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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대생의 심야서재 Aug 31. 2018

혹시 녹음한 거 들으세요?

그 남자의 녹취

 가끔은 심각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웃음이 터져버리고 말아 그것을 주체하지 못할 때가 있다. 한 번 웃기 시작하면 튀어나오는 말마다 별다른 의미가 없음에도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는 것이다. “현웃 터진다’ 또는 ‘빵 터진다”라고도 하는데, 그날의 분위기가 딱 그랬다.


 특허 안건을 놓고 특허 사무소 사무장과 열띤 토론을 펼치고 있었다. 내놓은 아이디어가 실제 사업화가 가능한지, 또 초안으로 작성한 세부 권리사항들이 사업화에 도움이 되는지, 그런 내용을 놓고 갑론을박을 펼치고 있었다. “네가 잘 났냐? 내가 잘 났냐?” 이런 말 따위를 자랑 삼아 늘어놓고 있었다고나 할까?


 사무장은 우리와 회의를 할 때마다 늘 녹음기를 켜 두었다. 그날도 사무장은, “잠시만요. 지금부터 녹취를 시작하겠습니다.” 라고 말하며 끓는 분위기를 식히려 들었다. 물론, 오고 가는 이야기를 모두 수기로 쓰는 건 무리가 있을 테니까, 하나라도 놓치면 안되니까, 그의 행동이 그리 이상하지는 않았지만 한 가지 의문이 속에서 들썩거렸다.


 늘 궁금했던 것은 나중에 녹음 본을 과연 들을까? 라는 의문이었다. 과연 사무장은 그토록 열심히 일을 하는 사람인가? 내가 보기엔 술에 더 열심인 것 같은데 말이지. 야근을 불사할 정도로 법무법인에서 충신이라는 타이틀을 획득한 사람인가? 내가 보기엔 맨날 농땡이 치는 거 같은데 말이지. 회의 도중에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나도 의문이긴 했지만, 궁금한 것은 도저히 참지 못하는 사람인지라, 결국 화제의 방향을 갑자기 바꾸고 말았다.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요?”,

“아…… 네 궁금한 게 무엇인지 말입니다?”

“지금 녹음하는 거 혹시 나중에 들으세요?”

“아…… 물론이죠 사무실에 복귀하면 꼭 듣곤 하죠” 식은 땀을 닦듯이…… 수상한 척을 하며……

“솔직히 말해봐요. 그거 잘 안 듣죠? 맞죠? 그냥 열심히 일하는 사람 코스프레 하는 거 아니에요? (웃음)”

“이사님. 저 마음에 안 들죠? 저한테 왜 그러세요 (엉엉)”

 

 나도 모르게 이런 말이 튀어나왔다. 내가 생각해도 엉뚱한 질문이었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궁금한 건 참을 수가 없는데. 생뚱맞은 질문의 힘이런가. 심각한 분위기를 다소 누그러 뜨리려는 의도가 먹혔던 걸까? 소란스럽던 좌중이 찬 물을 끼얹은 것처럼 고요해지더니 누군가 킥킥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서로의 눈치를 살피던 사람들은 혼자 중얼중얼거리며 주문을 외우다, 너나 할 것 없이 방언을 터뜨렸다. 여기서 빵, 저기서 빵, 파도치듯 밀려오는 웃음을 참는다는 건 불가능했다. "갑자기 빵 먹고 싶더라" 풍선이 하나 터지고 잠잠할라치면 또 다른 게 하나 터지고, 무서웠다. 끔찍했다, 웃음이란게 그토록 위력이 대단하다는 것을, 속으로 아무리 애국가를 제창해도 터진 분위기를 잠재울 수가 없다는것을.


 차라리 실컷 웃어버리자며 우리는 꽉 쥐고 있는 걸 놓아버렸다. 그깟 특허 권리 따위가 밥 먹여주냐고, 비즈니스 따위는 잠시 개나 줘버리라고, 호탕하게, 손뼉이라도 크게 치며 웃는 게 더 건강한 일이라고 진지한 일이란 잊어버리기로 했다. 우리 참 바보 같았다. 아니, 그순간 바보가 된 것이 분명했다. 아니면 원래 바보였을지도.


 빡빡한 일상이 지겹다. 단조로운 하루가 반복되는 것도 지루하다. 월급에 저당 잡힌 직장인이라지만, 가끔은 이유 없이 브레이크를 걸고 싶은 순간도 있지 않은가. 하찮은 일에서 웃을 거리를 찾아보고 싶은 것이 내 마음이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스트레스 때문에 미쳐버릴 것 같으니깐, 미친놈처럼 실컷 방언이라도 터뜨리고 나면 속이 시원해지니깐. 쌓여있는 울화를 게우는 기분이 드니깐.

 

오늘은 또 어디서 웃음거리를 찾아볼까.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는 하릴없는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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