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도전>에서 국회 입법 관련해서 2주에 걸쳐 특집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4월 1일 방송에서 한 제안자는 "중성 화장실을 없애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일명 <남녀 공용 화장실 설치 금지법> 강남역 살인사건을 언급하면서 말이지. 그런데 중성 화장실은 전세계적으로, 인권을 기치로 내걸면서 오히려 늘리고 있는 게 추세다.
세상엔 "남성"과 "여성"만 있는 게 아니다.
"양성 평등"이란 말 대신 "양성"으로 대변될 수 없는 성 지향자들의 인권 진흥까지 꾀하기 위해 요즘에는 "성 평등"이란 말을 쓰고 있는데, 같은 맥락이다. 남성과 여성만으로 구분지어질 수 없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아니, 예전과 달리 수면 아래에만 있지 않다. 원래 있었겠지.
몸은 남성인데 정신은 여성이거나, 몸은 여성인데 정신은 남성인 경우고 있을 것이고, 한 때는 남성의 몸을 가졌으나 지금은 여성의 몸인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들의 성별을 구분하는 건 그리 간단치 않다. 그저 간단하게 "현재 가지고 있는 몸"을 기준으로 삼을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편리하고 싶으면 애초에 "인권"이란 단어를 쓰지 말아야한다. 편리하고 가성비에 맞다고 해서 장애인들은 탈 수 없는 싼 버스를 마구 도입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한국의 공용 화장실은 맥락이 다르긴 하다.
한국은 물론 "인권" 때문에 일부 가게들이 중성 화장실을 채택하고 있는 건 아니다. 주로 중성 화장실이란 옵션을 채택하는 가게들은 중성 화장실을 다른 가게들과 공유하는 경우가 많고, 그렇지 않은 경우 작은 가게에 작은 화장실 하나만을 두는 경우다. 즉, 남자 화장실과 여자 화장실을 따로 둘 여력이 없는 경우에, 혹은 화장실 대신 차라리 테이블 하나를 더 놓을 요량으로 중성 화장실 하나로 '퉁친다'. 위에 삽입한 사진을 보면 중성 화장실을 2개 뒀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한국은 중성 화장실을 도입하는 경우, 화장실이 하나인 경우가 파다하다. 만약 화장실 2개를 둔다면 남자 화장실과 여자 화장실 하나를 두는 경우가 많다.
한국의 공용화장실은 왜 위험한가?
애초에 여성으로 대변되는 사람들이 "남녀 공용화장실 설치 금지법"을 제안하는 이유를 잘 생각해봐야한다. 내 여사친 하나는 해가 떨어지면 우유를 사러 가는 것도 무서워하고, 집에 갈 때 왠 수상한 남자가 어슬렁거려도 왠지 모르게 경계를 한다고 했고, 또다른 여사친은 집에 들어가서 열쇠를 구멍에 넣고 돌릴 때까지 뭔가 모를 걱정을 한다고 했다.
이는 주변 상황이 그닥 안전을 보장해준다는 느낌을 주지 않고, 실제로 얼마든지 위험할 수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강남역 살인 사건은 그런 불안이 단순한 불안이 아니었다는 걸 대대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었고, 그 때문에 큰 이슈가 되었다. 강남역이라는 유동 인구가 가장 많은 대한민국의 지역에서 여성을 대상으로 살인이 일어나다니?
문제가 발생한 원인으로 여러가지를 둘 수 있을 것이다. 범죄자의 정신병적인 상태를 문제로 삼을 수도 있을 것이고, 여성차별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는 한국 사회가 그런 정신병이 나아가는 방향을 잡아줬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고, 순찰병력이 적다는 이유를 들 수도 있을 것이다. 정확한 원인을 진단할 수는 없고, 원인이 하나라고 단언할 수도 없을 것이다. 나는 이 글에선 한국 중성-공용 화장실의 위치를 지적하고자 한다.
한국의 공중 화장실은 위험 관리가 안된다.
위치가 문제다. ft. 사각지대
여러 영업자들이 하나의 화장실을 '공유'하는 경우, 한 빌딩에서 층간 사이에 화장실을 두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위험하다. 가령, 가게 안에 화장실이 있다면 가게 안의 손님들은 일종의 감시자 역할을 하게 되지만, 가게 바깥 화장실에는 감시자가 없으므로 화장실을 이용할 때 위험할 수 있다. 강남역 살인사건 때의 화장실이 딱 이런 구조다. 아래를 보라.
그런데 이는 비단 '중성 화장실'만의 문제는 아니다. 1층과 2층 사이에 여자화장실을 두고, 2층과 3층 사이에 또 화장실을 두는 경우가 있는데, 이 경우에도 앞서 언급한 중성 화장실의 문제는 여전히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여성만의 화장실은 여성들에게 더 위험한 화장실일 수 있다. 여성 대상 범죄를 일으키려는 자에게 범죄 대상만이 들락거리는 장소가 되니까. 그러니까 공용화장실이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가게 바깥에 있는 화장실이다. 제3자들의 시선이 전혀 닿지 않는 장소라는 점에서 위험하다. (또, 자물쇠가 전혀 채워져있지 않은 화장실들도 꽤나 많은데, 이는 당국 차원에서 화장실을 관리하지 않기 때문에 발생한다. 이는 이 글이 주로 다루고자하는 주제와는 살짝 거리가 있는 이야기이므로 JTBC의 르포영상으로 대신한다.)
초등학교를 예로 들어볼까. 외쿡의 경우 초등학교를 야채가게나 카페들이 둘러싸는 경우가 있다. 이 경우에 카페 앞의 주민들은 일종의 CCTV로서 기능한다. 초등학교는 자체적으로 안전 조치를 굳이 취하지 않아도 안전해진다. 모든 눈이 자동적으로 그쪽으로 쏠리기 때문이다. 감히 초등학교에서 범죄를 저지르지 못한다. 공원도 사각지대가 많을 수록 방문자들에게 위험하다. 아래의 영상을 보시라. 시간도 찍어놨다.
중성 화장실이건, 남성-여성 화장실이건 간에, 그것이 가게 안에 있다면 목숨을 위협받는 상황은 일어나지 않는다. 가게 안의 손님들이 일종의 CCTV로서 기능하기 때문이다. 필자가 위에서 삽입한 미국의 중성 화장실들은 모두 건물 내에 있었고, 건물 내에서도 영업장 안에 있었다.
중성 화장실이 몰래 카메라의 위험을 늘릴까?
중성 화장실을 이야기하면 언급되는 게 있다. 몰카. 중성 화장실이 되면 몰카가 더 늘어나지 않을까 하는 공포심은 분명히 존해하는 것 같다. 예전에 <헬조선 늬우스>에 아이반 코요테의 테드 강연 <우리에게 중성 화장실이 필요한 이유>를 올린 적이 있는데 많은 여성들이 댓글로 "한국에선 안될 듯"이라며 그 이유로 "몰카"를 주로 들었었다.
그런데 몰카는 여성 화장실이 존재했을 때부터 존재했고, 중성 화장실을 도입한다고 더 늘어나거나 더 줄어든다고 보기는 힘들다는 게 내 생각이다. 내 생각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엄밀하게 검증해보지는 않았기 때문이다(조사할 방법이 없기도 하고). 중성 화장실이 되면 아무래도 카메라 설치의 접근성이 올라가긴하겠지만, 몰카를 화장실의 종류로 대처하는 건 그닥 적합하지 않은 느낌이다. 남성-여성 화장실을 구분해도 상황은 그닥 다르지 않을테니까.
오히려 너무 쉽게 몰래 카메라를 구매할 수 있는 것을 제재하는 게 더 효과적인 대안이 아닐까 생각한다. 최근 팬 사인회에서까지 가서 초소형몰래카메라가 설치된 안경으로 몰카를 찍은 사람이 있었다. 얼마나 구하기가 쉬우면? 아래 링크를 가면 몰래카메라가 설치된 안경을 구매할 수 있다. 아래 사이트는 어떻게 찾았을까? 네이버에서 몰래 카메라를 치면 그냥 나온다. 초소형 카메라와 비슷한 카테고리에 속하는 강간 약물도 한국에선 손쉽게 구할 수 있다. 그런 나라다.
한국의 화장실은 정부의 관리 대상이 아니다.
미국의 경우, 한 영업장이 화장실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으면 영업 정지를 먹을 수 있다. 그래서 미국의 자영업자들은 주기적으로 어떻게하면 정부의 '검열'에 대처하는 세미나를 듣기도 한다. 예전에 <공중화장실에 설치형 물비누를 놔야하는 이유>라는 글을 적었었다. 그 글의 일부를 아래에 인용해보겠다.
"미국에는 Health Inspection(이하 헬스 인스펙션)이라는 제도가 있다. 이 제도에 따라 일종의 청결 암행어사인 Health Inspector(이하 인스펙터)가 영업장들을 찾아가서 영업장의 청결 수준이 규정에 어긋나지 않는 지를 파악한다. 인스펙터는 영업주의 가게 화장실에 "Employees Must Wash Hands Before Returning To Work"라는 문구가 적혀있는 지를 확인하는 등 가게 구석구석을 확인하고 또한 가게의 점장에게 "식중독을 일으키는 바이러스나 박테리아 5가지를 대보라"라는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답은 살모넬라 박테리아, 시겔라스 박테리아, 이콜라이 박테리아, 노로 바이러스, 헤파티티스 A 바리러스).
인스펙터는 이 과정 중에 영업장의 인스펙션 점수를 하나하나 매기고, 그 점수들은 가게의 앞에 소비자가 볼 수 있게끔 적어놓는다. 소비자들은 그 점수만을 보고 해당 가게가 얼마나 청결한 지를 파악할 수 있게 된다. 이는 <Nudge 넛지>와 <Simpler 심플러>란 책을 썼던 Cass.R.Sunstein 칼.R.선스테인의 아이디어와 상당히 닮아있다. 오바마 행정부 하의 정보규제국의 수장으로서 다양한 규제들을 철폐 및 보완했던 캐스 선스테인은 <심플러>를 통해 소비자들에게 도움되는 정보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돕는다면 소비자들이 더욱 합리적인 선택을 하도록 유도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인스펙션 점수는 "심플러"에 부합한다. 가게가 청결한 지 여부에 대해 소비자가 쉽게 알 수 있도록 돕는다면 소비자는 더 깨끗한 가게들을 찾아갈 것이고, 가게들은 앞다투어 더 청결한 공간을 만들고자 노력할 것이다(그 때문인지 미국에선 헬스 인스펙터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고자 하는 영업주들이 참가하는 세미나도 비정기적으로 열린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건, 미국 정부는 화장실이란 장소에 대해 상당히 빡센 관리를 한다는 거다. 강남역 살인 사건을 다룬 JTBC의 르포 영상에서는 자물쇠조차 달려있지 않고, 암호키가 걸려있어도 정작 기능은 전혀 하지 않는 화장실의 문짝들이 등장한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 중 하나는 건물주가 화장실을 전혀 관리하지 않는 다는 것이고, 건물주는 그럼에도 이렇다할 법적 제재를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화장실들은 모두 제각각이다. 비누가 있는 곳도 있고, 비누가 없는 곳도 있고, 물비누가 있는 곳도 있고, 고체 비누가 있는 곳도 있다. 화장실이 칸마다 비치되어있는 곳이 있는 가 하면, 화장실에 들어가는 입구에 거대한 두루마리 휴지통이 벽에 붙어있는 곳이 있고, 또 어떤 곳은 휴지를 몇백원에 판매하기도 한다.
그리고 어떤 곳에는 화장실 칸에 쓰레기통이 있고, 또 어떤 곳에는 휴지통이 없다. 물에 잘 녹는 화장지들이 지천에 깔려있는데 여전히 많은 업주들은 "변기가 막히니 쓰레기통에 화장지를 넣어달라"고 한다. 미국이나 유럽의 화장실에는 쓰레기통이 없다. 생리대를 버리는 쓰레기통도 따로 마련되어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건 그냥 길거리에 널려있는 쓰레기통에 버린다(한국 길거리에는 쓰레기통도 없다는 게 함정).
한국의 화장실은 관리자의 재량에만 맡겨져있는 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그래서 다 제각각의 모습을 띄고 있다. 딱히 돈이 되지 않기 때문에 대체로 구린 게 함정이다. 규제라는 건 이럴 때 하는 거다. 마땅히 해야하는 걸 하지 않을 때. 결론은 간단하다. 정부가 화장실을 제대로 관리해야한다는 것. 화장실 상태가 메롱하면 건축 허가조차 내주지 말아야하고, 영업 정지도 때려야한다. 그게 상식적인 정부의 행동이다.
자물쇠조차 제대로 달려있지 않은 한국의 공중 화장실들을 보아하니 중성 화장실을 이야기하기가 머쓱해졌다. 내가 너무 시대를 앞서가나? 딱히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아래는 필자가 화장실에 이전에 쓴 글들이다. 참고하실 분들은 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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