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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대생의 심야서재 Feb 15. 2022

내러티브 논픽션 노션 템플릿으로 글을 쉽게 쓰자

툴툴이 노션 템플릿 : <퓰리처 글쓰기 수업>  중에서

결코 화려할 수 없는 일상에 비친 찬란한 햇살, 눈발이 여러 개의 잎이 매달린 버드나무 위를 타고 흘러내린다. 나는 고개를 묻고 그 사이를 말없이 지나간다. 침묵과 방황, 왠지 서로 어울리지 않는 단어지만, 나는 무수하게 쌓인 먼지 같은 상념들과 눈앞을 스쳐 지나가는 포근한 눈송이에게 잠시 눈길을 건넨다.


설이 끝나고 일상으로 복귀하자마자 일들은 번호표도 없이 순서를 기다린다. 우선순위 매기는 일에 열중하다가도 그런 작업 따위가 어떤 체계성을 만들어갈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나는 아침에 목격한 익숙한 침묵으로 되돌아간다. 그럼에도 멈출 수는 없다. 앞으로 마치 골인 지점을 향해서 달려나가기라도 하는 분명한 목적을 가진 운동선수처럼 득달같이 경쟁에 뛰어들고 마는 것이다.


데일리 리포트를 다시 쓰기 시작했다. 늘 시작했다가 일주일을 넘기지 못하는 포기라는 딱지가 붙은 습관이다.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쓰고야 말겠다며, 탄탄한 노션 템플릿을 작성해놨으니 실행은 문제도 아니라고 자신감을 불태워본다. 사건과 장면, 그 속에서 빛을 내는 이야기들, 어쩌면 밋밋하고 평범하기만 한 인물, 그들이 주고받는 가라앉은 대화, 어제와 다른 오늘의 특이점, 삶이 가진 여러 모순, 거울 속의 내가 더 나를 닮은 것 같은 불길한 느낌, 죽음의 엄정한 의미, 영속적이지 못한 삶을 두고 내놓는 어설픈 푸념, 그 모든 어색한 만남과 관계들 속에서 자욱한 먼지처럼 흘러가는 익숙한 음악과 기묘한 조명.


어제와 다를 듯, 같을 듯 하루는 언제나 비슷하게 흘러간다. 밋밋한 평범성을 특이하게 관찰하는 나는 그 무난한 것들을 다르게 표현하려 애쓴다. 결국 표현의 문제라는 것, 연습의 부족이라는 것, 관찰의 한계라는 점을 인식한다.


그런 일상에도 가끔이지만 시련이 닥친다. 시련은 예상할 수 없는 지점에서 나타나야 정상이 아닌가. 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비상벨이 울렸다. 사무실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발생했다는, 하지만 그것은 그리 놀랄만한 이야기도 아니었다. 코로나는 이제 일상이 되어버린 걸까. 아무튼 옆자리에 앉은 동료가 코로나에 확진됐으니 나도 그 위험성에 그대로 노출됐다는 얘기가 된다.


나는 그 순간에도 글감을 생각했다. 밋밋한 평범성을 깨뜨려버릴 이야깃거리가 드디어 터져줬구나,라고 반색을 할 지경이 됐으니. 밋밋한 도입부를 넘어서는 예측 못할 갈등과 시련에 봉착할 만한 귀중한 아이템이 아닌가.


자가 진단 키트가 전 직원에게 전달됐다. 투명한 포장지에 담긴 면봉과, 진단 시약, 그 밖의 물품들이 코로나가 상상 밖의 일이 아님을 분명하게 인식시킨다. 나는 내 책상 앞에 앉아서 어떻게 이 키트를 사용해야 할 것인지, 30초가량 고민하다 굳은 결심이라도 한 사람처럼 비닐을 손톱 끝으로 뜯는다. 면봉 끝에 지문이 묻지 않도록 나름 세심하게 손가락 끝을 제어하며.


유튜브를 실행하고 사용법을 본다. 2배속, 혹은 건너뛰기 버튼을 연타하며 필요한 장면만 솎아내려 한다. 나는 조급하게 굴지만 그럼에도 침착을 유지하려 애쓴다. 건너편 책상에 앉은, 인도에서 건너온 외국인 친구는 울상이다. 코로나가 무서워서 울상일까, 콧속으로 찔러 넣게 될 면봉 끝의 날카로움이 두려워서 울상인 걸까. 어쩌면 둘 다 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면봉 끝을 세심하게 관찰하곤 그 기다란 것이 얼마나 깊이 박히게 될지, 뇌 속 어딘가를 후벼 파다 갈 길을 잃은 광경을 상상한다. 상상은 두려움을 가중시킨다. 보이지 않는 세계는 두려움을 더욱 강렬하게 결속시킨다. 그럼에도 내 손가락은 본능과 자유의지, 그 어느 것에도 예속 받지 않고 행동한다. 제멋대로 나아간다. 끝도 없이 심연의 침묵 속으로 창 끝을 찔러댄다.


면봉과 면봉 끝이 조우하는 세계, 끝과 끝이 대립하는 세계, 면봉은 어느새 자신의 자취를 잃는다. 마치 코와 면봉이 하나라도 된 듯이 모든 경계를 허물어뜨린다. 나는 비명을 지를 수도 없다. 숨과 숨이 드나드는 공간을 면봉이 가득 채운 것이다. 들숨을 몰아쉬며 면봉을 꺼낸다. 면봉이 쉭쉭 쇳소리를 내며 끓는다.


나는 그것을 진단 시약 통(?)에 담근다. 휘휘 휘저으며 마치 유리컵 밑바닥에 침전된 커피 잔해를 다시 섞는 그런 모양새로. 다섯 번을 휘저으라 했으니 나는 공대생답게 매뉴얼의 지침을 따른다. 그리고 유리 뚜껑을 닫고 다시 매뉴얼이 명령하는 대로 세 번 용액을 진단 키트에 떨군다. 물방울이 슬로비디오처럼 떨어진다. 용액과 진단 시약 사이, 약 0.5mm의 공간이 커다랗게 다가온다. 침을 꿀꺽 삼키고 나는 반응을 기다린다.


어떤 결과가 나오게 될까. 결과는 20%의 정확성을 갖는다고 하는데, 과연 나는 20%의 범주 안에서도 안전할 수 있을까. 두 줄이 나오게 된다면 나는 어떻게 될까. 바로 PCR 검사를 받으러 선별 진료소로 달려가야 할까. 진단 키트를 두 손에 꽉 쥐고 자랑이라도 하듯이 숙제 검사를 받으러 튀어 나가는 유년 시절의 겁 없는 나로 돌아가야 할까. 나는 속으로 그런 거친 상상, 확진자가 되어서 누리게 될지도 모르는 하찮은 지위 따리를 연속적으로 공상한다. 나는 환자가 되어 병상에 눕는 것이다. 그토록 두려워하던 죽음의 순간을 맞는 것이다. 그 순간에 내 눈앞에 나타나는 잔상 같은 사람은 누가 될까. 돌아가신 아버지일까, 아내일까, 아니면 그 밖의 사람들일까.


30분, 너무나 긴 시간이다. 얼마나 더 기다려야 나는 결과를 알아챌 수 있단 말인가. 진단 키트 전체가 붉게 물들어간다. 분명 뭔가가 잘못된 것이다. 한 줄이 나와야 정상인데 모든 면적에 붉은 것들이 범람을 한다. 완벽한 확진자라도 된 것일까. 내 운명은 이제 어떻게 되는 걸까. 낙관과 비관, 두 가지 안개가 눈앞에서 어지럽게 부서져 내린다.


나는 기다린다.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주위에선 음성이라는 안도의 한숨이 터져 나온다. 나는 아직이다. 나는 안도하기에 이르다. 하지만 나는 그래도 안도한다. 별다른 증상이 없지 않은가. 열도 없고 기침도 없고 목도 아프지 않다. 아무런 증상이 없으니 아마도 음성이 될 확률이 99%에 근접할 것이다. 숨을 죽이고 진단 키트의 새로운 탄생의 순간을 기다린다.


한 줄이다. 한 줄! 선명한 붉은색 한 줄. 전체를 감돌던 홍위병의 그늘이 사라지고 선명한 구획, 선명한 한 줄이 분명하게 나타났다. 혹시나 싶어 옆에 다른 줄이 나타난 건 아닌지 나는 눈을 크게 뜨고, 안경을 벗어던지고 녀석을 더 가까이에서 마치 키스라도 하듯이 나는 그것에게 눈을 가까이 들이댄다. 역시 한 줄이다. 코로나의 악몽에서 비로소 벗어난 것이다.


모두가 음성이라는 소식, 바이러스가 5시간 이면 사멸된다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전혀 위안이 되지 않지만, 진단 시약의 결과는 나에게 안심이라는 선물을 준다. 사건은 결국 마무리됐다. 나는 비극이 아닌 희극을 만들었다. 죽음이 다소 멀어진 기분, 삶엔 역시 절망보다는 희망이 더 많다는 사실에 만족을 얻는다.




나는 어제의 소란과 어쩌면 가혹했을지도 모르는 시련을 오늘 아침에서야 공상한다. 그리고 그 시련의 극복 수기를 노션 템플릿으로 만들어보리라고 결심한다. <퓰리처 글쓰기 수업>에서는 내러티브 포물선을 강조한다. 모든 스토리의 기본은 내러티브 포물선이다. 내러티브 포물선은 물론 삶을 그럴듯한 서사로 리드하지는 않는다. 다만 삶에서 밋밋한 것들을 거둬버리고 그 가운데에서 미세한 균열과 갈등 거리를 찾도록 돕는다. 의식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다르다. 나는 그래서 내러티브 포물선의 기울기를 인정한다. 그래프의 기울기를 생각하며 삶을 관찰하고 기록한다.




내러티브 포물선은 다섯 단계의 글쓰기 구조로 이어진다.


1. 도입부 - 시작, 설명 쓰기

2. 전개부 - 상승(갈등)

3. 발달부 - 위기. 고난, 시련

4. 해결 - 절정

5. 대단원 - 사건의 해결, 마무리, 주인공의 입장 정리


대부분의 소설은 내러티브 포물선 구조를 갖는다. 논픽션도 사실 내러티브 구조를 가져야 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나는 노션으로 내러티브 포물선 템플릿을 만들며 그 구조를 어떻게 더 그래픽적으로 꾸밀 수 있을까 생각했다. 그 과정 때문에 내 마음에선 갈등이 증폭됐지만, 그러한 마음의 변화는 글감이 되지 않는다. 너무 이야기가 작고 왜소하기 때문이다.




내러티브 포물선의 주인공은 글을 쓰는 바로 나, 자신이다. 내가 주인공이 되어 펼치는 이야기의 흐름이 내러티브 포물선이다. 하지만 삶은 내러티브 포물선의 공식처럼 평범함에서부터 시련과 갈등으로 증폭되다, 해결되는 국면을 맞지 않는다. 그런 일은 아무 때나 시도 때도 없이 일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기 때문에 그 이론에 주목해야 한다. 내러티브 포물선의 공식을 알고 삶을 대하는 것과 그렇지 않고 지나가 버리는 것은 완전하게 다르기 때문이다.


내러티브 포물선은 노션의 보드와 링크된 데이터베이스 두 개념으로 만들어졌다. 될 수 있으면 스마트폰이 아닌 PC로 템플릿을 이용했으면 한다. 보드에는 이미지가 그려져 있다. 바로 내러티브 포물선이다. 포물선을 보면서 내가 써야 될 글의 곡선을 가늠해 보자. 내가 써야 할 글은 어떤 갈등과 시련, 그리고 그것의 극복 과정이 포함되어 있는지 진지하게 관찰해 보자.


내러티브 포물선은 다섯 단계를 지닌다고 말했다. 보드에는 곡선에 따라 다섯 단계의 카드가 놓여 있다. 설명, 상승, 위기, 절정, 하강이 그것이다. 그 카드를 열고 개요를 먼저 적어본다. 개요가 정리되면 내용 항목에 글을 쓴다. 그렇게 다섯 가지의 카드에 개요와 글을 작성하도록 한다.



다섯 가지의 카드가 완성되면 아래쪽 '글 한꺼번에 보기'쪽으로 이동한다. 표 항목에 다섯 단계를 차례차례 보도록 필터를 걸어놨다. 글의 흐름을 확인하고 수정할 사항을 고친다. 그렇게 내러티브 포물선에 따라 글이 완성되면 텍스트를 복사해서 발행하면 된다. 블로그든, 브런치든, 그 어느 곳이든.


'툴 잘 쓰는 툴툴이'가 제공하는 노션 템플릿. 오늘은 책 <퓰리처 글쓰기 수업>에서 소개하는 '내러티브 포물선'을 노션 템플릿으로 제작했습니다. 더 자세한 내용이 궁금한 분들은 책을 참조하시면 되겠습니다.




과거에 만든 템플릿이 궁금한 분들은 아래 링크를 확인해주세요.


1. 노션으로 만든 똑똑한 가계부 템플릿 

2. 노션 템플릿으로 배우는 아주 작은 습관의 힘

3. 노션 템플릿으로 배우는 시작의 기술

4. 작심삼일 노션 템플릿

5. 노션 템플릿으로 배우는 일의 철학


템플릿의 공통적인 목적


1. 책의 내용을 복습하자. -> 재독

2. 읽고 나서 무엇이든 행동하자. -> 변화는 행동에서 시작한다.

3. 노션 템플릿으로 행동을 더 가치 있는 것으로, 유용한 것으로 만들자. -> 실용화 / 자동화

4. 책의 판매 촉진을 돕자. -> 홍보 (제가 출판사 입장은 아닙니다만, 어쨌든 출판 시장의 확대를 위해서...)

5. 노션을 더 세상에 더 알리자 -> 노션 작가이자 강사인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할 일.


노션 템플릿의 복제는 아래에서

https://wordmaster.notion.site/ce6502bb53504aefb795452e99755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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