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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대생의 심야서재 Oct 09. 2016

서글픈 가을의 어느 하루

정재형 - 오솔길

가을밤은 서글픕니다. 
누군가의 이름이 지나가 버리는 듯 
귓불을 살짝 툭 치며 기억을 떨구는 듯 
그렇게 가벼이 잊혀 가는 유난스러운 일상이 서글퍼집니다. 
슬피 낙하하는 낙엽의 풍광(風光)이 초라해져서 더욱 서글퍼집니다. 

메마른 감정을 드러낼 수밖에 없는 나약한 영혼이기에 이토록 눈물겨운 걸까요? 
겨우 억누르던 외로움에게 반기조차 들 수 없어서 얼굴이 붉어지는 걸까요? 
쓸쓸함에 항복할 수밖에 없어서 외딴곳에 숨고 싶어지는 걸까요? 

가을은 고독한 감정들이 소복이 쌓여가면서도, 
시작의 들뜬 기운이 동시에 피어나는 야릇한 계절이기도 합니다. 
고독함에 깊이 젖어들수록, 본능 같은 생(生)의 의욕이 일렁이기도 합니다. 

사소한 이별과 만남이 거듭하는 하루였습니다. 
아침엔 '맑은 하루'가 찾아왔고, 저녁 무렵 달갑지 않은 '이른 어둠'이 밝음을 삼켰습니다. 
아침에는 '찰나의 여유'가 찾아왔고 저녁에는 '사람과의 갈등'이 분쟁으로 치달았습니다. 

묶여 있는 일상에서 

잠시 괴로운 싸움을 피해 세상 밖으로 탈출하고 싶었지만,
잿빛의 건축물은 우뚝 솟은 위용으로 주위를 에워쌌습니다.
옴짝달싹 못하도록 사람의 출입을 가로막은 최첨단 시스템은
시간과 기억을 앗아갔습니다.

사람은 있었으나 대화는 없었습니다.

누군가를 이해시킨다는 것은 지혜를 필요로 합니다.
깊어가는 가을은 상념에 사로잡히도록 망각을 선물했지만,
논리적인 사고마저 퇴보시켰습니다. 

대화는 이내 맥이 끊어졌습니다.

가을과 현실의 벌어진 간극에서 방황을 거듭하고 있는
고개 숙인, 표정을 떨군 남자가 보였습니다.
타자(他者)에게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늘어놓아야 하는 현실이 답답했습니다.
실적에 대한 무언의 압박은 가을을 잊게 했습니다.
가을을 향한 순수함은 보안 시스템을 뚫을 수 없었고,
엑스레이 검색대 속에서 추남(秋男)의 치부는 강제로 드러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가을과 아무 상관없는 뼈저린 현실이 나타났습니다.
어울리지 않는 상대와의 소통은 가을을 외딴곳으로 달아나게 했습니다.
현실은 질척한 땅바닥을 헤엄치듯 어두운 일면을 세상에 노출했습니다.
전쟁 같은 협상은 진전, 추락, 회복으로 반복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위치에서 할 이야기들을 주장하고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 않는 모순된 자기주장이 혼재되어 있을 뿐이었습니다.
저 역시 그들과는 다를 바 없는 보통의 수준이었습니다.
살기 위해서 본능을 삼키려는 비겁한 남자의 체념만 가득했습니다.

스쳐 지나가는 인연의 바짓가랑이에라도 매달리고 싶은 것이,
무심한 남자가 견디는 사소한 방법이었습니다.
가을은 늘 새삼스럽습니다.
망각을 밥 먹듯이 반복해서일까요?
세월의 두툼한 옷을 자주 갈아입어서 일까요?
가을이 무르익어가는 촉촉한 단비의 속삭임 속에서도 밤은 하릴없이 깊어갑니다.

가을을 타고 어디론가 떠나고 싶습니다.
쉴 틈도 없이 사는 삶의 끝에서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요?
대답은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바쁘게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누군가의 뒤치다꺼리에 바쁜 삶은 온전한 자신의 것이 아닙니다.
일상은 피곤한 피조물로 창조되었고,
고즈넉한 장소로 떠나고 싶은 욕망은 더욱 맹렬히 분출합니다.

더운 여름을 힘겹게 넘기고 난 후에 찾아온 보상은 늘어난 업무였습니다.
일상은 무념무상의 휴식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을 기대했건만,
가랑비가 흩뿌리는 오후가 찾아왔습니다.
바람은 서늘했고, 가랑비에 젖은 눈썹은 시야를 어지럽혔습니다.

일에 지친 몸뚱이는 갈 곳 없이 길모퉁이에 서있었습니다.
떠나고 싶은 감정이 당연한 수순처럼 옆구리를 찔렀습니다.

기복이 없고 평탄한 하루는 그저 지루한 것일까요?
삶의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은 우리를 더 탄탄하게 다져줄까요?

혼자서 오솔길을 찾아 떠나고 싶은 밤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_f5TNGC2qk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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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 & 본문 사진 출처 : https://www.flickr.com/photos/mathias764/62946615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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