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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가 철학과 삶의 태도

바가바드 기타에서 배우는 삶의 태도

by 지안

우리는 흔히 행복을 외부에서 찾으려 한다. 더 좋은 직업, 더 나은 조건, 더 많은 성취, 더 많은 소유가 나를 만족시켜 줄 거라고 믿는다. 하지만 바가바드 기타는 말한다. ‘진정한 평온은 외부 환경이 아니라, 내 마음속에서 비롯된다’고.




1. 카르마 요가(Karma Yoga)

: 행위에 집중하고 결과를 내려놓기


요가 수련을 하다 보면, 자연스레 한 가지 질문을 만나게 된다.

“내가 지금 무엇을 위해 이걸 하고 있지?”


더 유연해지고 싶어서?

더 건강해지고 싶어서?

남들보다 더 나아지고 싶어서?


물론 그 모든 이유는 나름의 동기가 된다.

하지만 『바가바드 기타』는 이런 질문에 대해 색다른 시선을 제시한다.

요가는 ‘무엇을 얻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해야 할 바를 행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고.



결과가 아닌, 행위 자체에 집중하기


『바가바드 기타』는 이렇게 말한다.


“그대의 특권은 바로 행위에 있는 것이지, 결코 결과에 있는 것이 아니라오.

어느 때건 행위의 결과가 그 행위의 원인이 되어서는 아니 되오.

그대는 무행위에 대해서도 집착하지 마시오.”


즉, 우리는 오직 행위 자체에 충실할 책임만을 지며,

결과는 하늘(또는 신)의 손에 맡겨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카르마 요가(Karma Yoga), 즉 행위의 요가다.


카르마 요가는 ‘아무렇게나 살아도 된다’는 허무주의가 아니다.

오히려, 최선을 다하되 그에 대한 집착은 놓아야 한다는 태도다.

더 정직하게 말하자면, 이 가르침은 우리를 더 철저하게 현재로 데려온다.

‘결과’라는 불확실한 미래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에 몰입하게 한다.



결과에 집착할수록 우리는 불행해진다


요가 수련을 예로 들어보자.

“이 동작을 완벽하게 해야 해.”

“나는 왜 아직도 유연하지 않을까?”

“저 사람처럼 멋지게 해야 하는데!”


이런 생각들은 결국 ‘결과’에 대한 집착이다.

그런 집착이 쌓일수록 수련은 즐거움에서 멀어지고,

내 몸의 진짜 소리에 귀 기울이기보다 외적인 기준에 휘둘리게 된다.

삶도 다르지 않다. 우리는 목표를 향해 열심히 나아가지만,

그 결과가 뜻대로 되지 않으면 실망하고 좌절한다. 그러나 카르마 요가는 묻는다.


“너의 역할은 최선을 다하는 것이지, 결과를 통제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 말은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 외부의 조건이나 평가가 아니라,

내면의 중심을 기준 삼아 살아가도록 이끈다.

환경이 어떻게 변하든 흔들리지 않고,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에 진심으로 임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카르마 요가가 추구하는 삶의 방식이다.



몰입이 가져오는 자유


우리는 흔히 이렇게 생각한다.

“목표를 이루면, 보상을 받으면, 원하는 결과를 얻으면 행복해질 거야.”

하지만 정작 목표를 이루고 나면 또 다른 목표가 생기고,

그 만족은 오래가지 않는다.

성취는 중요하지만,

성취만을 쫓다 보면 우리는 끊임없는 갈망과 부족함 속에 놓이게 된다.

카르마 요가는 말한다.


“진정한 자유는 결과가 아니라, 과정 속에서 온다.”


과정 자체를 온전히 살아내는 사람은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크게 흔들리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는 이미 ‘지금 이 순간’ 안에서 충분히 충만하기 때문이다.



삶 속에서 실천하는 카르마 요가


카르마 요가는 철학이나 사변적 사유에 머무르지 않는다.

우리의 일상에서 얼마든지 실천 가능한 삶의 태도다.


일을 할 때

“이 프로젝트가 성공해야 해” 대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자”라고 생각해 본다.


요가 수련을 할 때

“이 동작을 완벽하게 해야 해”라는 생각 대신

지금 이 호흡, 이 움직임에 집중해 본다.


인간관계에서도

“내가 이렇게 했으니, 그 사람도 나에게 잘해줘야 해”라는 기대보다

“이 마음을 전할 수 있어 기쁘다”는 감정에 머물러본다.


하루를 마무리할 때

“오늘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아”가 아니라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했다”는 자기 수용으로 하루를 감싸본다.



진짜 평온은 내 안에 있다


행동을 할 때,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자체가 삶을 살아가는 방식이라는 마음으로 임할 때

우리는 자유로워지고, 평온해진다.


카르마 요가는 결과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

‘존재 중심의 삶’으로 나아가는 가르침이다.

그리고 이 삶의 태도는 요가 매트 위에서,

또는 삶이라는 더 넓은 무대에서 우리를 더 단단하고 깊은 사람으로 만들어준다.


오늘 하루, 나의 행위에 집중하고 결과를 내려놓는 연습을 해보자.

그 순간, 마음은 훨씬 가벼워지고, 더 넓고 고요해질 것이다.




2. 박티 요가(Bhakti Yoga)

: 사랑과 헌신의 길


삶을 살아가다 보면 우리는 사랑을 주고받는다.

사랑하는 가족, 친구, 연인, 혹은 내가 애정을 쏟는 일, 예술, 자연까지.

그 대상은 다양하지만, 그 마음의 본질은 하나다.

‘마음 깊이 연결되고 싶은 갈망’이다.


그러나 사랑은 종종 기대가 되고, 그 기대는 실망으로 바뀌기도 한다.

“내가 이렇게 했는데 왜 몰라줄까?”

“이만큼 했으면 그만큼 돌아와야 하지 않을까?”

이런 감정들이 쌓이면 사랑은 점차 무거워지고, 고단해진다.


이때 『바가바드 기타』는 우리에게 또 다른 길을 제시한다.

그것은 바로 박티 요가(Bhakti Yoga), 사랑과 헌신의 요가다.



사랑이 헌신이 될 때, 우리는 자유로워진다


박티(Bhakti)란 단순한 애정이 아니다.

그것은 경외심과 감사, 그리고 조건 없는 사랑이다.

그 대상이 신이든, 우주든, 삶 그 자체든.

박티 요가는 마음을 온전히 내어주고,

무엇과도 바꾸지 않을 정성을 바치는 길이다.


『바가바드 기타』에서 크리슈나는 아르주나에게 말한다.


“순수한 사랑과 헌신으로 나를 따르는 자에게 나는 길을 열어주리라.”


이는 특정 신에 대한 믿음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삶 전체를 신성하게 대하고, 매 순간을 사랑으로 채우는 실천이 바로 박티 요가다.

그리고 그 사랑은 타인을 향한 것일 수도 있고,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을 향한 것일 수도 있다.



해야 하니까가 아니라, 하고 싶어서


우리는 하루에도 수많은 일을 반복한다.

출근하고, 설거지하고, 아이를 돌보고, 문자를 보내고…

이 모든 일이 의무처럼 느껴질 때, 삶은 버거워진다.


그러나 똑같은 일을 하더라도

“이 일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 시간을 조금 더 따뜻하게 만들 수 있다면”

이런 마음으로 임하면, 그 순간은 헌신이 된다.


박티 요가는 말한다.

“해야 하니까”에서 “하고 싶어서”로 바꿔 보라.


같은 일도, 마음을 담는 순간 완전히 다른 경험이 된다.

사랑은 그 일을 더 의미 있게 만들고,

그 의미는 다시 우리 삶을 깊고 넉넉하게 한다.



기대가 아닌 사랑으로 살아가기


박티 요가는 우리에게 이렇게 속삭인다.

“사랑은 거래가 아니다.”


“내가 이렇게 했는데 왜 알아주지 않을까?”

“왜 내 진심이 전달되지 않을까?”


이런 마음들은 누구에게나 익숙하다.

하지만 진정한 사랑은 상대의 반응을 조건으로 삼지 않는다.


기대하지 않는다는 것이 무관심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오히려 자유롭게 주는 사랑, 내 마음에 충실한 사랑이다.

박티 요가는 우리가 타인에게 준 마음 때문에 다치지 않도록 도와준다.

그리고 그 헌신은 결국 나를 더 가볍고 단단하게 만든다.



일상 속에서 실천하는 박티 요가


박티 요가는 특별한 의식이나 종교적인 수행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삶의 아주 작은 순간들 안에서 실천할 수 있는 요가다.

매일 가족을 위해 차를 끓이는 순간,

그 시간을 귀찮은 일 대신 사랑의 의식으로 바꿔본다.


친구에게 안부를 전할 때,

답장이 올까 걱정하기보다 그 마음을 전하는 것 자체에 집중한다.


아침 햇살을 바라보며,

오늘 하루를 맞이할 수 있음에 조용히 감사한다.


이처럼 박티 요가는 삶 전체를 사랑으로 물들이는 길이다.

그 길 위에서 우리는 타인과 연결되고,

무엇보다도 나 자신과 더 깊이 연결된다.



감사는 박티의 또 다른 이름이다


박티 요가의 또 다른 실천은 감사(Gratitude)다.

우리는 흔히 원하는 것을 이뤄야 감사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박티 요가는 이미 가지고 있는 것에서 만족과 감사를 발견하라고 말한다.


오늘 하루, 작은 기쁨들을 떠올려보자.


오늘 아침, 따뜻한 커피 한 잔

힘들었지만 잘 견뎌준 나의 몸

길에서 스친 누군가의 미소


그 작은 순간들이 모이면

우리는 삶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사랑으로, 지금 이 순간을 채워보자


박티 요가는 결국 삶의 태도다.

사랑으로 하고, 사랑으로 말하고, 사랑으로 존재하는 태도.


우리는 매일 수많은 감정에 휘둘리며 살아간다.

실망, 기대, 질투, 외로움, 후회…


그러나 그 모든 감정 위에,

조용히 피어오르는 ‘사랑의 마음’이 있다면—

우리는 더 단단해지고, 더 부드러워진다.


박티 요가는 우리 마음을 다치게 하는 집착을 놓고,

그 자리에 신뢰와 온기를 채워 넣는 길이다.


오늘 하루, 삶의 어느 한순간이라도 사랑으로 바라보자.

차 한 잔을 준비하는 시간, 누군가에게 건네는 말 한마디,

지나가는 바람에 잠깐 멈춰 서는 그 순간에도.

그 마음을 담는 연습을 해보자.


그것이 바로, 일상에서 실천하는 박티 요가다.




3. 갸나 요가(Jnana Yoga)

: 지혜를 통해 나를 자유롭게 하다


살다 보면 우리는 문득 멈춰 서서 자신에게 묻는다.


“나는 누구인가?”

“왜 살아야 하는가?”

“행복은 어디에 있는가?”


이 질문들은 단순한 지적 호기심이 아니다.

그것은 삶의 본질에 닿고 싶은 영혼의 움직임이다.

그리고 요가에서 그 답을 찾는 길 중 하나가 바로 지혜의 요가(Jnana Yoga)이다.



나는 누구인가. 겉모습 너머의 자아를 향해


Jnana(지냐나)는 산스크리트어로 ‘앎’, ‘지혜’,

더 구체적으로는 참된 자아에 대한 통찰을 의미한다.


우리는 흔히 ‘나’를 이렇게 정의한다.


“나는 학생이다.”

“나는 직장인이다.”

“나는 엄마이고, 친구이고, 사회 속의 누구이다.”


하지만 『바가바드 기타』는 그 정의를 넘어서라고 말한다.


“지혜로운 자는 육체가 아니라, 불멸의 자아를 본다.

죽지도 않고 태어나지도 않는 자아는 영원하며, 무한하며, 변하지 않는다.”


지혜의 요가는 우리에게 가르친다.

우리는 역할이 아니며, 변화하는 감정도 아니고, 외부의 평가도 아니다.

그 모든 것을 관찰할 수 있는 존재, 즉 ‘의식 그 자체’, ‘순수한 존재’가 바로 참된 나라고.



무지에서 자유로. 진짜 앎이란 무엇인가?


지혜는 단지 정보를 많이 아는 것이 아니다.

지혜는, 본질을 꿰뚫는 앎이다.


오늘날 우리는 넘치는 정보 속에 살고 있다.

수많은 지식과 데이터, 트렌드와 기술이 넘쳐난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묻지 않는다.


나는 왜 이 길을 선택했는가?

나는 지금 진짜 원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

나는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는가?


이 질문들에 답하려는 용기,

그것이 지혜의 시작이며, 지혜의 요가가 가는 길이다.



삶을 바라보는 눈을 바꾸는 힘


지혜의 요가는 단지 명상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의 삶을 통째로 바꾸는 시선의 전환이다.


타인의 말에 휘둘릴 때,

“나는 그 말이 아니라, 나의 진실을 믿는다”라고 다짐한다.


불안과 비교에 빠질 때,

“나는 본래의 존재로서 이미 충분하다”는 사실을 상기한다.


실수와 실패 앞에서 주눅 들 때,

“모든 것은 흘러가고, 나는 계속 성장하고 있다”라고 되뇐다.


이처럼 지혜는 세상을 보는 눈을 바꾸고,

그 눈으로 다시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거울을 닦는 연습이다.



지혜는 자유다 – 고요한 중심을 되찾는 길


『바가바드 기타』는 말한다.


“지혜는 가장 순수하고, 변하지 않으며,

내면에서 직접 깨달을 수 있는 것이다.

지혜를 통해 인간은 최상의 기쁨과 자유를 얻게 된다.”


이 말은 곧 이렇게 해석될 수 있다.

진정한 자유란 외부의 조건으로부터가 아니라,

내 안의 ‘앎’에서 비롯된다는 것.


사람들의 기대, 사회의 기준, 미래에 대한 불안이 나를 흔들 때,

지혜의 요가는 속삭인다.


“그 모든 것은 지나간다.

그러나 너는 그 모든 것을 관찰할 수 있는 존재이다.”


그 순간 우리는 중심을 되찾는다.

지혜는 그 중심을 지키는 힘이다.



지혜의 요가,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까?


지혜의 요가는 깊은 사유와 성찰을 필요로 하지만,

일상의 질문들로부터 시작할 수 있다.


오늘 하루, 내가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것은 무엇이었는가?

누군가의 평가에 마음이 흔들렸다면, 왜 그랬을까?

지금 이 삶에서, 나는 어떤 존재로 살아가고 싶은가?


이 질문들은 우리의 앎을 삶으로 바꾸는 실천이 된다.


또한 요가 수련에서도 지혜의 요가는 함께 한다.


아사나(자세)에 집착하지 않고,

내 몸이 보내는 신호를 지혜롭게 받아들이기.

잘하고 싶은 욕심이 들 때,

“지금 이 상태도 괜찮아”라고 말해주기.


이처럼 지혜는 삶의 순간순간,

깨어있고 온전히 나를 마주하는 용기에서 자란다.



지혜는 나를 다시 만나는 길이다


우리는 누구나 흔들리고 방황한다.

하지만 그 안에서도 스스로를 정직하게 마주할 수 있다면

우리는 늘 자신의 중심으로 돌아갈 수 있는 힘을 가진 존재다.


지혜의 요가는 우리를 스스로에게 데려다주는 길이다.

그 길 위에서 우리는 더 이상 불안하지 않고,

더 이상 부족하지 않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이미 나 자신이다.

그 사실을 기억하고 살아내는 것.

그것이 지혜의 요가다.



4. 다르마(Dharma)

: 나만의 길 찾기


살다 보면 우리는 중요한 갈림길에 선다.

진로를 고민하고, 관계를 선택하고, 삶의 방향을 설정할 때마다 질문이 떠오른다.


“지금 내가 가는 이 길이, 정말 나에게 맞는 길일까?”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은 쉽지 않다.

그래서 『바가바드 기타』는 우리에게 또 하나의 요가, 다르마(Dharma)를 이야기한다.

다르마는 ‘삶의 올바른 길’, ‘자기 본분을 살아내는 길’이다.



다르마는 나만의 길이다


다르마는 단순히 도덕적 규범이나 종교적 의무가 아니다.

그것은 나라는 존재가 이 세상에서 맡은 고유한 역할,

지금 이 삶에서 내가 충실히 살아내야 할 방향성이다.


『바가바드 기타』에서는 크리슈나가 전쟁을 앞두고 혼란스러워하는 아르주나에게 이렇게 말한다.


“자신의 다르마를 따르는 것이야말로 가장 숭고한 길이다.

남의 다르마를 흉내 내는 것보다,

자기 다르마를 불완전하게라도 실천하는 것이 낫다.”


다르마는 남들이 정해준 길이 아니라,

내가 깊이 내면에서 느끼는 진실에서 비롯된 길이다.

그래서 때로는 더 어렵고, 더 고요하게 들여다봐야 한다.



다르마는 항상 쉽지만은 않다


다르마는 때로 불편한 선택이기도 하다.

안정적인 길을 포기하고 나만의 길을 가야 할 때,

누군가를 위해 내 욕심을 내려놓아야 할 때,

혹은 잠시 멈추고 성찰해야 할 때

다르마는 우리에게 더 용기 있는 선택을 요구한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우리는 진짜 나의 길에 서게 된다.


요가는 말한다.


“네가 선택한 그 길이 아니라, 네가 진심으로 살아내는 길이 진짜 너의 다르마다.”



다르마는 변할 수 있다


다르마는 고정된 것이 아니다.

삶의 시기와 상황에 따라, 나의 다르마도 변화한다.


어릴 땐 배우는 것이 다르마일 수 있고,

어느 시기에는 가르치고 돌보는 것이 다르마가 될 수 있다.

때로는 쉬는 것이, 나를 돌보는 것이, 잠시 멀어지는 것이 다르마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순간 내가 해야 할 바가 무엇인지 알고,

그것에 충실하려는 마음이다.



요가 매트 위의 다르마


요가 수련에서도 다르마는 함께한다.

내 몸이 할 수 없는 동작을 무리해서 따라 하려 할 때,

남과 비교하며 나를 몰아붙일 때,

그 순간 요가는 말한다.


“지금 이 몸, 이 호흡, 이 순간을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너의 다르마다.”


수련의 목표는 완벽한 자세가 아니라,

지금 내 몸과 마음의 상태에 충실한 움직임이다.

삶도 그렇다.

남의 길을 흉내 내기보다, 나의 속도로 나의 방식대로 살아가는 것

그것이 다르마다.



다르마를 실천하는 삶


우리는 매일 선택을 한다.

그리고 그 선택이 진실에 가까울수록, 마음은 더 평온해진다.


지금 내가 하는 일은, 내가 진심으로 의미 있다고 여기는 일인가?

누군가를 따라가느라, 나를 놓치고 있진 않은가?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길을 걷고 있는가?


이 질문에 솔직하게 답할 수 있을 때,

우리는 더 이상 흔들리지 않는다.



다르마는 방향이며, 중심이다


다르마는 단지 ‘무엇을 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어떻게 존재하느냐의 문제다.

그것은 삶의 기술이자, 중심을 잃지 않는 내면의 나침반이다.


어떤 일이든 내가 맡은 바를 충실히 해내려는 마음,

결과보다 과정에 충실하려는 태도,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선택하는 용기.


그 모든 순간이 다르마의 실천이다.



오늘, 나만의 길을 걸어가자


우리는 각자의 다르마를 가지고 살아간다.

그 길은 남과 다르고, 비교할 수도 없다.

중요한 것은 내가 내 길을 알고, 그 길 위에 서 있는가이다.


『바가바드 기타』는 말한다.


“다르마는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내면에서 울리는 진실을 따라 살아갈 때,

그 자체로 삶은 충만해진다.”


오늘,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나는 지금 내 다르마를 따르고 있는가?”

“내가 걷는 이 길은, 정말로 나의 영혼이 원하는 길인가?”


그 물음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갈 때,

삶은 한결 더 평온해지고 단단해질 것이다.




갈무리 | 요가, 삶을 비추는 등불


요가는 단지 몸을 유연하게 만드는 훈련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 내면의 중심을 세우는 여정이고,

삶이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나를 잃지 않도록 도와주는 지혜의 지도이다.


『요가수트라』의 아쉬탕가 여덟 단계는

겉으로는 ‘수련의 방법’처럼 보일지 몰라도,

그 깊은 곳에는 언제나 삶을 더 평온하고, 진실하게 살아가기 위한 안내가 담겨 있다.


비폭력, 진실함, 절제, 무소유, 감사…

이 모든 가르침은 멀리 있는 이상향이 아니라

지금 여기, 우리의 일상 한가운데서 실천할 수 있는 것들이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부드럽게 말할 때,

스스로를 탓하지 않고 다정하게 품어줄 때,

더 가지려는 마음을 내려놓고 이미 있는 것에 감사할 때

그 순간 요가는, 매트 위를 넘어 삶 전체를 수련의 장으로 바꾸기 시작한다.



우리는 완벽할 수 없다.

요가도, 삶도, 언제나 흔들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 흔들림 속에서 중심을 찾는 연습을 멈추지 않는 것이다.


요가 수련을 하며 호흡을 바라보듯,

삶의 수많은 순간들 속에서

잠깐 멈추고, 나를 바라보고, 지금 여기에 머무는 것.


그것이 바로 요가가 말하는 진짜 자유이고,

우리 모두가 조금씩 나아갈 수 있는 ‘요가적 삶’의 길이다.



어쩌면 이 책은, ‘요가’라는 이름을 가진 삶의 철학이

당신의 하루하루를 더 따뜻하게 비춰주기를 바라는 등불 같은 글이었는지도 모른다.


지금 이 순간, 당신이 어디에 있든

호흡을 가만히 들이쉬고, 내쉬며

조용히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오늘, 나는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내가 진짜 원하는 삶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그리고 그 질문에 솔직하게, 천천히 다가가 보자.

그 길 위에, 요가가 늘 함께할 것이다.


삶이 곧 수련이 되고,

수련이 곧 삶이 되는 시간

지금 이 순간부터, 요가와 함께 다시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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