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공대생의 심야서재 Jul 03. 2019

백수의 아무말 대잔치

아메리카노와 녀석의 희망

걸었다. 멈출 수 없기에 걸었다. 나에겐 거리를 누빌 자유가 있었다. 가끔 도심 한가운데를 서성이다 하늘을 무심히 바라보면, 구름에 반사된 내 존재가 지글거리는 아스팔트에 쩍 하고 들러붙었다 떨어지기를 반복했다. 더위란 건 내가 살아있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는 것처럼 어깨 위에 앉아 있었다. 나는 가끔 자연의 규칙적인 현상과 내 감정의 불규칙적인 패턴에 유난을 떨며 의미를 부여하려 애썼지만, 한낮의 뜨거운 햇살과 달콤한 마카롱의 조합처럼 뜬금없다는 결론을 내리기도 했다.


교대 부근의 커피빈을 찾았다. 퇴사 후 오랜만에 녀석을 커피 전문점에서 만난 것이다. 어떤 화제든 부담 없이 실컷 떠들 수 있는 공간에서 우린 마법을 부리고 싶었다. 그 소망을 담은 마법이란, 퇴사 후에도 삶을 꾸려야 하는 인간과 어딘 가에 묶인 삶을 살아야 하는 인간의 공통분모를 찾는 일이었는데, 시간이 흐르다 보면 이야기가 자꾸 엉뚱한 방향으로 빠지고 마는 것이었다. 


"넌 꼭 성공할 거야. 네가 벌인 일만큼 내년엔 돈을 쓸어 담을 수 있을 거야." 그래 우린 그곳에서 차가운 커피 대신에 돈으로 목을 축였고 직장의 불만으로 허기까지 달래야 했다. 녀석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나는 성공이라도 거둔 작가처럼 들뜬 나머지, 희망에 취해버리고 마는 것이었다. 희망이라는 건 뜬금없는 현상이라고, 나는 혼잣말로 푸념을 늘어놓으며 녀석의 사기를 꺾었지만.


아메리카노는 옆에서 쓸쓸하게 늘어져 있었다. 난 물과 희석된 아메리카노를 식도로 흘려보내고 다시 뜨거운 일상으로 돌아와야 했다. 이번에야 말로, 무언가 의미 있는 일을 도모하자며 의기투합해야 한다고 다짐을 하던 녀석과 나는 서로의 삶을 놓고 마치 감상회를 여는 사람처럼 평을 주고받았다. 하지만, 나는 월, 수, 금 3일을 다시 묶인 삶을 살아야 하는 인생이었다. 그래 2일과 주말이 있으니, 게다가 나는 무엇이든 미치기만 하면 해내는 사람이니, 문제 될 건 없었다. 




https://brunch.co.kr/@futurewave/760


매거진의 이전글 백수의 아무말 대잔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