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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 Aug 13. 2017

T in the Park(티 인 더 파크)2016(1)

놀 줄 아는 사람들의 축제

티 인 더 파크를 가기 위해 스코틀랜드의 글라스고로 항했다. 비욘세의 공연을 보기 위해 하루를 묵고, 다음 날 페스티벌 시작에 맞추어 공연장까지 가는 코치를 탔다. 터미널에서 시내버스같이 생긴 그저 그런 셔틀버스를 타고 글라스고를 벗어나 1시간 반 가량을 달려 티 인 더 파크가 열리는 Strathallan Castle에 도착했다. 오는 길에 뒷자리를 꿰차고 잔뜩 사온 술을 마시며 가던 몇몇 사람들은 가는 도중에 화장실을 가고 싶다고 내려달라 아우성이었고, 내리게 허락해 준 버스 아저씨는 신호가 바뀌는 순간 노상방뇨 중인 그들을 버리고 부리나케 버스를 출발시켰다. 이게, 티 인 더 파크에 같이 가던 사람들의 첫 인상이었다.




내내 진흙과의 사투를 벌였던 글라스톤베리 이후에 '이젠 무슨 페스티벌이든 환경은 그보단 낫다'라는 마음으로 간 페스티벌이었지만, 역시나 영국 페스티벌에서는 비와의 인연을 끊을 수가 없었다. 첫날엔 도착해서 들어갈 때까지만 해도 잔디밭이 괜찮아보였다. 아니, 계속 그랬으면 하고 바랐었는지도 모른다. 기대와는 달리 잔디가 진흙으로 변하는 건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페스티벌 내내 하루도 빼지 않고 비가 왔고, 워커를 신었던 내 발은 3일간의 캠핑동안 점점 뒤꿈치가 까지고 굳은 살이 생기면서 하루하루 습기에 부어올랐다.



힙한 진흙무늬 워커+레깅스 조합, 훠우!
진흙으로 변한 잔디, 파란 옷 입은 언니 아니고 오빠는 그 와중에 숨막히는 뒷태로 시선강탈




심지어 티 인 더 파크는 샤워시설이 무료로 제공되는 곳이 없다. (이런 부분은 어쨌든 무료 샤워를 제공하는 글라스톤베리가 낫다.) 따뜻한 물로 24시간 사용가능한 샤워시설이 있지만 굉장히 비싼 편이고, 씻으려면 야외에 설치되어 있는 수도에서 씻는 게 그나마 가장 좋은 방법이다. 여름이라서 우리나라처럼 등목이라도 할 수 있냐고, 천만에. 스코틀랜드, 영국 북쪽에 위치한 만큼 여름이 여름이 아닌 거다. 춥다, 춥다! 뭔가 좀 이상하지만 여름이어도 밤에 텐트에서 오들오들 떨며 잠을 겨우 자야 하는 건 내가 이 때껏 방문한 모든 영국의 여름 페스티벌이 그러했다. 아니, 위도도 그리 우리나라랑 별반 다르지 않은데 왜!


그렇지만 뭐 별 수 있나, 그게 스코틀랜드요, 영국의 여름페스티벌이요, 그걸 택해 텐트에서 잠을 청하는 건 나였다. 결국 이 고행길은 내가 선택해 왔다는 것. 상황을 원망해도 페스티벌에는 '놀러'온 거였으니까, 싫으면서 싫을 수만은 없는 건 당연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젠 몇 번의 영국 페스티벌을 가면서 식상해질 법도 한 페스티벌들의 왠지 비슷하면서도 서로 다른 점을 찾아보는 것도 이제는 나름대로의 재미로 여기기로 했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여타 다른 페스티벌보다 (레딩, 리즈와 같이 락페 입문이라고 하는 하드록 느낌의 페스티벌 제외) 티팍은 그저 좀 빡센 페스티벌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뭐랄까, 잉글랜드보다는 스코틀랜드가 좀 더 거칠거칠한 느낌이라서 그런 듯 했다. 그저 편견일지도 모르겠지만 기본적으로 '락빠'들의 집회스러운 이미지가 있었고, 페스티벌에 모인 애들이 고만고만하듯 여기저기 미친 놈들은 지천에 깔려있었지만 이 동네는 좀 더 세게 미친 애들이 많은 느낌이라고 해도 될까. 은둔하는 애들 말고 표출하는 류로.



스코틀랜드에서 하는 페스티벌인만큼 정신을 놓기에 충분할 촉매제가 되는 비가 자주 내리는 데다가 거기에 무대 앞에 서서 틈만 나면 'Here we, here we, here we fucking go'를 외치고, 맥주 파인트를 자꾸만 공중으로 던져대는 그들이었다. 그래서 내가 밟는 이 진흙탕이 비 때문인지 맥주 때문인지, 오물 때문인지 모를 지경이었다. 그런데 이게 이 페스티벌의 왠지 모를 매력인 것 같았다. 조금 촌스러울지도 모르지만, 왠지 잰 체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표출하며 이 시간을 오롯이 즐길 줄 아는, 소위 '놀 줄 아는 사람들'의 페스티벌 말이다.





2016년의 티 인 더 파크의 헤드라이너는 더 스톤로지스(The Stone Roses), 캘빈 해리스(Calvin Harrris), 레드 핫 칠리 페퍼스(Red Hot Chilly Peppers)였고, 메인 스테이지를 제외한 Radio1 stage나 King tut's에서도 메인 스테이지에 버금가는 아티스트가 페스티벌 3일을 가득 채웠다.



페스티벌 사이트 중심에 위치한 메인 스테이지는 큰 위압감이 느껴진다기보다는 페스티벌의 전체적인 중심을 잡아주는 듯한 느낌이었다.





스테이지에서 캠핑존은 생각보다 멀리 있었다. 스테이지가 7개여서 그리 많은 수도 아니었고, 그래서 그랬을지도 모르지만 훨씬 더 규모가 작을 거라 생각했던 건 내 그냥 상상 속의 티팍이었을 뿐, 어쨌든 페스티벌을 하는 장소라는 것은 결국 드넓은 허화벌판에서 하는 이벤트라는 사실은 어디든 같은 것이었다. 그러면서 든 생각은 '영국은 여러 페스티벌이 쓰는 동네가 다 다른데 이 넓은 부지를 통째로 쓸 수 있는 곳이 이렇게 많은가?'라는 거였다. 그리고 동시에 이런 생각도.


이 넓은 데서는 페스티벌 안 할 땐 뭐하지?



페스티벌 첫 날, 아직은 조용한 캠핑존.



텐트를 치고 나서, 슬금슬금 캠핑존에서 나와 제임스 모리슨의 공연부터 메인스테이지에서 본격적으로 관람하기 시작했다. 메인스테이지 뒤 편에는 머천다이즈 부스와 티 인 더 파크를 상징하는 'T' 심볼 포토존이 있었고, 옆으로 뒤로 음식이나 술을 파는 벤더가 늘어서 있었다. 작은 스테이지들은 메인스테이지 뒤켠에 띄엄띄엄 있었다. 뒤 편에 있는 스테이지에서는 스탠드업코미디를 하기도 하고, 밴드들이 공연을 하기도 했다.



Radio 1 stage



중간에 자리한 서브 스테이지격의 Radio1 stage로 이동하는 길에는 한 달 전쯤에 다녀온 아일오브와이트 페스티벌에서처럼 놀이기구가 설치되어 있었다. King tut's은 다른 스테이지들과 가장 거리가 멀리 떨어져 있었는데, 서커스 텐트에 옆 가림막이 없이 양옆과 뒤쪽으로 누구나 입장할 수 있게 되어 있는 텐트 무대였다.



King tut's stage


페스티벌 스테이지들을 대략 둘러본 이후에는 메인스테이지 뒤 쪽에 자리한 머천다이즈를 구매하기 위해 MD판매 부스로 향했다. 각 페스티벌마다 판매하는 여러 MD 중에서 어떤 물품을 잘 골라 구매하느냐는 언제나 초미의 관심사다. 티셔츠를 산다고 하면 내가 가지고 있지 않은 색으로, 맘에 드는 걸 골라서 한정된 예산 안에서 잘 찾아 구매하는 순간은 뭐가 그렇게 진지한지 모를 일이다. '야, 이게 더 낫다'라고 말해줄 까다로운 쇼핑친구라도 하나 옆에 있었으면 좋겠다. 심지어 '하나 더 사고 싶다'는 마음을 꾹꾹 눌러담는 것도 머천다이즈 판매 부스를 뒤로 하고 나올 때 꼭 겪는 단계. "안 돼"하고 손등을 탁 쳐줄 사람이 필요할 때는 이럴 때구나 싶었다.



티 인 더 파크 2017년의 MD로는 꼭 광목천으로 만든 것 같은 베이지색 티셔츠를 골라 샀다. T가 잘 그려진 것으로.




'T'는 티 인 더 파크를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스코틀랜드 맥주 테넌츠의 T와도 그 모양이 같다. 페스티벌은 이 맥주 회사의 스폰서를 받기도 하지만, 맥주 자체에도 티 인 더 파크의 마크인 같은 T가 맥주에 새겨져있다. 'T'를 테넌츠에서 따온 만큼 20년 이상을 후원해왔다고 하니, 시작부터 끈끈히 함께 한 셈이다. 페스티벌 전체의 음료부스에 판매되는 맥주도 테넌츠이다. 캠핑존으로 가는 길에 있는 수퍼마켓부스에서도 심지어 이 맥주를 시원하게 해 캔으로도 팔고 있었다. 페스티벌 내에서 캔맥주를 판매하는 부스가 있는 것도 꽤 이례적인 일인데, 보통 페스티벌 내의 바에서 판매하는 게 수입도 많을 뿐더러, 안 그래도 캠핑존으로 들고 들어가는 술이 있기 때문에 별도로 판매까지는 하지 않기 때문이다. 있어도 사전에 온라인으로 구매한 이후 현장에서 찾는 서비스를 운영하는 정도인데, 여기는 아예 캔맥주를 사가져갈 수 있도록 하는 걸 보면 테넌트 쪽에서 어떤 방식으로든 맥주를 팔아보고자 하는 모양이었다.



이봐요, 안 그래도 사먹는다구요.


특별히 본 것도 많지 않았던 것 같았는데 금세 헤드라이너의 순서가 다가왔다. 첫날 헤드라이너는 더 스톤 로지스였고, 전반적인 관객 호응은 좋았지만 내가 느끼는 공연은 그리 좋지가 않았다. 음향 때문일지, 무엇 때문인지 표현할 방법을 찾기 힘들지만 왜, 과거의 록스타가 힘겹게 옛 시절의 노래를 부르는 느낌 있지 않나, 보는 사람이 답답해지는 그런 느낌. 동행했던 친구도 원래는 스톤로지스 공연을 기대했던 것 같았는데 공연을 보고 나서는 둘 다 좀 힘이 빠졌다. 세계적으로도 대단한 밴드의 음악을 직접 무대에서 보고 들었는데도 팔짱을 끼고 이런 평가질이라니. 분명히 음악은 좋았는데, 그랬던 것 같은데, 왜, 당황스러움과 어이없음을 동시에 느끼는 복잡미묘한 감정이었다.








생각보다 금방 지나간 티 인 더 파크의 첫 날은 공연이 끝난 스테이지를 뒤로 하고 캠핑존으로 향하는 것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많은 인파의 사람들과 우르르 내 텐트가 어디 있는지를 찾으러 가고, 이 길이 조금 익숙해지는 느낌이 살짝 들었을 때 또 내가 여기서 며칠을 살겠구나 하는 생각이 스쳤다.




알싸한 공기가 벌써 캠핑존에 가득 차있었다. 밤에 또 비가 한 차례 올 것 같았다. 아직은 맑은 하늘에 달이 밝아 한참을 하늘을 올려다보다가 텐트 입구를 닫았다. 옆 텐트에서 들려오는 오아시스 노래가 이 곳과 잘 어울리는 느낌이었다. 금방 또 추워진 스코틀랜드의 저녁을 나기 위해 갖고 있던 옷들을 다 껴입고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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