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산을 가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시절의 나는
뭔가 새로운 걸 해보고 싶은 시기였던 것 같다.
일상은 그대로였지만
마음속 어딘가에 작은 지루함이 쌓이고 있었다.
큰 문제는 아니었지만
그 마음을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명확히 알지 못했던 때였다.
그러다 우연히 인터넷에서
‘해발 0m에서 한라산 정상까지 오르는 도전’
이라는 짧은 글을 보았다.
사진 몇 장, 후기 한두 줄.
설명이 길지 않았는데도
그 문장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해발 0m에서 시작한다고?”
그 말이 이상하게 마음에 들어왔다.
그동안의 산행은
대부분 주차장이나 탐방로 입구에서 시작했다.
이미 어느 정도 높이에 서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이번엔
정말 ‘제로’에서부터 걷는 것이었다.
아무것도 더하지 않은 출발선.
그 단순함이 묘하게 나를 끌었다.
그때의 나는 깊이 고민하지 않았다.
그저 “해보고 싶다.”
그 마음 하나였다.
어떤 성취를 기대한 것도 아니고
삶이 크게 달라지길 바란 것도 아니었다.
그냥
한 번쯤 새로운 방식으로 걸어보고 싶었다.
그 호기심이 전부였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찾아보기 시작했다.
출발 지점은 어디인지,
얼마나 걸리는지,
어떤 코스로 올라가야 하는지.
대단한 준비는 아니었다.
그 도전이 어떤 모습인지
조금 더 알고 싶은 마음 정도였다.
가방을 싸는 일도 특별하지 않았다.
늘 다니던 등산의 연장선처럼 느껴졌다.
지금 돌이켜보면
가볍게 시작했기 때문에
두려움 없이 걸어 들어갈 수 있었던 것 같다.
‘할 수 있을까?’보다
‘어떨까?’가 더 앞섰던 시기였으니까.
그렇게 2022년 가을,
나는 자연스럽게
한라산 제로포인트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계획적이지도, 거창하지도 않은 출발이었지만
나에게는 그게 딱 맞았다.
때로는 거창한 이유보다
작은 호기심 하나가
사람을 먼 길로 이끌기도 한다는 걸
그때 처음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