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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대생의 심야서재 Nov 24. 2022

기다림의 순간들

《 나는 시간이 아주 많은 어른이 되고 싶었다 》 페터 빅셀

짧은 평(《나는 시간이 아주 많은 어른이 되고 싶었다》, 페터 빅셀, 푸른숲)


나는 시간이 아주 많은 남자다. 시간을 너무 많이 갖고 있어서 주체를 못 할 지경이다. 그러나 그 시간은 시간이 지날수록 그러니까 나이를 먹을수록 점점 더 늘어난다. 분명 점점 줄어들어야 하는데, 자꾸만 쌓여간다. 원칙에서 달아나는 느낌이랄까. 


그렇다면 나는 참 행복한 인간이 아닌가? 그런데 그 많은 시간들은 내가 소모한 것들이다. 이미 닳고 닳아빠진 헝겊 쪼가리 같은 시간들이다. 많다고 해서 딱히 부자 같은 게 된 것 같지도 않다. 말하자면 남은 시간이 아닌 이미 오래전에 써버린 시간이니, 시간이 많다고 해서 풍족한 기분은 아니라는 얘기.


나는 아주 많은 시간을 갖게 됐으므로 그만큼 시간에 대해 여유도 부려보고 시간을 겸허하게, 제3자의 시선으로 쳐다봤으면 좋겠는데, 시간을 대하는 나의 태도는 여전히 불안하고 여전히 안타깝고 여전히 조바심 나며, 무엇보다 여전히 건방지다. 가장 큰 문제는 그래 바로 시간을 대하는 건방진 습관, 태도다. 


내가 소화시킨 시간들은 나를 더 큰 어른이 된 것처럼 착각하게 만든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현명하지 못하고 어른답지 못한 그런 철없는 어른처럼만 보이는 아이이며, 더 많은 시간을 욕망하는 겉모습만 어른일 뿐이다.


그래서 나는 이 책에 본능적으로 끌렸다. 도서관에서 페터 빅셀의 책을 찾다, 우연인 것처럼 집어 들긴 했어도 나는 이 과정을 시간의 우연한 설계라고 주장하고 싶다.


《나는 시간이 아주 많은 어른이 되고 싶었다》의 저자인 페터 빅셀은 충분히 많은 시간을 가진 어른이 됐을까? 음, 이 책을 읽어본 바로는 그는 어른임에는 분명하나 생각은 여전히 젊다는 것이다. 시간이 많은 어른, 자격을 갖추었음에도 겸손하기만 한 어른, 시간을 많이 가진 시간 부자 어른, 이야기를 주체할 수 없어 우리에게 친절하게 그 이야기를 맛깔나게 들려주는 이야기 마술사 같은 어른.


《나는 시간이 아주 많은 어른이 되고 싶었다》는 시간, 그러니까 시간의 작용이나 원리와 같은 내용을 다루진 않는다. 단지 이 책을 읽으면 시간이 진정된다는 느낌은 받을 수 있다. 산문을 대할 때 느끼는 특유의 편안함이라는 정서가 있는데, 이 책은 다른 어떤 흔한 산문보다 더 일상을 섬세하게 관찰하도록 이끈다. 바로 그 점 덕분에 마음이 푸근하게 안정되는 것이다. 작가는 소설가답게 이야기꾼이다. 우리는 그의 이야기를 접하며 일상을 더 특별한 것으로 탈바꿈시킨다. 책을 읽는 능동적 행위를 통해서.


화려하지는 않지만 작가의 연마 과정 덕분에 뭉근하게 오래간다는 점이 바로 이 책이 가진 시간의 진정한 의미가 아닐까. 


종합 책식지수 : 4.55

책 속의 한 문장


기다리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기다리기를 싫어하면서도 우리는 왜 그렇게 열심히 기다릴까? 아마 기다림을 배웠기 때문일 것이다. 스물한 밤만 더 자면 오는 생일 기다리기, 크리스마스 기다리기, 그리고 드디어 12월 24일 당일이 되면, 이제 선물을 뜯어도 된다는 허락을 기다리는 그 긴 시간. 유치원 입학 기다리기, 학교 입학 기다리기, 잉크를 사용해도 좋다는 허락 기다리기, 열두 살이 되기를, 열여섯 살, 열여덟 살, 스무 살이 되기를 기다리고 또 기다리기. 그리고 마침내 아흔다섯 살이 되기를 기다리는 기나긴 기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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