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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대생의 심야서재 Dec 06. 2021

커피가 법으로 금지된다면?

운영자가 쓰는 '신나는 글쓰기' 미션

커피 금지법이 발효된 것은 지난 약 100년 전의 일이었다.


왜, 어떤 이유 때문에 그런 혁명적인 법이 제정되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단지 100년 전에 유력 정치가 한 명이 그 법을 긴급히 제정했고 그 정치가를 따르는 대다수의 무리들이 법에 동조했을 뿐이다. 아마도 그 정치가에겐 커피 쇼크가 있었다나 기도에 염증이 있었다나, 뭐 그런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물론 그 소문의 근원지도 확실하진 않지만…


대중은 법 따위든 그 조항에 포함된 무서운 정의든 전혀 관심이 없다. 자신에게 어떤 악영향을 미칠지 알 수 없지만, 그들은 맹목적으로 자신의 우두머리를 세우고 인정하며 그를 따르지 않는가. 커피 금지법 따위가 그들의 삶에 어떤 중요한 작용을 미치겠는가. 당장 오늘 아침에 일어나서 이불 개는 것조차 숨 가쁜 일인데… 먹고 살 일이 더 시급한 것이다. 단지, 커피를 금지한다고 하니, 그들은 잠시 머리를 갸우뚱했겠지만, 곧바로 수긍했다. 절차적인 것이든 설득이든 필요 없었다.


반대하는 것은 오직 다른 형태의 반대를 낳을 뿐이다. 그러니 반대는 허용되지 않는다. 긍정적이라 함은 반대가 들어설 자리를 아예 잘라버리는 것이다. 뿌리든, 씨앗이든 모두 제거해버려야 한다. 무조건적인 수용만이 그들에게 허용된다.


아무튼 커피 금지법은 문제 제기 없이 발효됐으므로 시민의 의향 따위 그러니까 공청회 같은 것은 열리지도 않고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바로 시행됐다. 물론 시민에게는 약간의 자유가 보장됐다. 개미허리만큼 정도의? 그들은 그것도 심지어 감사하게 여겼다. 이것이야말로 전체주의가 아닌가?


법을 따를지 말지는 전적으로 그들의 의지에 달려 있었지만, 그들은 의식을 파리채 내려놓듯 바닥에 방치해 두었다. 법의 속성은 그런 것이다. 강력하고 질서적이고 모순적이지만 가치가 있는 것이다. 법은 강제사항을 내포하지만 때로는 유연함을 제공한다. 어떤 제한적인 범위 내에서 말이다.


여기서 제한적이라는 의미는 공간적 의미가 포괄하는 어떤 부피의 총량을 의미한다. 공간이라는 것은 한정적인 숫자를 갖는다. 자, 커피를 금지하는 1조 1항을 따를 것인가, 말 것인가, 그 결정은 시민 개개인에게 달렸다. 자유란 강제사항이 제정되고 그것에 더 강하게 붙들릴 때 의미가 상기된다. 기억 저 어두운 곳에서 똬리를 틀며 기회를 엿보던 사이코패스가 자신의 악의를 순간적으로 드러내듯 그렇게 다가오는 것이다. 여기서 자유엔 다른 의미는 없다.


거제도 남단, 이름도 없는 작은 섬, 가로세로 약 10만 제곱미터의 공간에서 그 법이 태어났다. 그 섬은 물론 대한민국이라는 커다란 범주에 속한 일종의 작은 교집합의 형태라 칭할 수 있었지만, 그 섬은 속박된 삶이 아닌 콩알만 한 섬에서 누릴만한 작은 자유 같은 것을 함께 누리며 살고 싶어 탄생된 것이었다. 그것이 그들을 집합시켰고 그들을 하나의 문화권으로 결속시켰다.


그들은 나라의 법을 따랐다. 그곳을 세운, 말하자면 설계자는 마치 신흥종교 혹은 사이비 종교에서 흔히 발생할 수 있는 초월적인 형태의 권위를 누리길 원하지 않았다. 종교의 색채를 띠지 않는 것은 그 거제도 밑의 어느 보잘것없는 섬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는 사람들을 위해 보장된 최소한의 기본권인 셈이었다. 아무튼 그랬다. 오직 법이 삶에 효력을 미칠 뿐이다.


그런데, 그 멀고도 험난한 거제도 남단에서도 배를 타고 몇 시간을 운항해야 도착하는 그 작은 섬, 딱히 문화적인 업적을 세우거나 별다른 가치가 없는 그곳으로 사람들이 벌떼처럼 모여들었다. 단지 자신이 오랫동안 신뢰했던 곳, 그곳에서 버려졌다는 사실이 그들이 그 섬을 선택한 단 한 가지의 정의의 실현이었을까. 아무튼 예상하지 못한 숫자였다.


그들이 섬에 발을 들이기 직전, 섬에서 준수해야 할 계명이 적힌 태블릿이 각자에게 주어졌다. 물론 계명이 담긴 태블릿은 법의 무게를 담았으므로 5킬로의 아령보다 더 무겁게 다가왔다. 계명을 무시하고 제멋대로 살겠다며 이따위 태블릿은 개나 줘버리라고 외친 인간은 바로 바다 한가운데에 버려졌으니까. 그것도 통나무 속에 가두고 못을 10군데에 때려 박은 채로 말이다. 어디론가 떠내려가든 그러니까 상어의 먹이가 되듯, 저 남태평양 밑 호주까지 밀려가 자유를 외치든 상관없었다.


그 섬을 택하겠다고 배에 승선한 것이 잘못이라면 잘못이랄까. 아무튼 그랬다. 지극히 우스운 시작, 파괴적인 결말이었다.


내가 누구냐고? 나는 이 작은 섬에 제정된 법을 사수하는 일종의 지킴이다. 나에겐 권한이 있다. 법을 지키지 않는 인간을 색출하고 그들을 이 섬에서 몰아내는 것, 그러한 인간을 찾아내고 구속시키는 것이 나의 직무다. 이 역할은 내가 자청했다. 아주 멋지지 않은가? 내가 스스로 원한 것이다. 이 섬에서는 재미있는 일이 거의 벌어지지 않으니까. 지루하게 침대에 누워 있거나 창밖으로 해가 뜨고 달이 뜨는 걸 지켜보는 게 이섬의 특별함의 전부였으니까. 지루하고 밋밋한 하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하루.


이곳에도 카페는 있다. 카페는 인간이 모여 잡답을 나누는 공간이다. 이 섬은 비록 인공적으로 세워졌지만 작은 도시와 거의 흡사하다. 도시가 가진 외양을 모두 갖췄다. 그러니 카페가 거제도 남단, 작은 섬에 건축됐다고 해도 이상하지는 않다. 하지만 바리스타는 이곳에 존재하지 않는다. 이곳엔 오직 밀크티 혹은 결명자차 같은 게 무인으로 서비스될 뿐이다.


오늘 나는 도심 정중앙 스타타워 뒤편에서 쭈그리고 앉아 있던 한 커플을 잡았다. 그들은 카누라고 적힌 인스턴트 비닐 조각을 부들부들 떨며 뜯고 있었다. 마치 마약에서 절대 해방될 수 없는 희망 없는 무리들처럼 보였다. 그들의 손에는 1회용 종이컵과 반쯤 담긴 100도씨의 물, 카누 비닐에 포함된 원두 찌꺼기가 양손에 들려 있었다. 그 가공할 커피 원두는 도시에서 몰래 밀수한 것이라고 털어놨다.


나는 즉각적으로 그들을 체포했다. 그들은 현행범인 셈이었다. 그들에게는 법에 명시된 절차에 따라 처벌이 가해질 것이다. 그들에겐 미란다 고지 따위는 필요하지 않다. 권한을 행사하는 나는 초월적인 집행자일 뿐이다. 물론 나는 그들을 체포하고 당국에 넘기는 역할이 전부이므로 어떤 처벌이 그들의 신분을 박탈시킬지 예측할 수 없다. 내 역할에만 충실하면 된다. 법 조항과 더불어 그것에 관련된 처벌 관련 규정은 이 섬을 만든 설계자의 자의적인 해석에 달려 있으니까.


뭐 내가 벌을 받는 것도 아니고 집행하는 것도 아닌데, 아무렴 어떠랴. 나는 카누를 발바닥 밑으로 던져 버리고 구둣발로 비벼 으스려 뜨렸다. 원두가 까무러쳐지는 소리가 새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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