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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처럼 은은하게 살아내기

by Slowlifer

4박 6일간의 짧은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나의 베란다로 달려가 창문을 활짝 열로 목말랐을 식물들에 물을 주는 일이었다.


살아 숨 쉬는 생명과 같은 공간에 산다는 일이 누군가에게는 어쩌면 참으로 성가신 일이 아닐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아있는 생명이기에 혹여나 나의 이기심으로 그 생명을 잃게 되진 않을까 늘 마음이 쓰이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기에 하루이상 집을 비우기 전과 후의 식집사는 유난히 더 바빠진다.


다행스럽게도 식물들이 베란다에 살기에는 최적화된 요즘의 날씨에 매일 물을 먹어야만 하는 시들해진 몇몇 허브류 친구들을 제외하곤 여전히 잘 살아내 주고 있었다.

심지어 작년겨울 힘겨워하던 나의 목마가렛은 나의 걱정이 무색하리만큼 꽃을 이렇게나 한가득 피어내기도, 파키라 집에 세 들어 사는 내겐 다소 어둡고 무서운 보라색 잎을 가진 사랑초는 소리소문 없이 작고 야리야리한 연보라색 꽃을 틔워내기도, 작년 12월에 우리 집에 온 몬스테라는 어마무시한 크기의 세 번째 커다란 신엽을 펼쳐내고 있었다.


식물과 함께 한 뒤로 식물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특히 오늘 같은 날엔 더욱더, 식물처럼 은은하게 살아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식물들은 정말 은은하게 살아낸다.


유난이란 보이지 않는다. 그저 그 자리에서 조용히 각자에게 할당된 생명을 지켜내고 있을 뿐 어지간한 시련으로는 힘들다 소리치는 법이 없다.


가끔 닥쳐오는 예상치 못한 일들에도 적어도 겉으로 티 날 만큼 쉽게 흔들리지 않는 그 단단함과 묵묵함을 배우고, 겉으로는 유들유들 유연하게 연하디 연한 잎과 꽃까지 피워내는 식물들의 생명력을 닮고 싶다.


마치 이 친구들이 내게 말해주는 듯하다.

“괜찮아, 아무 일 없을 거야.”라고.


조금 흔들렸어도 나 역시 아무렇지 않은 듯 곧 내 자리를 찾아 다시 웃어 보일 수 있을 것이라고 위로를 해주는 듯하다.


누군가 나처럼 텅 비어버린 일상을 힘겹게 살아내고 있다면 집에 작은 화분 몇 개 들여보는 건 어떨까.


예상치 못한 발견과 깨달음에 다시 살아나갈 힘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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