 우혁은 결혼할 사람을 집에 데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