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명진 Jun 05. 2018

작지만 확실한 변화

파리지앵 인테리어 09

작지만 확실한 변화 


응접실로 쓰기로 한 거실은 이제 어느 정도 머릿속에 그렸던 모습과 닮아 있었다. 커피 테이블 위에 갓 내린 커피를 빈티지 잔에 담아 올려놓고, 소설책 한 권을 소파에 기대어 읽고 있노라면 제법 파리지앵 흉내를 내는 기분이 들었다. 그렇지만 뭔가 큐브의 마지막 조각을 못 맞추고 있다는 느낌을 오래 지울 수가 없었다.  


깨달음은 파리에서 찾아왔다. 기획하고 있던 소설의 자료 수집을 위해 온종일 파리의 거리를 거닐며, 오래된 건물들과 자그만 가게들의 인테리어를 카메라에 담던 중이었다.  


 

파리는 가히 웨인스코팅의 도시다


“고전미가 필요해.” 


고전미라는 분과 사랑에 빠져야겠다는 말이 아니라, 나의 응접실에 클래식한 아름다움이 부족하다는 깨달음이었다. 그럼, 과연 무엇으로 그 비어 있는 아름다움을 채울 수 있을까. 답은 알고 있었다. 파주 집에서 시도해보려다가 귀찮아 보여서 하지 않았던 바로 그것, 몰딩을 이용한 벽 장식 웨인스코팅(wainscoting)이었다.  


귀국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웨인스코팅용 목재들을 주문했고, 사투(?) 끝에 웨인스코팅 인테리어를 성공리에 마쳤다. 과연, 작지만 확실한 변화였다. 

 




weekly interior point | 몰딩색 교체와 웨인스코팅


웨인스코팅은 17세기 영국 빅토리안 시대에 시작된 벽 장식 기법이다. 대표적인 것은 벽의 허리 부분에 몰딩을 둘러 허리 하단과 상단을 구분하는 방식으로, 우리가 유럽 영화 속에서 익히 봤던 바로 그 모습이다. 


 

다양한 형태와 색을 활용한 웨인스코팅


웨인스코팅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해야만 할 일이 있다. 당연히 하겠지 하고 그냥 넘겼던 부분인데, 바로 한국 가정집에서 노랑이 장판에 이어 2순위로 악명을 떨쳤던 체리색 몰딩의 색을 바꾸는 일이다. 주로 벽면과 천정면이 만나는 곳에 둘러져 있는 체리색 몰딩은 아무래도 교체하는 것보다는 벽의 색에 맞춰 함께 페인트로 칠해버리는 것이 무난하다. 몰딩은 나무 재질이기에 벽지나 콘크리트벽에 페인팅을 하는 것보다  더 여러 차례 색을 덧입혀줘야만 얼룩덜룩하지 않게 색이 입혀질 것이다.  


체리색 몰딩이여 안녕-

 

몰딩을 바꾸는 것에 성공했다면, 이제 줄 자를 소환하여 웨인스코팅을 할 벽면의 길이를 측정하자. 본격적으로 방의 전면을 두르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가성비를 생각하면 특정한 한 면에만 장식하는 것도 좋다. 고전미를 강조하고 싶다면 전면, 모던함과의 공존을 노린다면 한 면 또는 두 면 정도에 장식하는 게 적절하다.  


나는 아오이 유우의 사진집에서 보았던 한 면을 장식한 웨인스코팅에 영감을 얻었다


다음은 웨인스코팅의 재료들을 주문하는 일을 해야 한다. 웹에서 ‘웨인스코팅 재료’, 또는 ‘몰딩 재료’ 등으로 검색하면 구입할 수 있는 사이트를 요즘은 쉽게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마음에 드는 무늬와 모양의 재료를 주문하자.  


[ 주의 사항 ] 몰딩은 적당한 크기로 주문 / 접착은 글루건으로! 


피땀눈물로 겪은 일이라 반드시 당부하고자 한다. 깔끔하게 보이려고 지나치게 긴 길이의 몰딩을 주문하면 이 녀석이 벽에 접착이 되지 않는 참사가 발생한다. 어째서 그런 일이 생기는가? 여러분의 방벽을 한 쪽 끝에서 끝까지 손바닥으로 천천히 쓰다듬어 보자. 아니 이렇게 유려한 곡선이 느껴질 줄이야! 하고 놀라게 될 것이다. 그렇다. 벽은 의외로 평평하지 않다. 너울거리는 벽에 절대 휘려고 하지 않는 곧은 몰딩을 길게 붙이는 일은 피땀눈물을 부르기 마련이다. 그러니 욕심을 버리고 적당한 길이의 몰딩을 여러 개 주문해서 서로 잇는 편이 훨씬 정신건강에 도움이 되리라 확신한다. 


재료가 도착했다면 다음은 벽에 몰딩들을 붙이는 일만 남았다. 내 경우 처음에는 모 책자에서 본 매뉴얼대로 목공용 접착체나 실리콘으로 붙이려고 용을 썼었다. 하지만 넘실거리는 벽은 몰딩들을 30초 이상 받아들이지 않고, 내뱉어버리기 일쑤였다. 3시간 넘게 악을 쓰다 결국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진 나를 구원한 것은, 오- 위대한 글루건님이셨다. 몰딩을 이 집이 무너질 때까지 벽에 붙여두고 싶은 욕망을 지닌 것만 아니라면 글루건으로 충분하다. 여러분은 모쪼록 어리석은 나의 전철을 밟지 마시고 마음 편히 글루건을 이용하시기 바란다.  


 

허리 몰딩을 부착할 위치를 정하고, 마스킹 테이프로 표시. 몰딩 부착 부분까지의 벽면을 참고한 사진집과 같이 밝은 회색으로 칠했다.


어리석었던 나는 양면테이프와 목재용 접착제로 부착을 감행했다(한 번에 붙지 않기에 사진처럼 나무판으로 몰딩이 떨어지지 않게 장시간 지탱해줌). 부디 현명한 여러분은 글루건을...


장식용 몰딩도 미리 색을 칠하고, 원하는 형태로(내 경우 직사각형 액자틀 모양) 조립해둔다


간격을 잘 조정해서 장식틀을 역시 글루건으로 붙여준다



울렁울렁한 벽면 덕분에 사진과 같이 톱으로 몰딩을 조각조각 잘라 붙였다. 그 탓에 보기 싫은 빈틈들이 생겼는데...


이 빈틈은 목재용 접착제를 사진과 같이 바르고, 마르길 기다린 후 몰딩에 칠한 것과 같은 색으로 페인팅을 해주면 깔끔하게 마감이 된다.


완성!


2018. 4. 27. 멀고느린구름.




* 이 칼럼은 라이프스타일 플랫폼 HAGO와 함께 합니다.

새로운 칼럼은 매주 금요일마다 HAGO Journal 란에 선공개됩니다 :  )

이전 09화 파리지앵과 마법의 방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