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 4-5
오늘 밤은 쉽게 잠들 수 없었다.
생각보다 많은 장면들이
하루 끝에야 비로소 떠오른다.
다 잊은 줄 알았던 얼굴,
이미 지난 줄 알았던 마음,
놓았다고 믿었던 감정 하나.
그 모든 것이 오늘 밤,
조용히 나를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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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창가에 앉아
커튼을 살짝 걷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구름이 흘러가고 있었다.
소리 없이,
무엇에도 걸리지 않은 채.
꽤 오래 바라보았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흘러가는 그 흐름을.
무언가 말하려 하지 않고,
그저 거기 있다는 이유만으로
조금씩 멀어지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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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도, 사랑도, 기억도
결국은 그렇게 흐르는 것 아닐까.
다 품지도, 다 잊지도 못한 채
조금씩, 아주 조금씩
멀어지고, 사라지고,
어느 날엔 조용히 빛으로 남는 것.
나는 붙잡고 있었다.
모든 감정은 다 붙잡고 있어야
내가 그것을 제대로 느낀 것처럼 믿었다.
하지만 오늘 밤,
흘러가는 구름을 바라보며
그건 꼭 그런 게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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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놓을 순 없다.
하지만 아주 작은 여백만으로도
우리는 숨 쉴 수 있다.
붙잡지 않아도 남는 마음이 있고,
멀어져야 비로소 보이는 거리도 있다.
조금 멀어진다는 건
조금 더 자유로워지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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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이 창밖을 덮는다.
나는 오늘 하루를
그저 조용히 흘려보내기로 한다.
기억은 여전히 남아 있지만,
이젠 그 기억을 안고도
잠들 수 있을 것 같다.
말없이 사라지는 구름처럼,
나는 나를 조금 놓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