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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다시 시작된 병원 생활

by yeon

기존에 있던 병원에서 퇴원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여러군데를 발품 팔아 방문해서 보기도 했고 전화상담을 받기도 했다. 결국 엄마와 같은 병실에 있던 환자분이 먼저 옮긴 곳으로 이동하기로 하고 입원 날짜를 확정했다.


내가 간병을 시작할 수 있는 날로 맞춰뒀다. 요양보호자 자격증을 따고 간병 들어갈 준비를 빠르게 진행했다. 퇴사까지 한 마당에 개인간병비로 나가는 지출을 줄여야 하니깐.


병원을 옮기는 날엔 외삼촌의 도움을 받아 병원 이동을 했다.


전에 있던 병원에서 같은 병실에서 지내던 분과 이번에도 같은 병실을 배정받아 다행이었다. 그분은 척추쪽 질환 환자로 인지는 정상이었다. 그럼에도 매일같이 아침마다 인지가 부족한 엄마에게 인사를 하고 대화에 참여시키려 부던히 말을 걸어주시던 따뜻한 분이었다.


또다시 시작된 병원 생활..


오래 병원 생활을 하다보면 자연스레 이집 저집 사정을 알게 된다. 다른 보호자, 환자들과 대화하다보면 필연적일 수 밖에 없는 부분이었는데 그것때문에 항상 긴장 아닌 긴장 속에 지내게 됐다.


대부분 비슷한 질문이다. 어떤 질환으로 입원하게 됐는지, 발병은 언제인지. 그리고 아버지는 안계시는지..


보통 배우자가 간병을 많이 하는 편인데 나같은 경우 일까지 관두고 딸이 간병을 하니 궁금들 하셨나보다.


"오래전에 이혼하셨어요"


왜 이 말이 안나왔을까..


중학교 시절 엄마와 아빠가 이혼 한 뒤로 이혼에 대해 부끄럽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지만 어릴때 그 이야기를 하면 안쓰럽다는 듯이 바라보던 눈빛들이 싫었던 건 어쩔수 없나보다.


아빠는 동생과 멀리 지방에서 살고 몸이 좋지 않다고만 에둘러 말하곤 했다. 이혼했다고 말하면 불쌍하다는 듯한 눈빛이 엄마에게로 갈 것 같았다.


어릴 적부터 결핍이 있던 사람이라 그런진 모르겠지만 그런 눈빛들에 예민하게 반응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 불편함은 명절이나 주말에도 심해졌다. 배우자가 간병을하든, 간병인이 간병을 하든 명절이나 주말에 다른 가족들이 면회를 오는 환자들이 많았는데 우리 같은 경우 1년이 넘도록 아빠나 동생이 면회를 온 적이 없으니 말이다.


아들은 면회를 안오냐는 말.. 저랑 싸워서 안올꺼예요.


틀린말은 아니였다. 그들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이었지만 뭐 어쩌랴.


불쌍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엄마와 나 둘뿐이지만 외롭지 않다고, 힘들지 않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작은 동물이 겁을 먹어 더 크게 짖어대는 것 처럼 더 과장스럽게..

내가 바라던 부분을, 아픈 부분을 감추기에 급급했던 것 같다.


타인과 얇은 커텐 한장으로만 공간을 나눠 함께 생활 하는 것으로도 피로감이 몰려드는데 그런 부분까지 생각해야하니 정신적으로도 상당히 지치기도 했다.


다양한 사연을 가진 아픈 사람들과 그들을 돌보는 보호자들..


각자의 사정들과 아픔으로 점철된 곳이 병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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