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터 프랭클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
나는 최근에 소설로 읽었던 <마션>이 떠올랐다. 주인공인 '와트니'는 화성에서 임무를 수행하다, 불의의 사고로 인하여 홀로 화성에 남겨지는 고립무원의 위기에 처하게 된다. 그가 화성에서 구조될 수 있을 때까지, 남아 있는 식량만으로는 도저히 버틸 수 없는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는 낙담하지 않고 실망하지도 않았으며 터벅터벅 화성의 걸음을 이어나갔다.
'와트니'는 최악의 상황에서도 용기를 잃지 않고 그 어떤 위기도 견뎌 내겠다는 강한 삶의 의지를 불태웠다. 만약 내가 '와트니'였다면, 내가 아우슈비츠의 '프랭클'이었다면, 분명 삶의 의미를 잃어버리고 죽음의 신을 기다리는 산 송장이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엄슴해왔다.
수용소의 삶
나는 군 시절에 겪은 가혹했던 시간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92년, 강원도 춘천의 훈련소 그곳은 나에게 '아우슈비츠'이상의 극한의 공포를 안겼던 뜨거운 분노가 치밀었던 곳이다. 젊은 우리들은 훈련소에서 인간이 아닌 하찮은 통나무 같은 취급을 받았다. 우린 제대로 잠을 잘 수 없었고, 먹지도 못했으며, 몇 주동안 씻지도 못했고, 제대로 숨조차 쉴 수 없는 고통을 겪었다. 조교들은 아우슈비츠의 '감시병'이었으며, 몇몇 동료들은 아우슈비츠의 '카포'였다.
또한 아우슈비츠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동료를 식별할 수 있었던 유일한 수단은 서로의 '식별번호' 뿐이었다.
'676번 훈련병 OOO!' 676번 - 이 번호를 아직까지 기억하다니.. - 은 나를 식별하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내가 훈련소에서 개죽음을 맞을지도 모른다는 극도의 공포심은, 물론 아우슈비츠의 그것보다는 못하겠지만, 두려움은 분명 아우슈비츠에 비견될만한 '죽음의 공포' 그 자체였다. 나는 아직도 꿈속에서 그때의 공포가 되살아나는 망령을 경험한다.
그가 책을 쓰게 된 동기
수감자의 다양한 심리 상태
수용소에서의 작은 행복
자유를 향한 의지
인생은 치과의사 앞에 있는 것과 같다. 그 앞에 앉을 때마다 최악의 통증이 곧 찾아올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러다 보면 어느 새 통증이 끝나 있는 것이다. - 비스마르크
나를 죽이지 못한 것은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들 것이다. - 니체
로고테라피
- 환자의 미래에 초점을 맞춘다.
- 악순환을 형성시키는 송환 기재를 통하여 고통을 약화시킨다.
- 환자 스스로 삶의 의미를 깨우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