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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깨작희작 Jul 29. 2023

4(四)

본의 아니게 미움받는 너.



“ 4는 불결해서 싫더라.”


보통 이 말에 대부분의 한국인이라면 자연스럽게 동의한다. 4는 죽을 ‘死’ 자와 동일한 발음이란 이유 하나만으로.

이 외에도 4를 기피하는 다른 합당한 이유가 많기라도 하면 덜 속상할텐데 그 이유가 오로지 하나뿐이라 4를 애정하는 내 입장에서는 안타깝기도 하다.

비단 한국뿐만 아니라 중국에서도 동일한 이유로 4를 기피하기 때문에 그저 문화적 특징이려니 하고 넘어간지 오래다.


무엇인가를 싫어하고 좋아하는 것은 개인의 취향이다. 하지만 대중의 통념아래 나의 취향과 개성이 이해받지 못하는 경우라면 취향은 곧 유별남과 특이함이 되버린다. 4를 좋아한다는 말과 함께 그 이유까지 구지 설명해야했던 분위기마저 속상할때가 있다.



4를 좋아하게 된 계기는 확실하다. 내가 행복했던 사건 사건마다 4라는 숫자가 늘 함께했기 때문이다. 4와 인연을 맺은 첫 번째 사건은 내 생에 처음으로 공부라는 것을 열심히 하고 얻은 4등이란 숫자다. 그 뒤로 정말 좋아했던 남자친구와 처음 만났던 날이 4월 4일, 중고등학교 시절 가장 행복하게 생활했던 공간이 4학년 4반이었던 일들까지... 아마 나뿐만 아니라 다른 누군가도 어떤 물체, 숫자, 혹은 단어에 스파클처럼 꽂혀 자신에게 다가온 행운같은 ‘그 무엇’이 있을 것이다.


더 이상 ‘4’는 나에게 직접 다가오지 않아도 된다. 이제 ‘내가 4에게 다가가는’ 경지까지 올랐으니까. 목적지까지 조금 더 돌아가도 4번 버스를 타려 하고, 약속 장소가 4층 어느 레스토랑이면 더 설레고, 4계절이 세상 가장 완벽한 자연체계라 생각하고, 심지어는 피자는 8조각이 아닌 4조각으로 잘라 접어 먹어야 더 맛있다는 내 이론의 정립까지.

이 정도면 4와 4랑에 제대로 빠진 게 맞다.   


누군가는 이런 나의 애정이 ‘유별’나다고 생각도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한국과 중국에서 대중적 미움을 받는 4를 신뢰와 사랑으로 채워주기엔 아직도 그 인구수를 따라잡기엔 갈길이 멀다. 그래서 오히려 4와 사랑에 빠진 게 더 감사하다. 유별난게 아닌 특별함과 인연이 닿았으니.


“ 소외된 무엇인가를 소유하는 것만큼 설레는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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