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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의기쁨 Jun 29. 2024

희망이라는 이름

낯선 상상 #8

"철커덩 철커덩"


기차는 느린 듯 빠르게 달려가고 있었다.


창 밖으로 펼쳐진 드넓은 들판의 모습은 가을이 이제 오고 있음을 알리고 있었다.


선우는 출출함을 느꼈다.

배낭에서 집에서 나오긴 전에 삶아온 달걀을 꺼내 먹으려고 했다.

그런데 앞에 한 젊은 엄마가 배고파하며 징징대는 아이를 달래고 있었다.


"자. 우리 이쁜 꼬마 아가씨! 배가 많이 고픈가 보네. 이거 먹고 힘내요~"


어여쁜 꼬마 아가씨가 머뭇거렸다.


"자. 괜찮아. 이 삼촌은 배고픔을 잘 참을 수 있단다."


"아유. 괜찮은데... 고맙습니다."


젊은 엄마는 조심스레 달걀을 받고서는 아이에게 건넸다.


꼬마 아가씨가 그 하얀 달걀을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손에 꼭 쥐고는 먹지 않았다.


"왜 안 먹니?"


"삼촌. 이 달걀이 너무 귀여워요. 먹을 수가 없어요!!"


당황한 엄마는 어찌할 바를 몰랐지만 아이의 해맑은 모습에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그래. 그럼 그렇게 하렴."


그리고는 다시 창 밖을 바라봤다.


정겨운 그 아이의 웃음소리는 마치 가을이 오는 것을 반기는 듯했다.



Egberto Gismonti - Palhaço (1986년 음반 Alma)


얼마나 달려왔는지 모른다.

목적지에 다다르고 기차에서 내렸다.


땅끝 마을에 도착한 선우는 하염없이 펼쳐진 저 바다를 바라보았다.

짊어진 배낭을 땅에 내려놓고 신발을 가지런히 벗었다.


그리고 무언가 한참을 생각하며 그 바닷가의 절벽으로 향했다.


그래.
이제 마지막이구나.

이것으로 충분해.


선우는 절벽 아래로 뛰어내리려고 했다.

하지만 그의 머릿속을 스치듯 아까 만났던 꼬마 아가씨의 모습이 떠올랐다.





"삼촌. 이거 이쁘죠? 달걀이 너무 이뻐서 여기다가 펜으로 웃는 모습을 그렸어요!"


"그래. 이쁘구나. 우리 꼬마 아가씨처럼 말이야!"


"삼촌. 감사합니다. 이 달걀처럼 항상 웃고 싶어요. 또 만날 수 있을까요? 선물에 꼭 보답하고 싶어요!!!"


"하하하. 그래 조심히 가요. 꼬마 아가씨"





선우는 머뭇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뒤로 돌아 가지런히 놓인 신발을 신고 배낭을 있는 힘껏 다시 메었다.


가치 없는 삶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아이의 해맑은 모습이 자꾸 떠올랐다.

그저 작은 달걀 하나 건네주었을 뿐인데 작은 것에도 기뻐하는 그 모습이 자꾸만 눈에 들어왔다.
또 만날 수 있을까라는 그 인사.

아마도 다시 만나기란 힘들 것이다.
어쨌든 그것은 내가 살아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그것이 희망이 될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삶의 가치와 희망은 크기로 잴 수 없다는 사실을 마지막에 와서야 알게 되었다.
이제는 그 작은 가치를 찾아볼까 한다.

무화과나무의 그 작은 씨앗의 크기만큼의 가치라도...

언젠가는 높게 뻗은 무화과나무처럼 활짝 필 것이라는 희망을 안아 보고 싶다.


"꼬르륵"


선우는 다시 출출함을 느끼며 한바탕 크게 웃었다.

살아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느낀 것이다.


"음... 이 동네 근처에 맛집이 있다던데 한번 찾아봐야겠구나."


선우가 한걸음 한걸음 내디뎠던 그 길의 뒤로 가을이 오고 있음을 알리고 있었다.


to 언젠가는 무화과나무처럼 활짝 필 귀한 가치를 마음속에 지니고 있는 브런치의 모든 작가님들에게

실제로 부산에 있는 친구를 보러 탔던 기차 안에서 배고파하기에 삶은 계란을 건네주었던 그 작은 꼬마 아가씨는 잘 컸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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