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디션이 무척 좋은 숙소에서 포근하게 잤는데도 새벽에 추워서 깼다. 그래도 아침에 일어났을 때에는 꽤나 개운하게 일어났다. 이제 알람이 완전히 필요 없을 정도로 일어날 시간이 되면 저절로 눈이 떠진다. 잠시 누워 있다가 침낭을 개고, 짐 정리를 마친 후, 어제 삶아놓은 달걀과 사과 한쪽을 먹고 곧바로 길을 나섰다. 지난날의 걱정과 달리 오늘도 날씨가 맑았다. 새벽녘 하늘도, 일출도, 초승달도, 총총 빛나는 별들도 아름다웠다. 다만 추운 게 문제였다. 아침까지는 정말 추웠다. 하루 동안 사계절이 모두 왔다 가는 것 같았다.
왜인지 오늘은 길에 사람이 많았다. 새벽부터 동이 틀 때까지 사람 없는 길을 조용히 혼자 걷는 게 가장 큰 낙이었는데 아쉬웠다. 해가 45도 정도로 떠오르니 더위와 발 통증이 시작됐다. 더구나 틈만 나면 파리 놈들이 들러붙어서 짜증이 치밀었다. 서둘러 걸어서 숙소에 도착하고 싶었지만 힘들기도 하고, 발의 통증이 실시간으로 극심해져서 그럴 수 없었다. 정말이지 묵묵히, 정직하게 걸어내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18KM를 힘겹게 목적지에 도착해서 체크인을 마치고, 숙소에 짐을 풀고 점심을 먹기 위해 주방으로 왔는데 지난번 추석 때 함께 식사를 했던 어머니뻘 자매 순례자 두 분이 계셨다. 나도 그렇고 그분들도 무척이나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또 다른 한국인 순례자 한 분도 계셨다. 그들이 나에게 와서 괜찮으면 같이 점심을 먹지 않겠냐고 물었고, 당연히 좋다고 답했다. 그들은 수제비를 해 먹기 위해 반죽을 하고, 부재료 손질을 하고 있었다. 나는 옆에서 밥을 지었다. 그러던 와중 전 마을 나와 함께 묵었던 한국인 순례자가 도착해서 주방으로 왔다. 나는 반갑게 인사를 했고, 괜찮으면 같이 식사를 하자고 했다. 그렇게 5명이 모여 각자가 준비한 점심거리를 펼쳐놓고, 소소하지만 풍족한 점심을 먹었다. 그리고 어제 받는 쿠키를 꺼내 나누어 먹었다. 끝으로 숭늉도 해 먹었는데 정말이지 감동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샤워를 하고 해 잘 드는 곳에 빨래와 함께 침낭, 등산화를 널어놓고 있었는데, 아까 점심시간에 함께 식사한 아버지뻘 되는 순례자분이 나에게 다가와 내가 살 테니 맥주 한잔을 같이 하자고 하셨다. 숙소 1층에는 큰 마당이 있었는데 그곳에 식당이 운영되고 있었고, 우리는 테이블 한편에 자리를 잡았다. 그는 맥주와 뽈보를 주문했다. 곧 직원이 가져다줬다. 스페인에 와서 처음 먹는 뽈보였다. 삶은 문어에 올리브유, 훈제파프리카 가루, 소금을 뿌린 음식이었는데 정말 내가 먹은 문어 중에서 가장 부드러운 문어였다.
그늘진 테이블에 앉아 별 다른 이야기 하지 않고 맥주를 홀짝이는 여유는 거의 처음이었다. 다시 느끼는 바이지만, 그동안 순례길을 걸으며 이런 여유를 즐기지 못해, 만들지 못해서 너무 아쉬웠다. 만약 순례길 이후 다른 여행을 계획하지 않았다면 더 좋았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속상했지만, 그래도 뒤늦게나마 마냥 힘들기만 한 순례길을 걷지 않은 것에 감사했다.
점심을 먹으며 천주교 신자이신 자매 순례자분들이 이 마을에 한국인 신부님이 계셔서 만나기로 했는데 혹시 괜찮으면 같이 만나보지 않겠냐고 제안을 했고, 모두 함께 그 성당으로 갔다. 성당 앞에 정말 한국인 신부님이 우리를 반겨주었다. 그리고 성당 옆 건물에 사무실 겸 숙소로 보이는 곳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우리는 작은 거실에 둘러앉아 순례길의 역사와 의미에 대해 여러 이야기를 들었다. 순례길을 떠나기 전 이런저런 정보들을 들었지만, 이날에서야 순례길이 더욱 선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꼭 종교인이어야만 알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신부님의 이야기가 끝나고 각자의 고민이나 이야기를 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나는 늘 고민이었던 ’ 나만의 순례길‘에 대한 견해를 털어놓았다. 결론은 순례길에는 정답이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제야 진정으로 안도했고, 비로소 확신이 생겼다.
숙소로 돌아와 숙소에서 저녁을 사 먹었는데 정말이지 소금덩어리를 먹는 줄 알았다. 돼지 스테이크와 달걀, 감자와 밥이 나왔는데 밥 빼고는 전부 짰다. 정말 배를 채운다는 목적을 위해서만 먹었다. 식사를 마치고, 다시 성당에 가서 저녁 미사를 한 후, 취침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