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나도 내꺼할래요
하루아침 뇌병변으로 어눌해진 발음에
이젠 대화조차도 쉽지 않은 아빠였다.
20년은 더 앞 서 늙고 있는
생기를 완전히 잃어버린 아빠를 마주하고 있자니
문득 아빠의 젊은 날들이,
지금의 나와 같이 열정 가득했었을
그 생기 있었던 날들이 궁금해졌다.
“아빠는 내가 몇 살 때
회사 관두고 사업 시작 했어?”
“세 살”
내 아이 세 살,
나 역시 멀쩡한 대기업을 그만두고
독립을 선택했다.
아빠 역시 나처럼 이유야
수 만 가지였겠지만
지금에서 남은 아빠의 기억 속엔
내 눈엔 ‘열정’ 또는 ‘패기’로 보이는
단 한 가지 이유만 남아있는 듯했다.
“나와서도 회사에서 버는 만큼은
벌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
사업의 실패를 결국 이겨내지 못하고
당신의 인생에서
많은 시간을 그저 그 자리에
멈춘 채로 보내왔던
가장으로서는 참 무책임했던 아버지.
아빠도 지금의 나처럼
하고 싶은 거 많고
할 수 있다고 누구보다
본인에게 응원해 주던
그런 단단하던 시기가 있었던 거다.
실질적인 뒷받침은 되어 주지 못해도
딸이 하고 싶은 건 늘 하라고 말 뿐이더라도
늘 마음으로 응원해 주던 아빠였는데,
내가 진정 힘들어 휘청 거릴 땐
내가 듣고 싶지 않았던 말을 건네기도 했다.
“회사 다닐 때가 좋을 때였다”
그러던 아빠도
딸이 회사를 나와 독립을 한다니
다시금 눈을 반짝이는 걸
나는 느낄 수 있었다.
“쉽지 않을 거다. 마음 단단히 먹고.”
그랬다.
30년의 간격을 두고 나는
이해가 어려웠던 아빠의 인생에서
굵직한 곡선을 그리던
그 시기를 따라가본다.
아빠도 그런 시기가 있었음을,
어찌 보면 처자식 먹여 살려야 했던
나보다 더 절박한 그 상황에서
본인이 선택했던 길은
결코 ‘무책임’이라는 이름은 아니었을 거라는 걸 ,
아무도 몰라도 나는 알아줘야지.
오히려 무거운 책임감에
그 열정은 훨씬 더 컸을 테니까.
어눌한 발음으로 오랜만에
수다쟁이가 된 아빠가 이야기했다.
“그땐 참 바쁘게 돌아다녀서
발바닥이 다 까졌었다 “
아빠에게는
인생에서 가장 바빴던 그 시기가
가장 그리운 순간으로 남은 듯하다.
자타공인 딸 바보였던 아빠가
일 마치면
내가 너무 보고 싶어 뛰어 들어왔다던
언젠가의 엄마의 말이 겹치며
인생이라는 게 참 덧없음을 느끼며
마음이 아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순간마저 그리워지는 순간이
필연적으로 나에게도 찾아올 거라는 걸
이제는 잘 알기에
오늘, 지금을 하루하루 꾹꾹 눌러
잘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해 본다.
언젠간 일이라는 것도
하고 싶어도 못하게 되는 순간이
찾아올 테니까
할 수 있을 때 해야 한다는 것을,
열정이라는 것에도 유효기간이 있음을,
슬프지만 아빠를 보며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